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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살아임더 Oct 12. 2020

10. 주황빛 울릉도의 모든것

울릉도 4일차, 예쁜 하늘은 다 본 날

* 이 글은 지난 4월 말, 한국에선 코로나가 종식되는 줄로만 알았던 그 시기의 여행입니다.
* 사회적 거리두기, 개인 방역을 매우 철저히 준수합니다





벼락맞은 나무 사진을 친구에게 보내줬더니 뜬금없는데 인사이트 있는 얘기를 했다.

“어릴 적 우리 엄마가 울릉도에 여행 갔다가 벼락맞은 나무로 만든 회초리를 사오셨는데 진짜 벼락을 맞은지는 모르겠는데 그걸로 맞으면서 컸어.”
“와 그것 참 벼락같았겠다”

친구의 카톡을 보면서 웃으면서 산을 내려오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차에 올라타서 시동을 걸고 산길을 다시 내려가며 물었다.

누나 오늘 저녁 술 안주는 뭐로 할래요?
음....누가 울릉도 와서 오징어 물회 먹어보고싶다 하지않았었나? 너였나?
누나가 그걸 어떻게 기억해요?

응?


그 모습에 상당히 감동 받아하는게 한눈에도 보였다. 그리고 지금 감동 받은 동생의 반응을 보기보다는 물회를 파는 집을 찾는게 중요했다.
울릉도가 국내산 오징어의 산지(?)나 다름없긴 하지만, 오징어가 잡히는 철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징어 물회를 파는 집은 드물다는 사람들의 말이 생각났고, 인터넷에 울릉도 오징어 물회를 검색한 후 일일히 전화를 돌려보기 시작했다. 동생이 먹고싶어 하는건 오징어물회고 나는 꽁치 물회를 먹고 싶었으니 부지런히 전화를 돌려야했는데 운이 좋게도 세번째로 전화 저동의 한 집에서 오징어 물회와 꽁치 물회 둘 다 된다는 답변을 들었고, 신나게 차를 몰았다.


내려오는 길에 비가 한두방울 떨어지는것과 더불어 연휴가 끝나던 날이라 손님이 없어 그러니 일찍 문 닫을테니 빨리  와야할거라는 말에 후다닥 차를 몰아 음식을 픽업하고 차에 오르고 나서 우리는 둘 다 아 빨리 집에 가서 술먹자. 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잠시 후 우리가 오늘 몇번이나 대화하며 “집” 이라는 표현으로 게스트하우스를 표현했다는 점을 깨달았다.

처음에 왔을 땐 태어나서 처음 보는 컨디션의 숙소를 보고 당황했었다. 도미토리룸이라고 하면 보통 우리는 2층 침대를 생각 하는데 이곳은 넓은 방에 접이식 매트리스를 펴고 자면 그게 내 자리였다. 넓은 방에 매트리스는 총 다섯개가 들어갔다. 남자용 도미토리는 더 흥미로운 상황이었다. 남자용 도미토리는 화장실 앞의 큰 공간에 거대한 2층 침대 하나의 각 모서리에 이불을 깔면 끝이었다. 그러니까, 뭔가 사생활 보호가 꽤나 어려운 시설이었다.
화장실은 남녀 구분없이 공용인것은 차치하고라도, 안에서 사람이 씻으면 변기도 사용할 수 없다. 가장 안에서부터 샤워기 - 변기 - 세면대가 있기 때문이다. (칸막이 구분 없음) 그리고 세면대가 있긴 하지만 물이 참 죽어라고 안내려갔다. 양치 해서 한 번 물을 뱉으면 물이 다음 사람이 들어와서 일을 마칠 때 까지도 안내려가고 있었다.
 
그래서 이 곳에 머물던 사람들은 가급적 샤워를 제외한 모든 것은 숙소에서 3분 정도 떨어진 공용 화장실을 썼었다. 이 모든건 울릉도의 모든 공용화장실은 엄청 깨끗하고 넓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면서, 그것도 가장 열악하다는 상태의 열차를 타고서 세상에서 가장 열악하고 뜨악한 잠자리는 다 겪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곳은 다른 의미로 뜨악한 잠자리였다. 이 숙소에서 같은 시기에 묵었던 사람들끼리 육지에서 또 만났을 때 어디서 묵냐, 숙소 상태가 열악하다더라 라는 얘기를 하다가도 그래도 우린 울릉도의 그 숙소를 겪은 사람들이니 어딘들 괜찮을것 같은데? 라는 말로 귀결 될 정도였다.

그런 숙소지만 나도 모르게, 그리고 쟤도 모르게 “집”으로 지칭 할 정도였다. 시설이 좋은 곳이라고 해서 “집”이라고 지칭하긴는 어려운 법이다. 많은 여행을 했었어도 “집”과 “숙소”는 명확하게 다르게 표현했었다. 하지만 정말 숨쉬듯 나온 말에 한번도 아니고 여러번 “집”이라고 우리는 그 곳을 지칭했다. 머리가 아닌 마음이 그곳은 시설이 아니라 마음에 안식을 줄 수 있는 공간이라고 인식 했던 것 같다. 내 기준에서 “집”이 되기엔 어려운 조건임에도 나도 모르게 집이라는 표현을 쓴게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서, 공간이 주는 안정감에 대해 한번 돌이켜 보게 된 기회였던 것 같다.




마지막 술안주 그리고 울릉도의 마지막 저녁이니 조금 돌아서 드라이브를 하자는 의견에 당연히 내가 거부할 이유가 없어 콜! 을 외치고는 창문에 고개를 처박고 바라보고 있는데 며칠 전 내가  봤던 노을 해무리가 비 구름 때문에 유화처럼 뭉개져서 넓은 지평선에 고루 깔려있었다.


연휴가 끝나던 날이라 길에 차가 없어서 마음에 드는 풍경이 보이면 차 좀 세워서 구경하다 가자, 여기서 내려서 사진 좀 찍어도 되겠냐는 내 귀찮은 요청에도 꼬박꼬박 그래요, 좋아요, 누나 마음대로 등의 고분고분한 대답과 함께 차를 멈춰주는 내 마음을 잘 알아주는 일행 덕분에 편하게 그 경치들을 놓치지 않고 담아올 수 있었다.

아까 성인봉 올라가면서 마음속으로 욕해서 미안하다...


분명 얼마전에 자연이 너무 광활하다 느껴지면 사진찍기를 포기하고 내 눈에 담는것에만 집중한다고 말 한 것 같은데 이상하게 이날 저녁의 노을은 너무 예뻐서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지만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봐야 소용 없단걸 너무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소 생각하던것도 무시 할 수 있게 만드는게 정말 예쁜 풍경이겠지.

차를 타고 가면서 이렇게 까지 예쁜 오렌지 색깔 하늘은 처음이다 싶어서 계속 와 너무 예쁘다 진짜 예쁘다 라는 말만 연신 내뱉었다. 선키스트 오렌지 주스 광고에 나올 법한 오렌지 색상이 아닌 훨씬 톤 다운 된 오렌지와 호박 보석 그 사이의 색깔이 유채화 처럼 뭉개져 있다가 점점 일직선으로 비구름과 차이를 두고 자리를 잡았다.

돌이켜 생각 해 보면 나는 이날 아침엔 울릉도에서 한 50일 정도만 볼 수 있다던 일출도 봤었는데 이렇게 예쁜 일몰까지 보고 가다니. 원래도 일몰을 좋아하는 편이었던 나에게는 울릉도도 나랑 헤어지기 싫어하는가보다 하는 괜한 친근감과 질척거림이 피어났다. 나도 가기 싫은데 너도 가기 싫은거지?

그렇게 울릉도의 주황빛 노을을 만끽하며 숙소에 가는 중에 이번엔 주황빛 포크레인이 나타났다. 포크레인의 존재를 별 생각 없이 쳐다보고 지나갔으나 0.3초만에 이 오렌지 빛 세상에 딱 어울리는 피사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급하게 차를 돌려달라 부탁했는데 예상외로 흔쾌히 돌려주는 자동차에 이 주황빛 세상에 딱 어울리는 사진을 건지게 되었다.


그렇게 숙소에 도착 해 짐을 내리느라 차에서 내렸는데 빗방울이 몇방울 톡톡 떨어지길래 반사적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았는데

우와, 무지개가 떠있었다.


저렇게 선명하게 무지개가 떠있는건 처음봐서 우와 저거봐! 무지개야! 라고 외치자 짐을 꺼내던 동생도,손님이 없어 우리의 잠자리를 개인실로 옮겨 주셨다는 사실을 알려주러 다가오셨던 게스트하우스 사장님도 반사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뒤에 희미하게 보이는 쌍무지개!


오, 선명하게 잘 보이네요. 라는 사장님의 감상에 무지개를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동생이 그 뒤에 무지개가 하나 더 떴다며 다시 하늘을 가리켰다. 그러자 과연 그 뒤에 무지개가 하나 더 떠 쌍무지개가 빠끔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태어나서 쌍무지개는 처음봐서 빗방울 몇 개가 얼굴을 톡톡 두드리고 있는데도 하늘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와, 울릉도에 와서 하늘에서 보여줄 수 있는 예쁜건 다 보고 가는 것 같아. 라고 감상을 외치고 있는 나를 두고 혼자 음식과 짐을 숙소에 미리 갖다 둔 동생이 누나, 해 지는거 보고 올래요? 사장님이 해 지는거 볼 수 있을 것 같다그러시길래. 라고 울릉도의 마지막의 마지막을 장식하자는 말을 먼저 꺼내주었는데 그 내용이 상당히 마음에 들어 아 당연하지 당연하지 하며 차에 타자 바로 언덕길을 달려올라가 전망대에 차를 세워줬다.


아무도 없긴 하지만 해가 지기 전에 먼저 가서 보고 있으며 자리를 잡으라는 말에 후다닥 달려가 고개를 힘껏 내밀고 해가 지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해가 지는 것을 내다 보다 깨달았다. 이 전망대가 내가 울릉도에 처음 와서 윌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찍었던 그 어마무시한 언덕길이라는 것을.

처음 울릉도에 도착해서는 살면서 이렇게 높고 긴 언덕길도 처음 보고, 울릉도의 경치고 뭐고 짐을 전부 내다 버리고 차가 오건 말건 드러눕고 싶은 마음만 간절하여 그 간절함을 꾹꾹 누르며 도를 닦는 마음으로 언덕길을 오른 후 목숨을 건 퀵보드 라이딩을 했는데 그 언덕길에서 나는 울릉도 여행의 마지막 해가 지는 것을 보고 있었다. 이런 완벽한 서사의 의미부여를 할 수 있는 것을 보니 나는 울릉도의 이 길과 인연이 아닐까 라는 질척거리는 마음을 담아 해가 지는 것을 구경했다.


그렇게 주황빛에서 시작한 울릉도의 일몰은 주황색과 제비꽃이 섞인 오묘한 보랏빛으로 끝을 맺었다. 아마 이날 내가 본 울릉도의 하늘이 내가 울릉도에서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때에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루만에 속성으로 몰아본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뭔가 말랑말랑하고 멜랑꼴리해진 마음으로 물회를 먹으러 들어간 숙소에는 오늘 배를 타고 들어왔다는 새로운 손님이 있었고, 그 손님이 바로 우리가 나리분지를 올라갈 때 우리 앞에서 열심히 애 쓰고 가던 모닝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마지막 밤을 매우 친근하게 보내게 되었다.

저 술은 마가목주 입니다!


그래서 울릉도의 처음과 끝 모두 꽉 찬 여행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물론 다음날 오후 배 이므로 반나절 넘게가 아직 남아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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