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한달살기] D5
몇 주 전에 내린 눈은 이제 조금씩 목을 축이려 하는 새들에게 고운 물결이 되어주고 있었다. 유난히 화창한 햇살은 뜨겁게 떨어져 차가운 바람 위에서도 열심히 눈을 녹여내고 있었고. 그 덕에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철벅하는 소리와 함께 물방울들이 바지에까지 튀어 방에 돌아올 때쯤엔 피부로도 축축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짝 핀 하늘은 내 기분을 들뜨게 만들었다.
홀로 눈을 떠 잠결에 '겨울의 속초는 어떤 모습일까'하고 물음표가 뜨자마자 무작정 밖으로 걸어 나갔다. 오늘은 기필코 좋은 사진을 건지겠다는 마음으로 문을 열 때부터 손에는 카메라를 쥐고 있었고. 숙소 뒤편으로 조금만 걸으니 어제저녁 아름답게 반짝이던 청초호가 펼쳐졌다. 사람들은 아침부터 분주하게 배에 무언가를 싣기도 하고 크레인으로 공장 기계들을 옮기기도 했다. 일상적으로 기껏해야 볼 수 있는 물이라곤 한강밖에 없었던 인생을 살아오던 내게 물 위에서 삶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은 꽤나 흥미로웠다. 사람들은 다들 굳은 표정을 한 채 심오한 말들을 건네고 있었지만 왠지 모를 온기가 느껴져 가까이 가는 게 두렵진 않았다.
어부들을 지나쳐 조금 더 걸어가니 아바이 마을로 들어가는 갯배를 탈 수 있는 선착장이 나왔다. 성인은 500원을 내고 탈 수 있는 갯배는 직원이 직접 이편에서 저편으로 끌어가면서 운영하고 있었다. 걸어서 가려면 15분은 더 돌아가야 했기에 줄을 선 많은 사람들 틈에 껴 잽싸게 배에 올라탔고 순식간에 물줄기를 건너 섬에 도착했다. 통행료를 지불하고 아직 녹지 않은 눈으로 뒤덮인 바다로 뛰어갔다. 바다가 코앞인데도 바람은 아리지 않았고 그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몰아치는 파도를 앞에 두고 낚시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 옆 빈 의자에 자리를 잡고 방파제와 따개비, 온기와 한기에 대한 시를 적었다.
적은 노트를 주머니에 구겨 넣으니 땀이 식어 조금씩 추워지는 것 같은 기분에 후다닥 빠른 걸음으로 다른 해변을 향해 움직였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니 벌써 해가 머리 꼭대기를 스치고 구름 건너편으로 작아지고 있었고 그즈음 좁은 골목길 사이로 작게 베일에 싸인 서점 하나가 눈에 들어와 홀린 듯 문을 열고 들어가서 인사를 건네곤 비치된 책들을 전부 다 눈으로 훑었다.
카운터에 앉아 계신 직원분은 아무 표정도 짓지 않고 무언가를 보고 있었고 나는 슬쩍 옆으로 가 물었다. "이 서점은 처음에 어떻게 생긴 거예요?" 그분은 서점이 생겨난 배경과 지금까지의 역사를 설명해주었고 그러면서도 나에 대한 질문을 놓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지는 직원분 덕에 나는 물 흐르듯 내 삶에 대해 털어놓으며 우리는 서로의 낯섬이 품고 있는 질문들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처음에 무턱대고 내가 쓰는 책에 대해 설명하고 “본인에게 살아있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영감을 주는 사람 입장에서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답은 하지 않으셨다. 대신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인 인터뷰이로서 가져야 할 정신상태에 관해 알려주셨다. 지금까지 인터뷰를 해오면서 인터뷰를 어떻게 해야 할지 전문적으로 공부를 해본 적은 없는 나에게 그분은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진행이나 말투 등에 대한 여러 공부들이 필요하다고 말씀해주셨다. 여러 명의 사람을 한 번씩만 만나서는 절대로 책에 실을 만한 내용들이 나오지 않을 것이니 몇 명의 사람들을 수차례 만나면서 그들이 마음을 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속초에 왔으니 어업을 하시는 분들이나 이런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직업군들에서 일하시는 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머리에 들어왔다.
결국 인터뷰의 핵심은 ‘잘 듣는 것’이라는 사실. 어찌 됐든 본질적으로 타인의 삶을 또 다른 타자에게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삶을 진중하게 들을 수 있는 태도가 절실하다. 잘 들었을 때만 삶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은 질문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도 인지해야 할 것이다.
"‘다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기쁘나 그 모든 인터뷰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세부적인 주제가 있어야 할 것 같다"라고 조언을 해주시면서 추천해주신 인터뷰집들을 살펴보니 정말 세부적인 디테일(농부, 할머니, 독거노인)을 설정해 적은 숫자의 사람들을 면밀하게 인터뷰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분명 이런 식으로 작업을 진행한 이유들이 있을 것이니 다른 이들이 적은 글들을 많이 읽어보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그 뒤로 우린 다양성을 드러낼 수 있는 컨텐츠들이 제작되고는 있지만 그 적은 숫자의 자료들마저도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는 어렵다는 사실에 한탄하면서 동시에 그럴수록 더욱 힘을 내 세상이 가진 복잡하고 너무도 다른 모습들을 기록해야겠다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건 나중에 따로 적어볼까 한다.)
지금까지의 시간들에 대해 온갖 말들을 늘어놓다 마지막엔 “이렇게 여러 가지를 하고는 있는데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네요”라고 말씀을 드렸고, 돌아온 답은 “원하는 대로 살면 되죠”였다. 삶을 살아가는 건 정말 별 거 아니라는 듯이. 왠지 모르게 공감이 가고 큰 용기를 얻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들은 무엇을 통해 행복과 만족감을 얻는지 살피며 그것과 같아지기 위해 무지하게 노력했던 시간들이 흐릿해지는 눈동자 뒤를 스쳐 지나갔다.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거대한 의미를 지닌다 하더라도 그 '의미'라는 것은 나에게 유효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주어진 이 삶을 어떻게 살아내고 싶은가'가 가장 큰 관건이다. 이 사실을 절대 잊지 말자. 내 삶의 주인은 나니까.
(같은 맥락에서 비치된 시들을 읽으며 결국 작품은 내가 세상을 어떤 문자로 보는가에 달려 있다는 걸 느꼈다. 내가 느끼기에 좋은 글이라고 생각되지 않거나 문맥상 맞지 않다고 생각이 들어도 그게 작문을 한 개인에게 타당한 근거를 가졌다면 그 글은 충분히 가치 있는 글이 될 수 있다. 물론 아무 맥락도 없이 끄적여놓은 글들을 그렇게 봐서는 안 되겠지만 나의 글들이 누군가가 적어 내려 간 글들과 비슷한 선상에 놓이지 못하는 것 같다고 낙담해서는 안 된다.)
결국 내가 어떻게 세상과 그 안에 놓인 삶을 바라보는가가 중요하다. 세상을 여유롭게 차근히 관찰하며 바라보기 위해 노력한다면 분명 나만의 가치들을 찾아 중심으로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여기저기 끌려다니며 맥을 추리지 못하고 세상이 낳은 돌멩이들에 치이고 있지만 그것들을 견뎌내고 나만의 것들로 곤두설 수 있는 때가 온다면 지금의 경험과 실패들이 무척이나 소중하게 여겨질 것이라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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