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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주 변호사 Apr 09. 2024

바람난 남편, 이혼을 선택하는 것이 맞을까?

이혼전문 정현주 변호사


오늘은 작년부터 이혼 상담을 여러 차례 하셨던 분과 다시 만난 날이다. 몇 개월 만에 만난 수척해 보이는 그분은 ' 잘 지내셨죠? 몸은 좀 괜찮으세요? '라는 나의 인사말에 바로 눈물부터 보였다.

' 사실은 지난주에 변호사님께 간다고 예약 잡아놓고도 한참을 망설였어요. 여기 올 때도 잘하는 짓인지,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계속 들고...'


이혼조정에  필요한 서류와 진술서까지 준비했지만 그녀는 아직 마음의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녀는 너무 오랫동안 같은 자리에서 상처를 받으며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마음의 정리라는 것이 어떻게 쉬울 수 있을까?


'선생님,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잘 결정하셨어요. 이제 놓으셔야 할 때예요. 그리고 제가 감히 장담하는데, 이 일이 마무리되면 더 좋아지실 거예요. '


법률사무소 봄 정현주 변호사


두 아이와 함께 잘 지내고 있었던 그녀에게 불행한 일이 생긴 것은 벌써 9년 전이다. 자영업을 하고 있던 남편이 갑자기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다며 집을 나가버린 것이다. 사실 남편은 그전에도 잠깐씩 바람을 피운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집을 나간 것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일이었지만 그녀는 남편이 잠깐 바람이 난 것이고 기다리면 가정으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남편이 돌아오게 하기 위해, 그 여자에게 상간 소송을 해야 할지 아니면 어떻게 해야 할지 여러 차례 변호사 상담도 받았다. 하지만 남편은 집을 나간 직후부터 아무런 생활비도 주지 않으며 모든 연락을 차단한 채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오래도록 기다렸지만 남편은 끝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그 긴 시간 동안 아이들은 어느새 훌쩍 커서 성인이 되었고 그녀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상처를 받았다. 갈기 갈기 부서졌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5년 정도가 지나자 처음에는 이혼에 대해 유보상태였던 친정집에서도 그냥 이혼을 하라고 말하고, 이미 성인이 된 아이들도 엄마에게 이혼을 권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가정을 포기할 수 없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남편이 정신을 차리고 돌아올 수도 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러던 중, 남편에게서 공동 명의였던 집을 그대로 줄 테니 이혼해달라는 연락이 왔다. 주위에서는 차라리 잘 되었다며 돈이라도 챙기라고 권유했지만 그녀는 어떻게든 가정을 지키고 싶었다. 그것이 집착이든 뭐든, 그녀는 자신의 손으로 가정을 놓는 일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며 건강까지 안 좋아지자, 지인의 권유로 이혼에 대한 상담을 받으러 법률사무소 봄을 찾아온 것이다.


법률사무소 봄 정현주 변호사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그동안 숱하게 보았던 이혼을 앞둔 부부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혼의 계기는 다양하지만 이혼을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당사자들의 문제다. 의외로 많은 부부들이 배우자가 바람을 피운다고 하여 바로 이혼을 하지는 않는다. 기질적인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바람을 피우게 되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고, 또 바람을 피운 것을 알게 되면서 비로소 마음을 정리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른 것이다. 9년이라는 시간은 설사 어떤 감정으로 이어졌든, 이제는 상대를 놔 줘야만 하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나는 그녀에게 이제 그만 놓아주라는 말을 했다.


' 죄송하지만, 남편분이 돌아오신다고 해도 행복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때는 갈 곳이 없어서 돌아오는 이유가 가장 클 것이고, 이미 상호 간의 신뢰가 깨졌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 긴 시간 동안 고통받는것보다 나의 인생을 사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


그녀는 나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결국 이혼을 택하지 않고 돌아갔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몇 번이나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녀는 그때까지도 남편에게 깊게 실망한 상태였지만 여전히 자신의 상황을 정리하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긴 시간 동안의 고통때문인지 이번에는 건강까지 악화가 되자, 남편이 그토록 원하는 이혼을 하지 않고서는 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 변호사님, 지금 제가 맞는 선택을 하고 있는 거겠죠? '


' 네, 그럼요. 지금까지 잘 견뎌오셨어요. '


' 아직도 기다리면 돌아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요. 이게 다 제 미련이겠죠? '


나는 그녀를 위해서, 조금 강하게 말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많은 분들이 이혼을 앞두고 가장 많이 망설이지만, 실제로 이혼을 한 후에는 더 많이 행복하게 지내세요. 선생님도 분명 행복해지실 거예요. 지금 동아줄이라 믿었던 것은 나를 갉아먹는 썩은 동아줄입니다. 더 나아지는 삶을 위해서 지금은 손을 놓아야 할 때예요. '


분명히 말해야 했다. 나를 괴롭히는 것들에게서 멀어지라고, 나를 상처 주는 관계는 틀림없이 그 상처가 반복된다. 그리고 스스로도 은연중에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 다만 현실을 외면하고 회피하거나 마음을 놓는 것이 힘든 것일 뿐이다. 그렇더라도 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를 위해 인정하고 나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나 스스로를 갉아먹는 관계를 끝내지 않는 이상  마음은 더 다치기만 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결국, 긴 시간을 고통받다가 이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지금보다 행복해지면 나에게 다시 연락하기로 하였다.

그녀에게, 지금이라도 정리하는 것을 선택해서 다행이라는 말을 했다. 어떤 관계에서는 단지 손을 놓은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좋아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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