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도(愛道)] - 2023년 9월 8일 금요일
국립암센터에서 수술날짜를 잡은 2022년 12월 12일부터 한 달 뒤 예정된 22일간의 휴가로 연구원에서 내가 부재한 날들에 대비해, 처리할 수 있는 것은 마무리를 당기고 예상되는 것은 세세히 기록하느라 어느 때보다 일을 많이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내가 수술받을 수 있는 몸인지, 발견되지 않은 다른 곳에 숨어 있는 병변은 없는지를 살피느라 여러 차례 병원에 가야 했다. 탁상 달력에 각종 일정들을 빼곡히 적어 놓치는 일이 없도록 스스로를 단속하는 내가, 정작 인생이 걸린 수술 전 검사 일정은 달력에 기록하지 못했다.
전에 없이 자주 휴가를 내면서도 직원들에게는 설명하지 않은 채 몰래 병원에 다니고, 티 안 내고 일을 마무리하느라 시간이 부족하면서도 자꾸 비집고 들어오는 복잡한 생각들과 흘러넘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마치 객기로 들이부은 술 때문에 뒤틀린 위장이 소화되지 못한 찌꺼기를 의지와 상관없이 뿜어내는 토악질을 하듯 불행함을 일기로 쏟아냈었다.
내가 나를 안쓰러워하는 날들이었다.
나는 내 병을 정확하게 입에 담지 못하는 채로 검사를 받고, 수술을 하고, 3개월간 4번의 항암을 하고, 다시 19번의 방사선 치료를 매일 받았다. 그 사이 머리카락은 홀랑 빠져 불편하고 어색한 가발을 쓰고 출근을 했다. 그렇게 누구는 알게 되고, 누구는 모른 채로 꽤 오래 자리를 비웠다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머리스타일과 하루가 다르게 안 좋아지는 안색 때문에 누군가는 짐작을 했고, 잘랐다고 하기에는 너무 짧아진 머리카락으로 출근한 후로는 모르는 직원은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아직 꽁꽁 싸맨 마음을 풀지 못하고 있다.
나는 아직도 '암'이라는 단어를, 내가 '유방암 환자'라는 사실을 내 입으로 말하지 못한다.
오늘에서야 생각해 본다. 왜 그렇게 비밀로 하고 싶었을까?
인생이 흔들리는 경험이었다. 그래서 겁이 났다.
내가 잘 못 살고 있었다는 느낌, 내 삶이 부정당하는 느낌, 그거였다.
내게 온 불행이,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반증이 아님을 안다.
그저 나와 다르게 살고 있어서 내가 친하게 지내지는 않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이란 걸 인정한다.
손으로 내 눈을 가리고는 남들이 나를 보지 못할 거라 우기느라 온몸에 힘을 줬던 날들에, 추락하지 않겠다고 매일매일 다짐하던 날들에, 헛웃음이 나온다.
살다 보면, 그렇게 무작정 불행하기만 한 날들도 있다는 걸, 그게 추락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걸,
그걸 너무 잘 알고 삶을 유연하게 살아내고 있었음에도 흔들릴 만큼 어마어마한 불행임을 인정한다.
인정하면 보이는 것이 있다.
나는 불행도 잘 이겨내고, 내가 지향하는 가치로운 삶을 계속 만들어 가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