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다리를 움직여 계단을 내려가다, 낯선 기분으로 바닥에 이른다. 고개를 빼고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서서히 공간을 눈에 익힌다. 펼쳐진 공간의 반대편을 향해 걷다가 모서리와 벽을 마주하고 멈춰 선다. ‘팔을 뻗으면 천장에 닿을까?’ 고개를 들어 천장의 높이를 가늠하고 공간과 나의 관계를 그려본다. 낯선 공간은 내 몸을 움직이게 하기도, 멈춰 서게 하기도 하면서 공간을 헤아려보게 한다.
작품에게도 주변을 살필 눈과 공간을 활보할 다리가 있었다면 전시장을 마음껏 탐색하고 공간과의 관계를 그려볼 수 있었을까? 낯선 공간에 당도한 작품은 움직여볼 틈도 없이 한곳에 고정되곤 한다. 《Fluid Floor》를 기획한 네 작가는 작품의 디스플레이를 고정하는 나사를 풀어, 작품과 공간이 서로 가까워질 기회를 만든다. 여기서 이루어질 작품과 공간 사이의 실험은 그 자체로 전시의 형식이 된다.
네 작가는 전시장에 작품을 설치한 뒤 각자 서로의 작품에 개입한다. 작가는 2월 28일 날 각각 작품을 설치하고, 3월 1일과 3월 6일에 개입을 진행한다. 작가는 주어진 시간 동안 작품을 분해하거나 조립할 수 있고, 위치를 이동해 디스플레이를 바꿀 수도 있다. 여기서 작가의 개입은 나름의 이유를 가진다. 웹사이트¹에 기재되는 각자의 이유는 작업을 위치시키는 논리가 얼마만큼 명료하거나 엄밀할 수 있는지, 심지어는 얼마나 짓궂거나 엉뚱할 수 있는지 드러낸다. 각종 이유로 모양과 자리를 바꾼 작품은 최초의 의도와는 멀어져 작가를 당혹게 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 관여는 작품에서 수정 가능한 요소와 변해서는 안 될 핵심이 되는 골조를 확인하게 하고, 작가가 가진 작업 논리를 유연하고 탄력 있게 만든다. 서로에게 조심스럽게 침투하고, 기꺼이 허물어지는 과정은 작품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과 또 다른 해석을 추출한다.
‘너의 작업에 침투하겠다’는 선언은 불분명한 기준 아래, 과도한 주장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들이 서로의 작업에 침투하기를 허락한 것은, 서로가 서로의 세계를 확장할 수 있다는 믿음에 그 기반을 둔다. 네 작가는 전시 이전에 이미 물성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로 엮여, 서로의 작품을 면밀히 살펴보고 피드백을 나누는 시간을 거쳤다. 이 전시는 서로의 작품을 관찰한 끝에 작품에서 발견한 가능성을 실험하고, 그 실험에 다시 반응하는 대화의 장으로 또 한 번 이어진다.
출렁이는 바다에 뜬 요트가 굽이치듯, 작품은 한 점에 있는 듯하면서도 미묘하게 방향과 위치, 높이를 바꾼다. 불어오는 물결을 타고 움직이다 보면 요트는 때때로 안전지대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이들이 ‘나의 세계’를 넘어 기꺼이 서로에 의해 와해되고 확장되었을 때, 여기 어떤 풍경과 이야기가 남게 될까. 어쩌면 그 풍경은 증축이 아닌 철거에, 완결이 아닌 해체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창하게 결말지어지지 않더라도 괜찮을 것 같다. 이 시간 동안 계속해서 움직일 ‘Floor²’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흥미로울 테니 말이다.
《Fluid Floor》 Installation view(2st), Boloc Seoul, 2022. Photo by Hong Ye J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