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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주 변호사 Jun 05. 2024

전쟁과도 같은 이혼 조정실의 풍경

법률사무소 봄 정현주 변호사


나는 22년 3월 남양주지원이 처음으로 개원하면서부터 지금까지 가사조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사조정위원이란 이혼조정을 할 때 조정을 할 때 중재를 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조정 기일이 오기 약 3주 전부터 사건 기록을 법원으로부터 받게 된다. 처음에는 남양주지원의 초대지원장님이 이혼 조정을 전담으로 하셨지만, 23년도부터 남양주지원에는 이혼조정전담변호사가 선발되어 지금은 지원장님이 직접 조정장으로 참여를 하지는 않으신다. 


법률사무소 봄의 수많은 이혼조정사건과 또 조정위원으로 만나는 이혼사건들을 하나하나 담을 수는 없지만 합의된 사건임에도 막상 조정실에서 딴 소리를 하는 당사자, 조정이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한 사건인데도 조정이 되는 사건들, 내용에 대한 이해 없이 무조건 반반을 외치는 조정위원들 등 이혼 조정실의 풍경은 생각보다 무척 다채롭다. 한편 나는 한쪽 당사자를 대리하는 소송대리인으로서, 또는 양 당사자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조정위원으로 한때는 사랑한다고 믿어 결혼했던 인연의 다양한 끝. 을 보곤 한다. 


최근 며칠은 이혼 조정실을 정말 자주 갔다. 지난주에 갔던 이혼 조정사건은 사실 이 번이 두 번째 조정으로 일 년이 넘게 지속된 사건이었다. 처음 이혼조정신청을 할 때만 해도 상대방이 이혼 의사가 분명하다고 했는데, 막상 조정 기일이 되자 당사자는 나오지 않고 선임한 변호사만 출석을 했다. 그리고 상대방 변호사는 밑도 끝도 없이 이혼 의사가 없으니 조정을 할 수 없다.라는 말을 하여, 결국 이 사건은 조정불성립으로 끝이 났고 곧바로 이혼 소송으로 진행을 하게 되었다. 


상대방이 이혼을 못하겠다는 것은 단순한 오기였던지, 실제로 상대방은 자신이 처음에 말했던 것과 달리 면접교섭권도 잘 이행하지 않았고 양육비를 내지 않기 위해 회사를 퇴사하기도 했다. 우리는 이손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재산명시신청, 양육비 사전처분, 계좌 조회까지 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했고, 변론을 종결해 달라는 요청을 했는데 상대방이 협조적이지 않아 소송이 지나치게 길어졌다. 의뢰인은 변론 기일이 끝날 때마다 ' 변호사님!, 이 번에는 꼭 끝내주세요. '라는 말을 했다. 이혼 소송을 하면 정말 자주 듣는 말이 바로 ' 이번에 제발 끝났으면 좋겠어요! '라는 말이다. 


결국 이 사건은 재판부가 한 번 변경되어 조정으로 회부되었는데, 소송을 이제 그만 종료하고 싶다는 의뢰인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조정으로 결국 마무리되었다. 조정을 하다 보면, 항상 이혼을 원하는 쪽에서 이런저런 손해를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조정위원들은 어느 정도 시간이 가면 어떻게든 조정을 성립시키겠다는 보상적인 마음이 들게 마련이라 양보하는 쪽에 더 양보를 하라는 취지로 설득을 하기도 하는데, 내키지 않으면 굳이 들을 필요는 없다. 조정위원은 말 그대로 '중재를 하는 자'이고, 그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해서 크게 불이익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정을 하다 보면 '어차피 본안 소송으로 가도 지금 청구하시는 금액이 어떻게 될지 몰라요. '라는 취지의 반협박(?)을 하는 조정위원들도 있는데, 만약 법조인의 자격이 있는 변호사 또는 전직 법관의 말이라면 들을 필요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조정위원의 직업은 민간인이고 법적인 것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냥 던지는 말일 가능성도 무척 많다. 


법률사무소 봄 정현주 변호사


오늘 있었던 이혼 조정은 당사자가 직접 나왔던 조정이다. 이번 의뢰인도 이혼에 이르기까지 많은 심적 갈등이 있었는데, 배우자가 전혀 변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어 빨리 이혼을 하고 차라리 한 부모 가정의 혜택이라도 받고 싶어 이혼을 결심하게 되었다. 배우자는 늘 말로는 무엇이든 다해줄 거란 이야기를 하면서 실제로는 가족들에게 계속 피해를 줬다. 지금도 마음은 이혼을 원하지는 않지만 의뢰인이 원한다면 이혼을 해준다고 말을 하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재산분할로 다툼이 시작되었다. 이혼은 원하지 않지만 재산분할로 다투는 현실은 이혼 소송에서 정말 자주 일어나는 패턴이기도 하다.


' 본안 소송을 가면 저희한테 유리합니다. 일정 이상 너무 양보하지 마세요. ' 



조정이 생각보다 길어지고 상대방이 화를 내자 의뢰인은 무척 불안해했다. 이렇게 되면 지금 상황을 어떻게든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 손해를 보더라도 빨리 정리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조정위원은 이쪽에서 양보를 할 것 같자 더한 양보를 권유하기도 한다. 보다 못한 나는 의뢰인을 잠시 데리고 나와 조금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방에서 압박을 하면 제대로 판단을 할 수 없다. 또한 조정이 일단 성립되면 항소가 없으므로 결과를 바꿀 수가 없다. 


결국 끝없이 양보를 바라는 상대방의 태도 때문에 우리는 조정을 하지 않고 본안 소송으로 가서 다투겠다고 말을 했으나, 그 말에 화가 난 상대방이 갑자기 의뢰인에게 화를 내면서 다투는 일이 발생했다. 조정실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다행히 한 명의 조정위원이 상대방을 잠시 데리고 나가 이야기를 하여 마음을 풀어주었다. 이처럼 갑자기 날이 서 있으면 조정위원들은 양쪽 당사자를 따로 불러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데 그러다 보면 극적으로 조정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혼 조정실에서는 양보를 하는 사람은 계속 양보를 하고 우기는 사람은 계속 우기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런 경우 조정위원이 양보를 하는 사람의 편을 들어주는 경우도 있지만 일단은 조정 성립을 위해 양보를 더 권유하는 경우도 많기에, 감정에 휩쓸려서 결정하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특히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당사자 혼자 나온 경우에 상대방으로부터 갑자기 어떤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떤 판단을 해야 할지 당황하게 된다. 


이혼은 결혼만큼 인생의 중대한 결정이기에, 합의가 되어 서명을 하였어도 담당 판사님의 확인을 위해 기다리는 그 몇 분의 시간 동안 많은 의뢰인들이 마치 그 시간 속에 굳은 듯 멈춰있다. 그 순간은 지난 세월의 진정한 마지막 종결점이다. 어쩌다 보니 변호사가 되어 타인의 삶의 많은 부분을 훔쳐(?) 보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늘 '끝'만 보는 것이 아쉽다. 아마 '시작'에 있어서 변호사가 필요하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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