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둘째가 태어났다. 제왕절개로 태어났기 때문에 아내는 입원하였고, 혼자 4살 첫째 아이를 돌보고, 병원과 집을 오가며, 무척이나 바쁘고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트리와 캐롤, 그리고, 때마침 내려준 하얀 눈, 모두 새로운 우리 가족의 탄생을 축하해 주는 것만 같았다. 엄마와 헤어지기 싫어하는 첫째를 간신히 달래서 할머니께 맡기고, 차를 몰고 병원으로 향하는데, 마침 금요일 퇴근 시간이라 길이 무척 막혔다. 집 앞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하여야 하는데, 차들이 많아서 한참을 거북이 속도로 가야만 했다.
2차선에서 1차선으로 줄어든 다음 바로 우회전하여 합류하는 길인데, 차가 막히다 보니, 없어진 차선을 무시하고, 안전지대에서 우회전을 시도하는 차량들이 생겼다. 1개 차선과 반 개 차선 폭 정도 되는 안전지대에서 2열로 차량들이 우회전하여 합류를 기다리는데, 회전 반경을 고려해서 좌측 차량들은 좌측에 붙고, 우측 차량들은 우측에 붙어 서게 되었다.
물론 나는 가장 우측의 정상차선에 있었다. 그 순간 내 차 한참 뒤에 있던 소형차 한 대가 아주 빠른 속도로 2열로 늘어선 차들의 틈바구니로 들어서서, 맨 앞 합류 지점까지 달려갔다. 순간 화가 나서, 입안에서 험한 말이 절로 맴돌았다.
아슬아슬하게 내 차를 지나쳐 갔을 뿐만 아니라, 아예 안전지대와 주행 차선의 중간을 막아버려서, 다른 차량들의 통행을 엄청나게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화가 난 다른 운전자들이 빵빵거리며, 조심스럽게 우회전을 하였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문제의 소형차는 반차 정도 앞서서 내 앞에 있었는데, 내가 잠시 합류 도로의 차량운행을 살피는 도중, 갑자기 오른쪽으로 확 꺾더니 급출발을 하였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내 몸은 앞뒤로 흔들렸다. 차를 산 지 3달도 안 되었는데 앞 범퍼가 이렇게 찌그러지는구나, 이런 슬픈 생각을 잠시 하는데, 놀랍게도 소형차는 차를 멈추지도 않고, 원래 속도 그대로 앞으로 달려갔다. ‘드드드드득’ 내 차 범퍼에서 묵직하게 긁히고, 찌그러지는 소리가 났다.
핸들을 꽉 잡고는 몇 초 사이에 내가 알고 있는 욕은 다 퍼부었던 것 같다. 나 혼자 타고 있었으니 다행이지,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나를 욕 잘하는 사람으로 오해했을 것 같다. 10m앞에 차를 세우더니 여성분이 내리더니 달려와서는 괜찮으냐고 물었다. 한숨을 쉬면서, 도대체 왜 운전을 그렇게 하시냐, 이해가 안 된다고 얘기했다. 갓길로 차를 빼고, 확인해 보니 내 차는 다행히 범퍼 모서리만 긁혀 있었다. 상대방 차는 앞문, 뒷문 모두 찌그러져 있었다. 부딪치고 나서 바로 멈췄더라면, 앞문만 찌그러졌을 건데, 아직까지 왜 그랬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미안하다고는 하는데, 쌍방 과실처럼 자꾸 말을 해서, 그냥 보험처리 하자고 했다. 보험사 출동 서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오늘 바쁜 일이 있어서, 운전하다 실수 했다고, 내게 말할 때, 결국 인내심이 바닥나 버렸다. 엊그제 둘째가 태어나서, 둘째랑 아내는 병원에 있고, 엄마랑 헤어지기 싫은 첫째 애 어르고 달래서 겨우 할머니한테 맡기고, 바로 병원에 다시 가는 중인데, 나보다 더 급하냐고 소리쳤다.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진짜예요?”라고 묻기에, 그냥 돌아서서 대꾸도 하지 않았다. 경찰 불러서 사고 처리해 버릴까 하는 생각도 순간 들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보험사 확인 결과 상대방 과실 100%로 처리 되었다. 10년 가까이 운전하면서, 몇 번 교통사고가 났지만, 이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교통 법규를 몇 가지나 어겨가면서, 사고를 내어 놓고도, 제대로 사과조차 하지 않는 상대방 때문에 마음이 무척 상했기 때문이다.
“바쁜 일이 있어서 그랬다.” 그 여성분이 한 말이 아직도 가끔 귀에 맴돈다. 그 말이 떠 오를 때마다 당연히 기분도 무척 나쁘다. 나는 우리나라가 아직은 선진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외형적으로야 충분하지만,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바뀌어야 하는 사람들의 인식과 자세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빨리빨리 문화라 생각한다. 빨리빨리 대충대충 하는 바람에 대형사고와 참사가 유독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도 안전담당을 맡은 적이 있는데, 빨리 하기 위해서 일부러 안전장치를 끄고, 작업하다가 다치는 경우도 봤고, 과속, 작업 표준 미준수로 사고가 나는 경우도 봤었다.
안전하기 위해서는 ‘빨리’를 목표로 가져가서는 안 된다. 지킬 것 다 지키고, 계속 주의를 해야 사고를 피할 수 있다. 평소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가장 많이 듣는 나의 단점은 ‘느리다.’는 것이다. 반면 가장 많이 듣는 장점은 ‘꼼꼼하다.’이다. 나는 이런 평가에 아주 만족하고 있다. 물론, 매사 이렇게 신중하고, 꼼꼼하게 느리게 할 필요는 없다. 어떤 일은 정말로 속도가 생명인 일들도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에 운전만큼은 ‘빨리’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교통사고에 대한 핑계가 되어서도 안 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