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애도(哀悼)] - 2023년 8월 16일 수요일
가발을 벗으려고 꽤 오래 준비했다.
짧은 머리가 허전할 거 같아 귀를 다시 뚫고, 귀걸이를 사고 머리를 조금 다듬었다.
어색했지만 잘 어울려 다행이다.
나의 과거를 부정하는 거 같아 뱉어내지 못하고 있었던 순간을 이제야 털고 있는 듯하다.
외모의 변화는 심리적으로 꽤 큰 영향을 끼친다. 머리가 시원해진 만큼 마음이 시원하다.
새로 산 귀걸이를 보석함에 넣다가 옆 칸에 있던 반지 2개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의 보석함에서 발견한 엄마의 반지와 엄마가 나한테 사 준 내 반지.
30년 전 대학 입학 때 엄마는 선물로 반지를 사줬다. 14k 빗살무늬 반지.
처음으로 귀금속을 선물로 받고 진짜 어른이 된 거 같아 그 후로 10년 넘게 그 반지를 빼지 않았었다.
그러다 첫 아이를 낳고 기르던 어느 날, 거추장스러워 손가락에서 빼고는 보석함에 고이 넣어 두었었다.
그럼에도 어른의 표식 같던 그 느낌이 너무 좋아 내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면 나도 엄마와 똑같이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벌써 그 세월이 흘러, 큰아이한테도, 작은아이한테도 예쁜 목걸이를 사줬다.
아이들의 목에서 반짝이는 목걸이를 보니, 내가 다 뿌듯하다.
엄마가 사준 반지를 꺼내서 다시 손가락에 끼워본다.
나이가 들면 손가락이 두꺼워진다더니 약지에는 작고 애지에는 크다. 반지 낀 손을 쓰다듬으며
나의 그 시절을 잠깐 떠올려 봤다. 대학에 합격한 막내딸 손가락에 반짝반짝한 반지를 끼워놓고 다 키웠다며 엄마가 후련한 마음이었으면 좋았겠지만, 결혼 후에도 내 옆에 머물며 애가 애를 키운다는 말을 엄마가 꽤 자주 했던 걸 보면 그 후로도 나는 계속 덜 자란 딸이었던 모양이다.
보석함에 고이고이 모셔져 있다가 내 보석함으로 이사 온 엄마의 반지도 끼워본다. 약지에는 크고 중지에는 작다. 엄마 손가락은 내 손가락보다 굵었다. 엄마의 손은 뚜렷하게 생각나는데 이 반지를 끼고 있었던 기억은 없다. 어느 날 어느 곳에 갈 때 끼려고 이 반지를 샀을 테지만, 새끼 다섯을 키우던 엄마는 손이 거추장스러워
더 이상 반지를 끼지 못하고 보석함에 빼두고는 영영 잊어버린 듯하다.
아이들을 다 키운 내 손이 허전해서 2년 전부터 다시 반지를 끼기 시작했다.
이 반지도 내가 열심히 끼고 다녀야겠다. 열심히 잘 쓰다가 애들한테 줘야지.
할머니의 인생을 머금은 반지를 가지는 행운을, 그런 따뜻한 추억을 줘야지.
나는 엄마 덕분에 계속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거 같다.
근데, 둘째 언니! 언니가 사준 진주 펜던트 목걸이는 꽤 오래전에 팔았다. 그런 거 있는 줄도 몰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