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나의 애도(愛道)] - 2022년 12월 22일 목요일
인간이 느끼는 유일한 감정은 두려움밖에 없다고 한다. 나머지는 그 두려움으로 인해 비롯되는 부차적인 감정이라고 한다. 명확하게 공감되는 건 아니지만 요즘 내 속에서 올라오는 다양한 감정의 원천을 따져보면 맞는 말인 거 같기도 하다.
살면서 두렵다는 감정을 느낀 적은 거의 없었다. 크고 작은 선택의 결과들이 대략 괜찮았고, 그 덕에 나에 대한 신뢰와 자기 긍정이 있어 해결하지 못할 큰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다.
둘째에게 일어난 과거의 일을 알게 된 2016년에도 두렵지 않았다.
내가 끝끝내 애들을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었고 둘째 아이도 아주 잘 이겨낼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두렵다. 내 아이들의 삶을 떠올린 순간부터 두려워졌다.
아이들에게 언제 알려야 하는지 계속 저울질이 된다.
최대한 늦게 말하고 싶었고 아이들은 2022년은 무사히 넘겼으면 하는 마음에 1월 5일 마지막 검사일을 D-day로 잡았었다. 말하고 거의 바로 입원과 수술을 해야 하니
아이들에게도 소화할 시간을 줘야 할 듯하여 12월 31일 두 번째 검사일로 당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2022년 마지막 날이네.
요건 좀 아닌 거 같다.
다시 12월 27일 첫 번째 검사일 저녁에 말해야겠다고 수정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입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과는 별개로 빨리 말해야 할 것만 같은 조급함이 생긴다.
아이들이 자기의 삶을 너무 잘 꾸려가고 있어서 그 크고 긴 계획에 내가 변수가 되는 게 싫다.
나는 아이들이 예상하고 있는 거리에서, 예측도 못한 크기로 살아가고 싶다.
내 새끼들이 나의 삶을 고려해 인생의 방향을 바꾸게 만들고 싶지 않다.
생기고 말았네. 그러니 안심시켜야 한다. 절대 너희들의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약속을 하루이틀 미루고, 다음 주에 할 일을 이번주로 당기고, 식사를 알아서 챙기고,
집안일을 자발적으로 하고, 엄마의 무사함을 조금 이른 나이에 때때로 걱정하는 정도의 물리적 변화는 생기겠지만,
대학 준비를 위해 과외를 하고, 청풍에서 하는 프로그램을 언제라도 신청하고, 피부과를 계속 다니고, 필라테스와 복싱을 계속하고, 영어 시험 준비를 시작하고, 유학 기회도 계속 엿보는...
미래를 위해 지금 하는 그 모든 준비와 상상에는 화학적 변화가 없을 거라고.
그럼에도 아이들의 마음이 한 번쯤 쿵하고 내려앉을까 겁이 난다.
아! 그래서 빨리 말하고 싶어졌나 보다.
사실을 알게 되고 가슴이 쿵 내려앉아 겪게 되는 슬픔과 걱정, 불안을 같이 애도하고,
그리고 다시 안도와 평온함으로 돌아오는 것까지 함께 겪어내고 싶다.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지금은, 너무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