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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글로 Nov 02. 2024

나는 좋은 부모 일까?

어린 기러기

좋은 부모

내가 정의한 좋은 부모는 자녀와 함께 있어주는 것이다.


나는 맑은 날이면 한라산이 보이는, 육지에서는 꽤 섬에서 태어났다.

섬에서 태어난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부모님은 기러기 생활을 선택했다. 부모님은 섬에서 생활을 하셨 자녀들은 부모와 떨어져 차례로 육지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어린 기러기 넷.


도시락을 싸거나, 교복을 세탁하는 것도 우리 몫이었고, 중요한 선택이나 판단도 오롯이 스스로의 몫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아이들이 부러웠고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챙겨 오는 친구들이 매우 부러웠다. 너무 빨리 부모로부터 물리적, 심리적 독립을 한 것 같다. '나도 엄마 있는데.....'


그때는 몰랐다.

내가 엄마랑 아빠랑 같이 살 수 있는 방법도 있었다는 것을, 부모님이 결정한 대로 살아가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나는 조그만 섬에서 학교를 마쳤어도 괜찮았다는 것을. 묻지도 따지지도 못하고 나는 어린 기러기가 됐다.


그래서일까?

시간이 지나 내가 엄마가 되자 나는 아이들 옆에 딱 붙어있는 것을 선택하게 됐다. 내가 아이들 옆에 없게 되면 불안했다. 퇴근하면 신속하게 집에 왔다. 내가 옆에 없으면 큰일이 날 것 만 같았다. 함께 있어 주는 것이 좋은 부모가 되는 길인 것처럼 믿고 살았다.

 


고입을 앞둔 딸이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를 가겠다고 말했다.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줘야겠다. 그것이 좋은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다. 그렇지만  엄마랑 같이 살고 싶었던 나의 기억 때문에 그 결정을 쉽게 따라주기가 어다.


그러나 딸은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적극적인 아이로 자랐다. 나는 딸에게 질 수밖에 없다는 것잘 알고 있다. 물론 딸이 잘 해낼 것이라는 것도 의심치 않는다.


내가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고 그 기억이 싫었다고 해서 우리 딸도 그러리는 법은 없으니까. 적어도 기숙사에서 밥은 주니까.


이 상황에서도 밥 걱정하는 내가 너무 싫다.

 밥밥밥밥밥


내년이면 나에게도 어린 기러기 한 마리가 있게 되고 그때가 되면 나도 우리 부모님의 마을 알게 될까?


같이 있어주는 부모가 이제는 답답할 만큼 아이들이 자랐다. 나도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 이제부터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거리를 두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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