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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주 변호사 Apr 23. 2024

어떤 이에게는 마음의 통로가 필요하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

마음의 통로가 없는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방법은 이런 것이다.

무엇인가를 남기고 싶은데 마음속의 생각들이 아직 갈무리되지 않아서인지 말이나 글의 형태로 나오지 않는다. 어떤 형태를 가지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시간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가 더 필요한 것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조금 더 적어보겠다.


 



상담에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역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타인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는 것은 생각보다 참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대에게 나의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이유는 상대가 나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지 않거나 또는 상대가 나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처음부터 느끼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상대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지와 상관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그것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망에 근거한 것이며, 말을 할 때의 상대방의 반응은 부차적인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만약 상대가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면 조금 더 이야기를 많이 꺼내게 되겠지만 그것이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타인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어려워하고, 또 쉽사리 이야기를 풀지 못한다. 어떤 경우에는 내 속에 있는 이야기들이 곪아 어떤 형태로든 표현을 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하더라도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다. 마음의 통로는 길을 내줘야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내 마음의 이야기들은 밖으로 나가는 일종의 길이 필요하다. 어떤 이들은 오래전부터 그 길을 만들고 닦아왔다. 그래서 언제든 누구를 만나 자신의 마음의 이야기들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어쩌면 처음부터 그 길을 타고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길을 터놓지 못한 이들은 오랜 세월이 흘러 갑자기 그 길을 만들지는 못한다.


누구나 타인의 이야기를 하염없이 듣는 것보다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고 또 나의 마음을 풀어낼 수만 있다면 그런 시간을 각별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길을 오랫동안 만들지 않아 이제서야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 어쩌면 나의 이야기를 하지 못해 굳어진 많은 시간들 속에서 익숙해진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바로 말을 하라고 다그치기보다는 마음의 통로를 만들 수 있도록 시간을 나누며 같이 있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추운 겨울, 야생의 늑대는 오랫동안 문밖에서 서성였다. 늑대는 온기가 가득한 방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 방법을 몰랐다. 어느 날 늑대와 비슷한 모습을 가진 이리가 문밖에서 멈춰있는 늑대를 보며 비웃듯이 말한다.


' 그 방에 들어가려고? 지금 너의 모습을 봐. 너는 그 방과 전혀 어울리지 않아. '


이리의 말에 깜짝 놀란 늑대는 문득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흉측한 이빨과 짙은 회색의 눈은 그렇다 치더라도 오전 내내 달리던 들판의 풀들이 털에 덕지덕지 붙어있고 털들은 보기 흉하게 헝클어져 있었다. 네 발에도 흙먼지가 가득이다. 한편 늑대의 눈빛이 향하던 그 방은 겉으로 보아도 깨끗하고 잘 관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늑대는 잔뜩 풀이 죽은 것처럼 고개를 떨구었다. 어떻게 생각해도 이리의 말은 맞았다.


' 오히려 나는 그들에게 무뢰한(無賴漢)처럼 느껴질 테지.


나는 그 방에 속하고 싶지만 흙이 가득한 발로 아마 그곳을 짓밟게 되고 말 거야. '


이미 너무 많은 폐허를 거친 야생의 늑대는 결국 그 방에 속하는 것을 포기했다. 체념했고 받아들였다. 일단 체념하고 받아들이면 그 이후에는 머리는 편해진다. 마음만이 크게 요동칠 뿐이었다. 하지만 그 마음을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마음만은 오롯이 나의 것이다. 내 마음이 크게 요동친다고 한들 겉으로는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마음의 소리는 물론 여전히 그대로 남아, 어떤 방식으로든 이것을 꺼내는 것이 필요했다. 하지만 늑대는 방법을 몰랐다. 마음의 소리를 꺼내는 방법을 말이다. 그 누구에게도 배운 적이 없고, 배울 수 있는 자를 찾기도 어려웠다.



나는 그 옆에 바로 앉아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렇게 충분할 정도로 필요한 시간을 보낸다. 마음의 통로가 생길 때까지 말이다. 길이 없는 자의 길을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충분한 시간을 함께 보내고, 상대의 마음을 대신 전해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론 상대의 세계를 이해하고 온전히 받아들일 만큼의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지만, 때때로 우리는 어떤 순간순간에 함께 그 공간에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세계를 이해하기도 한다.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표현은 이루어졌다.


마음의 통로가 없는 자에게, 어쩌면 많은 것을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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