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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야 Jan 26. 2021

한 발 늦은 2020년의 마무리


 마지막 글을 올린지도 어느새 4개월이 지나갔다. 그사이 한 해가 저물고 새 해가 밝아 2021년이 되었는데 오랜 습관과도 같은 게으름이 자꾸만 일상의 기록들을 미루게 만들었다. 그러다 결국 업무복귀를 하루 앞두고 다시금 마음을 다잡으며 글을 써보려고 자리를 잡아본다. -시작만 하고 완성을 못해 벌써 또 한 주가 지나 버렸다... -


 한국은 요즘 한파에 폭설에 동장군이 기승이라지만 남반구에 위치한 이 곳은 새파란 여름을 지나고 있는 중이긴 하지만, 이상기후는 이곳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예년 같지 않은 폭우와 궂은 날씨 덕분에 40도를 오르내리던 한여름의 Sydney는 온데간데없고 어중간한 더위가 오락가락하고 있는 중이다.


 Covid -19 Lockdown 이후, 이 나라의 초 성수기인 12월을 준비하면서 예전과 같지 않을 거란 걱정이 무색하리만치 역대급으로 바쁘고 힘들었던 연말을 보냈다. 본래 12월을 준비하는 과정은 두세 달 전부터 임시 직원을 뽑아 대체인력을 만들고 기존 직원들과의 Team work을 만드는 일에서 시작한다. 그렇게 해 두어도 아등바등 지나가는 시기지만 언제 어떻게 변수가 생길지 모르는 재앙 덕에 준비부터 순탄치가 않았다. 급작스럽게 임시직원들을 고용을 한 데다, 이 곳의 Open member 중 한 명이자 주방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던 2인자 Sous chef 유쾌한 영국인 Jon이 다른 매장의 Head chef로 진급해 옮겨가는 상황이었다. 주방의 분위기도 많이 변했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내가 담당하고 있는 Grill Section에 새로 뽑은 직원의 실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발전도 더딘 상태라 밀려들어오는 Steak 주문을 감당할 수 없어 보였다. 일정하게 고기가 구워져 나오지 않은 데다가 처음 다뤄본다는 Wood fired grill 이라더니 불 관리조차 애를 먹고 있었다. 결국 내가 반강제적으로 자진(?)하다시피 해서 타오르는 불길 앞에서 다양한 종류의 고기를 구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Covid-19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손님들은 매일같이 몰려들었고 아침마다 불을 피워 고기를 굽다가 uniform이 흠뻑 젖을 때쯤이면 점심 영업이 끝이 났고, 땀이 마를 때쯤 다시 저녁 영업을 준비하며 불을 키우기를 무한 반복했다. 그래도 이전 직장은 땀이 나면서 증발해버릴 정도로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는 극악의 주방 구조였던데 반해 현 직장의 주방은 장작불의  열기가 순환이 빨리 되는 편이라서 탈수로 쓰러지는 일은 없었다. 물론 탈수증이 오기 전에 물을 하루에 4~5 liter 씩 마셨던 거 같다.

 

매일같이 타오르는 불길 앞이 내 근무지였다.



 하루 매출이 한화로 치면 1. 2천(만)은 보통 수준이고 바쁜 날에는 4, 5천을 오갈 정도로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어떻게든 돈을 쓰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들 같아 보였다. 손님들이 배가 불러가는 동안 직원들, 특히 주방 직원들은  메말라 갔다. 불 앞에서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야 했던 나는 하루 2kg까지 몸무게가 줄기도 했다. 주 45-50시간을 오가던 평균 근무시간은 60-65시간까지 늘어났다. 주 4일 출근에서 주 6일 출근으로 늘었고 가게가 문을 닫는 일요일이 유일하게 우리가 쉴 수 있는 날이었다.

  매일 같이 폭주하던 매장의 상황은 Northern beach 지역에서 또다시 Covid-19 감염자가 나오고 지역 자체가 봉쇄되는 상황에 이른 성탄절 전 주가 되어 급 반전을 보여주었다. 예약 손님의 절반 이상이 취소를 하기 시작했고 기록을 갱신해가던 매출은 급감했다. 축제는 이렇게 허무하게 끝이 나고 말았다. Lock down stage 3의 경험이 워낙 끔찍했던 터라서 회사는 예정된 연말 영업 종료를 3일이나 앞당기기로 결정했고 아무 예고 없이 출근했던 12월 19일이 마지막 출근 날이라는 통보를 받아 들고 황급히 주방을 정리해야 했다. 모두들 지칠 만큼 지쳐있던 터라서  은근 좋아하는 눈치의 직원들이 대부분이었다. 나 역시 황당하긴 했지만 잠이라도 푹 자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던 터라 기쁜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렇게 황망하게도 1년의 영업을 종료하고 연말 휴가를 맞이했지만 예년 같지 않은 날씨와 국경을 막아 놓아서 국내여행으로 내국인이 전부 몰린 상황이라서 어느 허름한 camp site 조차 구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 주로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혹사당하느라 망가져가는 게 느껴질 정도로 악화되던 몸 상태를 돌보느라 도수치료도 받고, 운동도 꾸준히 하면서 다시 몸 회복에 집중하는 와중에 미리 계획했던 지인들과 함께하는 식사 자리를 준비한다는 핑계로 낚시도 거의 매일같이 다녔다. 횟감으로 쓸만한 물고기를 잡지 못해 12월 31일까지도 발 뻗고 잠을 못 자고 새벽같이 일어나 낚시를 다니다 겨우 그 날 생선을 몇 마리를 잡아 안도하며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 전화해 허세 부리던 기억도 난다.

네 번의 도전 끝에 간신히 잡은 물고기 한 마리.

 그렇게 2020년이 지나가고 2021년의 시작을 손님 준비의 압박감에 시작했다. 한 자리에 모이기 여간 쉽지 않은 지역 유지(?)들이자 한 업장의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 선배님들의 가족까지 모시고 사교의 장을 만들려는 계획이 전 날 발표된 강화된 정부 규제 덕에 무산되고 조촐하게 주방 종사자들만 모여서 준비된 식사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워낙 서양요리로 오랜 경력을 지니신 분들이라 이번엔 한식을 주제로 서너 가지씩  총 4가지 course를 준비해 대접해 드리니 엄청 만족 해 하시면서 형수님들과 같이 자리하지 못해 너무 아쉽다며 애처가 행세를 하시기에 다음에 또 자리를 만들자고 약속하며 헤어졌다.

호주에서도 1월1일은 떡국이지.

  그렇게 정신없이 손님상을 치르고 다음 날인 1월 2일이 되어서야 비로소 새해가 되었다는 실감이 났다. 원래 이곳 호주로 건너온 이후에는 1월 1일이면 늘 바다에서 새해 첫 날을 만끽했었는데... 뭔가 우리 부부만의 소소한 연중행사였던 것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내년을 다시금 기약하기로 했다.

 의례 이 시기가 되면 한 해 목표는 어디까지 지켜졌는지 돌아보고 다시금 새해 목표도 작성해 보면서 스스로를 점검해보는 시간을 갖곤 했었다. 하지만 이게 당장 이번에는 아무 의욕도 생기지 않고 필요성도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대여섯 가지의 목표를 매년 설정해 보지만 막상 삶에 치여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면 그 목표 따위는 늘 뒷전이기 일쑤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올 해는 단순하게 살기로 다짐하면서 간단히 마무리를 하였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꾸만 변해가는 내 모습에 스스로 놀랍기도 한데 이렇게 나도 보수적인 성향으로 변해가는 건가 뜨끔했다.


 별다른 큰 변화를 기대하며 시작한 2020년은 아니었지만 이번 Covid-19 사태를 겪으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너무 많았던 한 해로 생각된다. 그저 살아내는 것조차도 부담이 되고 쉽지 않았던 시간들. 그래서인지 이 시간을 되돌아보는 것조차 껄끄럽게만 느껴지고 생각만으로도 가슴 한쪽이 답답해진다.  

 

 이렇게 얼렁뚱땅 한 해를 억지스레 마무리 짓는다.

 안녕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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