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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거북이 May 30. 2021

술 못 이루는 밤

어느 날, 밤이 늦었는데도 첫째, 둘째 아이가 잠을 자지 않아, 같이 TV를 보면서 맥주 한 병을 혼자 마시고 있었다. 갑자기 7살 첫째 아이가


“아빠, 나도 한 모금만.”


이렇게 말하며, 내 손에 있던 맥주병을 끌어 잡으며, 앙탈을 부렸다. 진짜 마실 기세였기 때문에, 당황해서, 안 된다고 말하며, 첫째를 밀치며, 한참 실랑이를 벌이는데, 가만히 지켜보던 3살 둘째가 맥주 병뚜껑을 재빨리 입에 넣고는 빨기 시작했다. 나는 바로 와이프에게 등짝을 맞았고, 아이들이 있을 때는 더 이상 술을 마실 수 없게 되었다.


호기심이 생기면 바로 돌진하는 첫째와 관심 없는 듯이 행동하면서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둘째 때문에 그 날, 나는 나의 음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우리 부모님은 단 한 번도 내 앞에서 술을 마시지 않으셨다. 그러지 않으신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술을 멀리하길 바라는 마음도 틀림없이 있으셨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부모님의 기대를 져 버리고, 습관적으로 혼자서도 술을 마시고, 이제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술을 마시고 싶다는 욕망을 심어줘 버리고 말았다. 물론, 아직 어리지만, 그래도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19살에 처음 술을 마셔보고, 20살에 본격적으로 시작한 음주를 20년 넘게 해 왔더니, 이젠 체중도 많이 불고, 슬슬 건강에도 문제가 되기 시작하는 것 같다. 간수치, 혈당, 혈압 등등. 매번 건강검진을 받을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해진다. 20대, 30대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서 서로의 고민과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 희망 이런 것들을 나누며, 술에 기대어, 우정을 쌓아왔는데,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더 헛된 일이었다.


영원히 함께할 것만 같았던 친구들도 각자의 사정으로 떠나거나 다 멀어졌고, 이젠 술과 나만 남았다. 나중에는 술만 남게 될 것이다. 술자리에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고민을 얘기하고, 조언이나 위로를 얻어도, 사실 나 혼자서도 다 알고 있는 사실들이 대부분이다. 자꾸 해결이 안 되니까 또, 술자리를 가지게 되고, 이렇게 계속 반복되었던 것 같다.


친목을 위해 술도 많이 마셨는데, 이것 또한 대부분 헛된 일이었다. 사람들 만나는 게 좋아서 술을 마신다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사람보다 술을 더 좋아한다. 술을 마시고 싶어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부끄럽지만, 내가 많이 마셔봐서 잘 안다.


코로나 때문에 회사에서 회식도 금지되어 있고, 집에서 더 이상 술도 마시기 어렵게 된 마당에, 이젠 진짜 금주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갑자기 결심을 하고, 실천에 옮겼는데,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습관처럼 아, 딱 한잔만 했으면,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번이다. 무식하게 앞만 보고, 돌격만 강행할 일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술보다 약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무알코올 맥주를 사서 마시고, 와인차(뱅쇼)를 만들어 먹으니, 그나마 술 생각을 덜 하게 되었다. 희한한 일은 진짜 술에는 그렇게 관심을 가지던 아이들이 무알코올 맥주나 뱅쇼는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술은 아마도 사람들이 잘 모르는 어떠한 비밀스러운 매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금주를 시작한지 이제 딱 한 달이 되었다. 사실 금주를 했다고 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한 달 동안이나 술을 안 마신 때가 언제 인지, 도저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러한 사소하지만, 부끄러운 고백을 하고 있는 이유는 내 결의를 다지기 위함이다.


 다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술 때문에, 내가 병을 얻거나 죽게 될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께서는 술을 좋아하셨다. 일제 강점기 시절, 두렵고, 암담한 현실이 술을 더 마시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할아버지를 쓰러뜨린 것은 대일본제국이 아닌, 술이었다. 할아버지의 술로 인한 뇌졸중 때문에, 우리 집안은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런 할아버지 밑에서 막내 아들, 우리 아버지는 의사가 되셨다.


그러니 이제는 아쉽지만, 술을 끝내야 한다. 오늘도 술 없이 밤은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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