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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야 Sep 21. 2020

겨울이 지나간 이 도시의 모습.

 

 연주가에게는 악기, 작가에게는 연필(혹은 타자기)이라는 주 무기가 있듯이 요리사인 나에게도 칼이라는 도구가 직업상 가장 중요한 도구이다. 때문에 일정 시간 칼을 사용하고 나면 무뎌진 날을 숫돌을 이용해 주기적으로 날카롭게 해 둬야 일하는데 불편함이 없다. 날이 잘 세워진 칼 한 자루만큼 주방의 든든한 동반자도 없다. 일이 바쁠 적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칼날을 세워놔야 안심이 될 정도로 부지런해야 했던 일과 중 하나였던 과업이 이번 국제적 재앙의 여파로 인해 4개월가량 미뤄져 왔다. 4개월 만에 드디어 영업재개 소식이 들리고 재출근 날짜가 정해지면서 그동안 소파 밑에 자리 잡아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칼 가방을 꺼내어 칼을 손 보았다.

 영업장 폐쇄 소식과 함께 마지막으로 모여 식자재를 정리하고 개인 소지품들을 정리하고 돌아온 그 날 이후로 한 번을 떠들어 보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다시금 날을 세우고 필요한 도구들을 정리하고서 그렇게 다시 출근하는 그 첫날이 마치 요리를 처음 시작했던 그 날처럼 생경하게만 느껴지고 있었다.


 1년 반을 거의 매일 같이 출근했던 길을 그대로 따라서 회사로 찾아간다. 달라진 점이라고는 정부의 재택근무 권유(반강제적 조치)로 인해 출. 퇴근길에도 훨씬 한산해진 전철 내 풍경이랄까. 곧장 익숙했던 얼굴들이 보이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각자의 자리에서 곧 있을 영업개시를 준비하려 분주했다. 조금은 불어난 듯한 체형을 빼면 여전히 왁자지껄한 주방의 분위기는 그대로이고, 다시금 일터에 설 수 있다는 점이 모두의 뺨을 붉게 물들였다.


 벌써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다시금 영업을 시작하고 몇몇은 낯선 매장 직원들과 함께 두 달여가 지나가고 있다. 어느덧 계절은 적막한 가을을 지나 봄이 성큼 다가온 듯하더니 뜨끈한 바람이 불어오는 초 여름 날씨가 되었다. 마당을 일구어 가꿔놓은 텃밭에는 갖가지 채소들이 꽃대를 올리고 꽃을 피우며 씨를 맺기에 여념이 없고 죽은 듯 보였던 체리나무에도 새 이파리가 돋아나고 있다.


 그 사이 업장은 조금씩 매출을 회복해 가고 있지만 도심지에 위치하고 있는 특성상 평일의 매출은 아직 형편없는 수준이다. 그래서 아예 월요일도 가게문을 닫기로 결정하고 영업은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만 하고 있고 매출이 아직 예전만큼 돌아오지 않기에 한 주방에서 일하던 식구들 몇몇은 다른 지점으로 전출을 가기도 하고 근무시간이 대폭 줄어드는 등의 불이익을 감내하고 있는 중이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음을 알기에 묵묵히 따르는 중이다. 이따금 쉬는 시간에 거리로 나가보면 수많은 인파로 북적거리던 이 곳이 이렇게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그런 모습이다.


 현재 시드니는 일상의 7~80% 정도 회복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호주 정부에서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호주 경제가 불황으로 접어들었다는 공식 발표가 있었는데 올해 말까지는 가망이 없어 보이는 Melbourne이 속한 Victoria 주 와는 다르게 이 곳 NSW 주는 효과적으로 이 문제에 대응하고 있고 나름 무난히 Second wave를 넘기고 일상의 대부분을 회복해 가고 있는 중이다.

 아직은 Mask의 착용이 법정 강제사항은 아니지만 곳곳에서 권장하고 있는 분위기라서 한창 Covid-19이 번져나가던 초기에도 Mask를 착용한 사람을 보기 드물던 상황과 달리 요즘엔 오히려 마스크 착용을 안 하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시민들의 의식도 많이 변하였다. 그래도 여전히 산발적으로 들려오는 감염자 소식은 끊이지 않지만 사람들은 그래도 여전히 각자의 삶을 끈질기게 이어가며 버티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호주 정부는 국경 폐쇄를 연말까지 연장하고 심지어 해외에서 들어오는 자국민 수에도 일일 제한을 두고 있어서 몇 달째 해외에서 귀국하지 못하는 호주인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오곤 한다. 그나마 Victoria주를 제외한 다른 주에서는 어느 정도 허용이 되고 있어서 입국 후 3천 불이라는 거금을 부담하고 지정된 Hotel에서 2주간 격리된 후 이상이 없으면 본인의 집으로 돌아가고는 있지만 이마저도 해외 각지에서 비행기표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와 같은 수준이라 아는 지인도 현재 올해 내 돌아올 생각은 안 하고 아예 한국에서 본인 가게를 차린 경우도 있다.

 더 심한 경우는 Melbourne에서 지내던 아는 분이 이곳 Sydney에서 가족 장례식이 있어 참석했다가 남편 분은 돌아가고 아내와 아이는 잠시 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려고 남았는데 그 이후 그곳의 상황이 악화되며 사상 초유의 Lockdown stage 5까지 발동되었지만 사태가 진정되지 않아 다시금 주 경계가 열릴 거라 예상되는 올 연말까지는 생 이별을 해야 하는 상황인 가정도 있는 처지이다.


  이런저런 안타까운 사연들이 넘쳐나는 상황에 다행히도 우리 가족은 이 사태를 큰 사건사고 없이 잘 이겨내가고 있는 중이다. 나는 업무로 복귀를 해서 다시 경제활동을 이어가고 있고, 아내도 회사에서 만난 중국인 친구를 통해서 소개받은 한 지체 발달 아이를 전담해 본인이 바라왔던 음악치료사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한 집에서 같이 지내고 있는 Share mate 친구들도 이번 사태로 Visa나 직장에 영향을 받지 않는 의료계 쪽 종사자들이라서  오히려 우리 부부보다 훨씬 안정적인 상황이고.

 여전히 한국에 두고 온 가족들 지인들이 보고 싶고 사무치게 그리운 마음을 붙들고 지내기는 하지만 그럭저럭 아직은 버틸만한 수준이라 이따금씩 밑도 끝도 없이 다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억지스러운 마음만 잘 다스린다면 이 위기를 잘 버텨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한국은 유난히 지독했던 장마와 태풍을 견뎌내니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는데... 봄 날씨를 건너뛰고 있는 이 곳 호주 Sydney는 늘 그랬듯 타는듯 한 여름이 예전처럼 시작되려 하는데 그 여름을 만끽할 사람들이 사라져버린 예전같이 않은 황량한 도시가 되어버린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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