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봄의 계절이 끝나기 전에,
내내 춥기만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봄이 끝나버린 느낌이 든다. 마치 징검다리처럼 봄의 계절은 잠깐 빛을 내다가 사라져 버렸다. 기력을 잃은 나는 멀리 섬이라도 떠나오고 싶었는데, 일에 치이고 마음에 치어 결국 어디로도 가지는 못했다. 갑자기 슈베르트의 마왕*이 생각난다.
Siehst, Vater, du den Erlkönig nicht?
아버지, 아버지에게는 마왕이 안 보이세요?
Den Erlenkönig mit Kron’ und Schweif?
금관을 쓰고, 망토를 두른 마왕이?
Mein Sohn, es ist ein Nebelstreif.
아가, 그건 그저 안개의 한 자락일 뿐이란다.
그 어느 날 봄꽃을 구경 가고 싶었던 나는 이미 져버린 하얀 목련꽃이 흐드러지게 핀 한 때의 나무를 생각한다. 아마 그런 봄꽃들은 생각보다 추운 계절에 꽃을 피우고 날이 따뜻해지기 전 모두 끝난다는 생각을 하면서.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글을 쓰기는 참 어렵다. 물론 내가 쓰는 모든 글들은 모두 스토리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들의 영감(靈感)은 그날의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그날의 기억들로 한 숨을 잔뜩 내쉬어 하나의 글을 완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꼼꼼하지 못한 나는 오래도록 이어서 써야 하는 글들의 숨을 이어가기가 무척 어렵다.
지금부터 10년 전 즈음, 처음 '달로가다' 블로그를 만들었을 때는, 여행을 다니면서 생각나는 일들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나는 공부를 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늘 어디론가 떠나고 있었으므로. 그때의 나를 추억하면 무척 자유롭고 방종했으나 늘 어딘가 불안정했다. 마치 필연적으로 한 곳에서 머물며 유유히 떠다니는 향유고래와 같았다. 나 스스로 드 넓은 바다를 향해 나가야 하지만 너무나도 비좁은 곳에 갇혀 있으며, 잠시 그곳에 머물러야 하는 한 때의 숙명(宿命)을 타고났다고 생각했다. 나는 매일처럼 사유(思惟)하고 숙명과도 같은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인간은 대부분 현재에 오롯이 집중하지 못하고 늘 과거를 미화하거나 다가오지 않을 미래를 기대한다. 왜 우리는 바로 이곳,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때'를 기다린다고 말한다. 마치 어떤 희망이나 믿음이 있어야만 현재의 불행한 삶을 버틸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 나는 알 수 없는 시간에 깨어 잠시 눈을 감고 멀리서 들려오는 새벽의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무너져 내린 성벽을 생각한다. 그 성벽 아래에 깔린 슬픔마저도. 그것은 온전한 나의 것이 아니다. 그 아름다운 성벽은 언젠가 허물어지는 '때'를 기다렸던 것 마냥 늘 위태로웠다. 이런 것들을 어떻게든 남기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지점은 그곳에 머물러 있고 나는 이제 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이 봄의 계절이 끝나기 전에,
오래간만에 예당*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그림을 구경하거나 또는 바로 앞에서 연주하는 음악을 듣고 싶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조금 더 작은 규모의 연주회지만 그런 것까지 찾기는 어려우니까 말이다. 저녁 산책과 꽃잎 차, 브람스나 바흐의 소품집들과 같은 어쩌면 소소한 것들, 상처받은 마음에 힘을 보태줄 아주 작은 것들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