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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스텔 Nov 26. 2021

한 놈만 패는 실패,
이젠 한 놈만 걸려라

이직준비생의 처절한 자기 고백 (1) 이직 1패 적립

이직에 실패했다. ' 놈만 ' 전략은 아니었다. 주변에서 모두 ' 놈만 걸려라' 마인드로 임하라 했지만, 괜히  ' '한테 부정 탈까 무서워서 다른 곳은 지원도 미뤄둔 터였다. 그로 인한 후폭풍은 거셌다.


너무나도 가고 싶은 회사였고, 관련 자격증도 갖고 있었던 데다가 나름 과제도 잘 썼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약간 자만도 했다. 심지어 면접 때 어떤 일을 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줄줄 읊을 준비도 되어 있었다. 그만큼 간절하게 하고 싶은 일을 눈앞에서 놓쳤을 때의 상실감이란. 한껏 치솟은 자존감이 바닥에 처박히는 건 단 한 통의 메일이면 충분했다.


불합격 통보를 받은 당일에는 꽤 덤덤했다. 눈물이 날 줄 알았는데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깨진 멘탈도 다 잘 이어 붙였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다음 날부터 현실이 목을 옥죄기 시작했다. 마치... 이별 통보를 받은 듯했달까. 센 척하면서 앞에서는 괜찮은 척했지만, 본격적으로 이별이 실감 나기 시작하면서 실연의 아픔과 막막함이 물밀 듯 밀려오는 것처럼 말이지.


다음 날인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낌새가 안 좋았다. 나의 고질병인 전정기관염이 도지면서 극심한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오라는 합격 통보는 안 오고 쓸데없는 것만 오고 말야.)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어떤 자세를 취해도 토할 것 같은 어지러움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모를 만큼 고통스럽다.


나도 모르게 바짝 엎드리게 되는데 그마저도 큰 도움은 안 된다. 토할까? 말까? 고민하는 찰나에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난다. 불합격으로 마음까지 너덜너덜한 나에게 왜 이런 일이. 단기간에 발생한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로 인해 몸에 이상이 생긴 게 틀림없었지만,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긍정 회로를 돌려보자면 몸이 너무 아프니까 불합격 생각은 잠시 잊을 수 있었다.그리고 고통은 한 번에 와서 한 번에 해결하는 게 낫다. 드문드문 잊을 만하면 오는 것보단 말이다.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가다 서다를 반복, 겨우 병원에 방문해 급한 불을 껐다. 병명을 정확하게 아니까 약을 챙겨먹긴 수월 하다. "어쩌고저쩌고 병이 있고요, 저는 이러저러한 약을 지금까지 먹어왔으니 그 이러저러한 약을 주세요" 참 간단명료.


약 기운이 도니까 또 살만해져서 이런 글이나 써재끼고 있다. 사실 돌이켜 보면 지금까지 이직을 어렵게 해본 적이 없다. 이직하고 싶다 내지는 이직 타이밍이다 싶으면 귀신같이 주변에서 회사를 추천해주거나 난데없이 기회가 솟아났다. 그러다 보니 지금처럼 이직이 너무나도 간절한 상태에서 주어진 불합격 딱지는 내 근간을 뒤흔들기 충분했다.


어제는 친한 친구들에게 "도대체 내가 왜?" 라는 말을 하고 다녔는데, 오늘은 "역시 나는 쓰레기인가 봐" 라며 자기 비하를 하기 시작했다. 아까도 말했듯이 한껏 치솟은 자존감은 단 1초 만에 쓰레기통에 처박힐 수 있다.


아니, 아니다. 내 자존감은 그리 하찮은 것이 아니다! 세상에 증명하고 싶다. 나는 아직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내가 하고 있는 일은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그런데... 이 아등바등도 어쩌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벌이는 행위가 아닐까? 그냥 내 몸과 마음만 편하면 남들이 날 어떻게 보든 무슨 상관이람?


... 그러나 사회에 뛰쳐 나온지 6년 차는 알고 있다. 세상은 내가 바라는 것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단지 조금 두꺼운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내가 들고 다니는 명함이 한순간에 나를 규명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와 일정 기간 이상의 시간을 보내야만 알 수 있는 정보 값이 아닌, '연락처' 따위의 부가적이고도 파편적인 정보 값만 적힌 그 종이 뒷면에 그려진 CI가 내 첫인상을 좌우한다는 것을.


직업인이냐, 직장인이냐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한다. 긱 이코노미니 뭐니, 나도 그런 줄 알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직업인이고 싶었다. 회사에 종속되어 시키는 일만 하는 직장인이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내 자아는 내 몸속에 잘 들어와 있나? 내 안의 '월급많이주고복지빵빵한데다가남들이이름만들으면"와"라고감탄사를내뱉는회사'에 가고싶은 마음과 타인에게 '네제가다니는회사는처음들어보신분들도많겠지만이러저러한일들을하고있고저는여기서이런일을하고있습니다'라고 설명해야 하는 불안감으로 인해 분리되어있진 않나?


이직 실패가 불러온 한 인간의 처절한 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또 타인의 시선에서 분리하는 일은 어떻게 해야 할지 진지하게 탐구해볼 시간이 왔다. 더는 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데, 피할 수 있는 데까진 피해 보고 싶었는데, 이젠 정말 낭떨어지다. 떨어지든가 뛰어 내리든가 (둘 다 똑같아 보이겠지만, 타의냐 자의냐의 차이 정도가 있겠다.)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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