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밤이 늦었는데도 첫째, 둘째 아이가 잠을 자지 않아, 같이 TV를 보면서 맥주 한 병을 혼자 마시고 있었다. 갑자기 7살 첫째 아이가
“아빠, 나도 한 모금만.”
이렇게 말하며, 내 손에 있던 맥주병을 끌어 잡으며, 앙탈을 부렸다. 진짜 마실 기세였기 때문에, 당황해서, 안 된다고 말하며, 첫째를 밀치며, 한참 실랑이를 벌이는데, 가만히 지켜보던 3살 둘째가 맥주 병뚜껑을 재빨리 입에 넣고는 빨기 시작했다. 나는 바로 와이프에게 등짝을 맞았고, 아이들이 있을 때는 더 이상 술을 마실 수 없게 되었다.
호기심이 생기면 바로 돌진하는 첫째와 관심 없는 듯이 행동하면서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둘째 때문에 그 날, 나는 나의 음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우리 부모님은 단 한 번도 내 앞에서 술을 마시지 않으셨다. 그러지 않으신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술을 멀리하길 바라는 마음도 틀림없이 있으셨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부모님의 기대를 져 버리고, 습관적으로 혼자서도 술을 마시고, 이제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술을 마시고 싶다는 욕망을 심어줘 버리고 말았다. 물론, 아직 어리지만, 그래도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19살에 처음 술을 마셔보고, 20살에 본격적으로 시작한 음주를 20년 넘게 해 왔더니, 이젠 체중도 많이 불고, 슬슬 건강에도 문제가 되기 시작하는 것 같다. 간수치, 혈당, 혈압 등등. 매번 건강검진을 받을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해진다. 20대, 30대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서 서로의 고민과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 희망 이런 것들을 나누며, 술에 기대어, 우정을 쌓아왔는데,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더 헛된 일이었다.
영원히 함께할 것만 같았던 친구들도 각자의 사정으로 떠나거나 다 멀어졌고, 이젠 술과 나만 남았다. 나중에는 술만 남게 될 것이다. 술자리에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고민을 얘기하고, 조언이나 위로를 얻어도, 사실 나 혼자서도 다 알고 있는 사실들이 대부분이다. 자꾸 해결이 안 되니까 또, 술자리를 가지게 되고, 이렇게 계속 반복되었던 것 같다.
친목을 위해 술도 많이 마셨는데, 이것 또한 대부분 헛된 일이었다. 사람들 만나는 게 좋아서 술을 마신다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사람보다 술을 더 좋아한다. 술을 마시고 싶어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부끄럽지만, 내가 많이 마셔봐서 잘 안다.
코로나 때문에 회사에서 회식도 금지되어 있고, 집에서 더 이상 술도 마시기 어렵게 된 마당에, 이젠 진짜 금주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갑자기 결심을 하고, 실천에 옮겼는데,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습관처럼 아, 딱 한잔만 했으면,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번이다. 무식하게 앞만 보고, 돌격만 강행할 일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술보다 약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무알코올 맥주를 사서 마시고, 와인차(뱅쇼)를 만들어 먹으니, 그나마 술 생각을 덜 하게 되었다. 희한한 일은 진짜 술에는 그렇게 관심을 가지던 아이들이 무알코올 맥주나 뱅쇼는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술은 아마도 사람들이 잘 모르는 어떠한 비밀스러운 매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금주를 시작한지 이제 딱 한 달이 되었다. 사실 금주를 했다고 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한 달 동안이나 술을 안 마신 때가 언제 인지, 도저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러한 사소하지만, 부끄러운 고백을 하고 있는 이유는 내 결의를 다지기 위함이다.
다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술 때문에, 내가 병을 얻거나 죽게 될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께서는 술을 좋아하셨다. 일제 강점기 시절, 두렵고, 암담한 현실이 술을 더 마시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할아버지를 쓰러뜨린 것은 대일본제국이 아닌, 술이었다. 할아버지의 술로 인한 뇌졸중 때문에, 우리 집안은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런 할아버지 밑에서 막내 아들, 우리 아버지는 의사가 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