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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베개 Nov 25. 2019

예불을 마친 후 당황한 사연

나비의 날갯짓에 폭풍이 이는 까닭

종무소에서 받은 하얀 고무신은 구두에 비해 헐렁하여 처음에는 걷기가 불편했지만 점점 내딛는 한 발 한 발이 안정되고 발바닥의 감촉도 좋게 느껴졌다. 고무신 얇은 밑창을 통해 땅의 모양과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어릴 적 검정 고무신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고무신은 신발과 슬리퍼의 역할을 함께 해 주니 합숙 생활에는 더욱 편리했다. 고무신을 신은 채 발을 씻고 나와 괸 물을 탈탈 털어 섬돌 위에 거꾸로 놓아두면 고무신은 밤새 하얗게 말라 있었다. 고무신이 순결하게 보였다. 고무신은 새벽 종소리에 더욱 맑아진 나의 육신을 때 묻지 않게 실어 가는 한 쌍의 돛단배였다.


 고무신의 이마에는 ‘ㅇ’, ‘#’, ‘송’, ‘ ’ 등 비표가 그려져 있었다. 내가 받은 고무신에는 ‘고’라는 표시가 있었다. 그 고무신을 맨 처음 신은 사람이 고무신을 발견한 기쁨을 ‘고’라고 표현했을까. 그것은 영어로도 읽혀져 ‘나아가라’고 독려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미스 고’가 떠올라, 성이 고씨인 도반이 자기 흔적을 남기려고 기입해 두었다고 마무리했다. ‘고’는 수련장 밖에서 내 고무신을 알아보는 가장 중요한 표시였다. 나는 그 고무신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내 분신으로 여겼다.


 수련장인 사자루, 예불 장소인 대웅전, 숙소인 대지전 등으로 자리를 옮겨 들어갈 때 고무신을 가지런히 놓거나 신발장에 넣어야 했는데 나올 때 자기 것을 찾는 데는 이 비표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120명의 수련생이 한꺼번에 나가고 들어가기 때문에 비표만으로 자기 고무신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자기가 고무신을 놓아둔 위치를 정확하게 기억해야 했다.


 사자루 출입문 앞에는 일곱 개의 신발장이 있었다. 반 이름과 번호가 표시된 신발장들은 사자루 안 각자 자리로 가기에 편리한 위치에 놓여 있었다. 우리는 고무신을 신발장 제자리에 정확히 넣고는 곧바로 자기 자리로 갈 수 있었고 나올 때도 자기 고무신을 쉽게 꺼낼 수 있었다. 나는 고무신을 넣고 꺼내는 일이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지는 걸 보며 감탄했지만 그 과정이 어느 순간 어그러질 것 같다는 불안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틀째 아침이었다. 새벽 예불을 마치고 사자루로 돌아와보니 신발장 내 자리에 다른 고무신이 놓여 있었다. 그 고무신을 옆으로 밀고 내 고무신을 넣었다. 휴식 시간에 나와 보니 밀어 놓았던 고무신은 없었다. 화장실을 다녀오니 다시 그 고무신이 내 자리에 놓여 있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사자루에서 발우공양을 마치고 저녁 예불이 있는 대웅전으로 가기 위해 신발장 내 자리로 가 보니 내 고무신이 없었다. 순간 현기증이 났다. 도반들이 계속 몰려나왔다. 신발장 앞에서 마냥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맨발로 대웅전까지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사정을 알리려 해도 묵언이니 무슨 말을 할 수 없었다. 지도 법사께 필담으로 사정을 알릴 수는 있지만, 그것은 더 큰 분란을 일으킬 것 같았다.


누군가가 자기 고무신을 두고는 나의 신발을 잘못 꺼내 갔을 것이다. 그 사람의 고무신을 찾아내어 내가 신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조치였다. 그러면 그와 나, 단 두 사람만 불편함을 감내하면 된다. 그러나 내가 그의 고무신을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도반들은 계속 몰려나왔다. 나는 머뭇거리고 의심하며 그 자리에서 그대로 있을 수만은 없었다. 조속히 결단을 내려야 했다. 아니 나는 그 상황에서 가능한 유일한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옆 신발장에서 내 발에 맞을 것 같은 고무신을 꺼냈다. 손발이 떨렸다. 그것은 사라진 내 고무신보다 작아서 발을 꽉 죄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걸어가면서 내가 신고 있는 그 고무신의 주인이 툇마루 신발장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조금 전 내가 했던 고민을 지금 똑같이 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곧 나와 같은 결단을 내릴 것이다.


 이 지경에 이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기도 했다. 나는 ‘고’라는 비표가 있는 나의 고무신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껏 내 고무신이 사라지면 어떻게 하지 하며 걱정했다. 아무리 사소한 대상이라 할지라도 거기에 내가 부여하는 의미가 커질수록 그 대상에 얽매이는 정도도 심해지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먼저 내 고무신을 신고 간 그 도반은 내가 그런 집착에서 벗어나게 해 주려고 일부러 나의 고무신을 신고 간 것은 아닐까.


 그것은 도미노 현상과 같았다. 빠른 속도로 고무신은 바뀌어져 갔다. 내가 또 다른 고무신을 다시 바꿔 신어야 할 때가 올지도 몰랐다. 그 끝없는 바꿔치기를 그치게 하려면 누군가가 한나절만 맨발로 다니면 될 것이다. 그러나 누가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바꿔치기에 가속도가 붙어 마침내 지도 법사의 신발이 없어진 것은 내가 고무신을 잃어버린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이 혼란의 시작은 한 사람의 고의나 착각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120짝의 고무신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게 만들었다. 여기한 마리의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지구 저쪽에서 폭풍이 일어나는 까닭을 알 것 같았다. 연기(緣起) 인연의 고리가 그 위력을 보여 준 것일 테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예외 없이 얽매이게 되는 고리. 그것이 당혹감을 주어 남을 불안하게 만드는 나쁜 인연의 고리라면 끊어 주어야 하리니, 대웅전 앞마당을 맨발로 걸어가는 성인을 기다려야 할까? 그것이 사소한 집착에서라도 벗어나게 해 주는 좋은 인연의 고리라면, 120명 모든 도반으로 하여금 아무 고무신이라 닥치는 대로 신게 하여, 어떤 때는 꽉 죄는 고무신 때문에 물집이 생기도록 하고, 또 어떤 때는 한 걸음 옮길때마다 고무신이 벗겨져 다시 신느라 허겁지겁하도록 해야 하는 것일까? 그래야만 지극히 사소한 집착으로부터도 해방되는 것일까?


사라진 내 고무신은 이래저래 나를 뒤흔들면서 더 오묘하고 엄연한 존재의 실상으로 나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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