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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살아임더 Jul 06. 2021

여행지에서 기억에 남는 노래 (1)

Imagine dragons - Thunder / 2018년, 대만

사람들이 여행지를 기억하는 방법은 제각기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여행지에서 산 엽서나 마그넷 등을 모을것이고, 여행지에 갈 때마다 문신을 하는 사람도, 누군가는 여행을 갈 때마다 향수를 사서 그 향수의 향과 여행지를 함께 기억한다고 했다.


이렇게 저마다 여행지를 기억하는 방법은 제각기 다르지만 나는 여행지를 기억하는 순간이 딱히 없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생각 해 본 적이 없어서도 있고, 눈에 보이는 거의 모든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서 일 수도 있어 나에겐 "그 여행지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가 없다.


다만, 몇 개의 노래는 그 여행지에서 그 순간의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이 노래들은 엽서, 마그넷, 문신, 향수 처럼 매번 볼 수 있는건 아니지만 가끔씩 그 특정 순간으로 나를 소환하는 책갈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리고, 대만이 내 기억속에서 특정 순간을 소환하는 노래는 너무 흔하지만 Imagine dragons의 Thunder.

그곳이 내 도피처 중 하나가 되었음을 깨달았던, 미친 척 하고 떠났던 1박2일의 대만여행을 함께 했던 그 노래.


2018년, 나는 만 2년간의 업무 경험 중 처음으로 사고를 쳤었다.

무엇보다도 날 괴롭혔던건 원래 사이 좋던 관계사에 트러블을 내 손으로 만들었단 자괴감이었다. 그게 무엇보다도 제일 내 깊숙이 박혀 계속해서 나를 갉아먹었고 무너뜨리기 충분했다. 같이 담당하던 사수는 이런 일로 너무 좌절 하지 말라며 토닥거려주었지만, 전혀 내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오지 않는 자신감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당장 다음주 부터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다. 내가 저지른 실수에 격렬한 몸부림을 치고 있었기에. 마치 이 실수는 제 자리를 내놓는 것으로 갚겠습니다. 뭐 의학드라마나 범죄물에서 내가 책임 지고 옷 벗을께! 같은 마음이었달까.


그 괴로움에 계속 젖어있지 말고 주말이 끝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말에 주말인것도 모르고 있다 휴일임을 깨닫고 그만 괴로움에 스스로를 옭아매지말고 리프레시를 하기로 다짐하고, 이제까지와는 정말 다르게 나를 다시 충전하고 싶었다.





보통 나는 그런 급격한 기분전환이 필요한 순간에 이걸 하면 반드시 기분이 좋아진다. 하는 것이 없기에, 마음속에서 이거다. 하고 떠오른 것으로 행동에 옮기는 행동, 기분파이다.


그런 내가 이거다. 한 것은 바로 대만으로의 도피였다.

살면서 해 본 것 중 가장 미쳤다 싶은, 바로 1박2일로 해외 여행 떠나기.


뭐, 남들은 1박2일로 가는걸 즐기는 도깨비 여행족도 있다고 하지만, 금요일 오후에 다음날 아침 비행기를 예약하고 당장 퇴근하는 경험은 도깨비 여행족도 안해보지 않았을까?


금요일 오후, 당장 다음날 오전 비행기를 예약하고는 비교적 정시퇴근에 가깝게 퇴근 한 후 집에 가서 바로 짐을 쌌고, 가족들이 어디가냐는 물어도 그냥, 좀 하루만 어디 갔다오게. 라며 으쓱 하고는 말았다. 내 스스로도 뭔가 미친것 같다 싶은데 다른 사람은 오죽할라고.


토요일 아침, 김포공항에서 출국하여 대만으로 항했다.



그날 아침, 한국은 비가 강하게 내리고 있었고, 그랬기에 내가 탔던 비행기와 공항사이의 연결 통로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아 약 20분 정도 연착을 하며, 타이베이에 도착했다. 그리고 한국과 달리 너무나도 쨍한 날씨에, 비행기에서 내릴때 내 얼굴엔 미소가 대만의 여름날 햇빛처럼 가득했다.  한국에선 연신 어두운 표정으로 며칠을 다닌 나는 누구인가 싶을 정도로


아, 여행. 얼마나 짜릿한 것인가.




타이베이 송산 공항을 나와 예약한 숙소로 가며 음악을 틀었다.

플레이리스트를 랜덤으로 설정한 후 가장 처음 꽂힌 음악을 이번 여행(?)을 하며 계속 들어야지, 하고 다짐하고 재생 된 노래가 바로 Imagine dragons의 Thunder.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 노래는 헤라의 로지새틴 제품의 광고 음악으로 사용 되었었다. (직업병) 그래서 이 여행이 있기전,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면 가끔 광고 영상에서 보여지던 분홍 꽃이 개화하는 장면이 가끔 스쳐지나가곤 했다. 하지만 이 여행을 계기로 그 장면은 다시는 생각 나지 않게 된 것 같다.


노래 가사는 모두가 알고있듯이 thunder, thunder, lightning then the thunder 라는 가사가 주문인가 싶을 만큼 반복된다. 그렇지만 이날 내가 꽂힌 부분은 바로 I was lightning before the thunder.  부분이었다.


알고 있겠지만 thunder는 천둥을 의미하고, lightning은 번개를 의미한다. 어렸을 적부터 천둥번개가 치는 날이면 늘 궁금했다. 분명 번개가 먼저 치고 그 다음에 천둥이 치는데 왜 번개 천둥이라고 하지 않고 천둥 번개라고 하는걸까. 찾아보면 누군가는 명확한 답을 하겠지만, 우리가 느끼기에 번개는 한 순간 번쩍 하고 지나가지만, 천둥은 뒤이에 하늘을 흔들어 놓는 소리로 우리에게 번개보다 길게 느껴지는 시간동안 소리라는 감각을 남긴다. 그 영향력 때문에 우리가 천둥 번개라고 하는건 아닐까.



어쨌든, 이 i was lightning before the thunder 라는 노래 가사가 갑자기 내 귀에 꽂혔다. 지금 이렇게 <도망>친 대만에서, 나는 그저 도망을 친 것이 아닌,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한 도피를 한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은 내가 천둥과 같은, 우뢰와 같이 더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기 전에 나는 더 빛날 것이다 하고 선전포고 하는 순간, 모두를 놀래킬 만큼 강한 천둥이 몰아칠 것이라는 것을 예고하기 위한 행동이다. 라고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넸다.

정말 이 1박2일동안 나는 어떠한 관광도 하지 않았다.


숙소에 도착하여 짐을 푸르고, 지난 여행에서 유바이크를 타고 도심 이곳 저곳을 누리다 발견했던 중샤오신셩의 어느 골목에서, 걸어가다 눈에 꽂힌 한 카페에 무작정 들어가 음료와 함께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집어온 내 분야 관련 서적을 읽어내려갔다. 그 책의 3분의 2정도를 읽다 고개 숙인채로 책을 읽다보니 목이 아파 고개를 들자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고, 계산을 하고 나와 타이베이 거리를 정신없이 걸었다. 내 성미에 찰 만큼.



당시 나는 중국어를 한참 배우기 시작해 지나가는 길에 보이는 간판, 표지판, 광고판 따위를 느리게나마 읽을 수 있었다. 이 도로엔 병원이 많네, 학원이 많네 따위를 깨달으며 걷다 보니 어느새 중샤오둔화였다. 당시 내 숙소는 시정부 역 근처에 있었다. 걸어서 다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어서 만족해 하며 눈에 보인 아무 호프집에나 들어갔다. 그리고 맥주를 한 잔 시켜 타이베이의 토요일 저녁을 즐기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나처럼 혼자 온 사람은 없었다. 주말 저녁을 즐기는 그네들의 열렬한 공기 속에서 완벽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이방인이 되어 그들을 관찰 했다.



나에게 대만은, 대만인들은 인생에 있어 큰 획을 남긴 사람들이고,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 국가이다. 내가 나고 자란 한국 다음으로 제2의 고향이라고 마음속으로 생각 할 만큼. 나는 어렸을 적 중국어 붐이 일어났을 때 한달간 배운 것 외에 성인이 된 후 스스로 중국어를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공부를 시작했다. 바로 대만에 다녀온 후에. 내 업무와는 전혀 다른 분야의 자기계발이기에 다들 왜? 그렇게 시간과 여유가 있어? 너 안그래도 바쁘지않아? 등의 걱정 담긴 말을 해 주었지만 내 여유의 일부를 내어주고라도 배우고싶었다. 왜냐하면 나는 대만에 너무도 빠졌기에 이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들의 길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너무 궁금했다. 그들을 알고싶었다.



어떤 계기가 있던 것은 전혀 아니었다. 타이베이의 지하철 Red Line을 타고 지나가다 지엔탄역을 지나가면서부터 바깥에 보이는 대만의 풍경이 너무 좋았기에?

송산 공항에서 Brown Line 지하철(지상철이 맞으려나)을 타고 가다 보면 보이는 바깥 풍경이 좋아서였을까?


마치 홍콩 영화 해피투게더의 마지막 장면에서 양조위가 대만 지하철을 타고 보던 그 바깥 풍경과 닮아있는 그것 때문일까. 보영을 두고 장의 나라인 대만에 왔을 때 아휘가 보며 느낀 그 감정이 나에게도 옮아왔었기 때문일까?

아직도 오랜 시간을 두고 곰곰이 생각해도 내가 왜 대만에 간 다음 대만에 그렇게 빠졌는지, 중국어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는지 이거다! 하는 한가지의 장점이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도 누군가와 진짜 사랑에 빠진다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이유없이 좋다고.

사람 마음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할 만큼 사람의 마음은 가장 갈피 잡기 어려운 것이라고 본다. 그런 사람이 무엇인가를 좋아한다고 느꼈을때. 너 왜 그것을 좋아해? 라고 물었을 때 만약 그곳의 음식이 좋아서, 그곳의 풍경이 좋아서, 그곳의 사람들이 좋아서. 라고 내가 답 했다면. 그 좋아하는 명확했던 이유가 사라지면 나는 어떻게 느낄까. 더이상 그 곳을 안좋아하게 될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좋아했던 그 이유만을 그리워 하게 될 것 같다.



하지만 좋아하는 명확한 이유가 없는 맹목적인 좋아함은 양날의 검 같지만 적어도 명확한 이유가 있을 때 보다는 더 오랜 기간 좋아하게 되는 것 같다. 우선은 이유 없이 좋아하다 점점 그 좋다는 감정에 푹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다 그대로 잠식 되던지, 아니면 빠져 나오던지 둘 중 하나니까. 다행히 나는 잠식되는 중인지, 당분간은 대만을 좋아한다는 마음에서 헤어나올 생각이 없지만.


그렇게 강한 인상을 준 만큼, 한 것 없이 그저 어느 초여름의 주말, 별거 없이 그 나라의 아무 카페에 들어가 책을 읽고 나와 산책하다 보인 호프에 들어가 혼자 술을 마시고 사람을 구경하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나는 리프레시가 충분히 되었다. 토요일 저녁 답게 호프에 가득한 사람들의 대화도 굳이 애를 쓴다면 주변 테이블에서 하는 말을 이해 할 수도 있겠지만, 애쓰지 않게 됨으로써 나에게 찾아오는 완벽한 타인으로써 느낄 수 있는 자유. 불완전한 완벽한 타인이 얻는 달콤한 휴식.


그 휴식 속에 젖어들며 나는 내가 이 곳에 온 이유를 곰곰이 생각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서툴게나마 마음을 다잡았다.


나중에 꼭 이 사람들도 아는 그런 프로젝트를 해야지. 주눅들지 말고 더 열심히 해서 이들을 더 많이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지. 완벽한 Thunder가 되기 위해, 조금 더 많은 번개가 되어 산발적으로 번쩍여야지.


그게 내가 imagine dragons의 thunder를 들으며, 대만의 길에서 느낀 감정이다.


그리고 나서는 숙소로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전날 입고 온 옷에서 웃옷만 바뀐채로 트롤리를 질질 끌며 가족들이 대만에서 사오라고 부탁했던 물건들을 사기 위해 종종걸음 쳤었다. 그리고 다시 한국에 돌아갈 무렵엔 한국을 떠날때완 달리 밝고, 한번 다시 해 봐야겠다는 마음만이 가득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 1박2일의 일탈이 끝난 후 이 노래를 듣다보면 내가 그날 타이베이에서 느낀 감정들이 되살아난다.


내가 보통 겪었던 한여름의 과한 습하고 꿉꿉함이 아닌 조금 넘친다 싶은 정도의 습도와 여전히 강렬한 햇살, 그리고 그 후덥지근한 분위기와 대비되는 청량한 감성을 가진 대만인들. 그들의 말을 조금은 할 줄 알지만, 또 원하면 얼마든지 완벽한 이방인이 될 수 있는 나의 처지.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며 관심 보이지 않는 고립감에서 오는 위로감.


그리고 언젠간 Thunder가 되어야지 하는 다짐.


그리고 돌아오는 길은 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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