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는 우리의 안정된 일상을 무너뜨렸다. 2월에만 해도 매일 발을 동동거려야 했다. 특히 은재가 은성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으로 옮기기로 돼 있었는데, 보통 만1세, 만 2세의 어린아이들은 3월에 일주일 정도 부모와 적응기간을 갖는다. 2월초부터 회사에는 3월첫주에는 연차를 내야 한다고 얘기해왔는데,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정상 개원이 어려워졌다. 적응기를 가질 때 휴가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 1~2주는 휴가도 못 내고 이모님과 나, 신랑의 시간표를 짜가며 아이들을 데리고 있었다. 2주가 지나면서부터는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휴가를 내고 은재를 어린이집에 보내보기로 했다. 한시간씩 보내는 걸 시작했다. 형과 같은 어린이집이라 해도 새로운 곳에 혼자 들어가야 했던 탓에 (코로나로 인해 엄마나 아빠 등 외부인은 출입이 금지됐다) 은재는 어린이집에 안들어가기위에 자기 딴에 쓸 수 있는 모든 힘을 다썼고, 한시간 내내 울다 오기를 반복했다. 은성이 때 경험해봤지만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그 시간도 어쨌든 지나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한지 3주쯤 됐을때는 울지 않고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코로나가 장기화하면서 은재 외에 모든 아이들이 별도의 적응기간 없이 바로 새로운 어린이집에 발을 디뎌야했다. 지난 1년 그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그때는 내 생애 이런 전염병은 겪지도 못했고, 그 전염병이 나의 모든 일상의 안정을 무너뜨린데 늘 긴장해야 했다. 그 이후로도 몇번, 밀접접촉자로 분류된 사람이 어린이집에 있거나 근처 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왔다고 할 때마다 아이들을 급히 하원시켜야 한다는 전화를 받았고, 그때마다 이모님께, 또 신랑에게 아니면 내가 반차를 쓰는 경우들이 발생했다. 그것도 몇 번 겪고 나니 이제는 그런 전화나 통보에도 "그냥 원래 하원시간에 하원할게요"라고 답해야 했다. 솔직히 도움을 받을 데가 없는 상황에서 이모님께 매번 전화를 드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그 방법을 택했다. 이후로도 사회적거리두기 단계가 상향 조정돼도, 꿋꿋이 보냈다. 은성이와 은재는 어린이집 고정 멤버였다.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아무리 적게와도 은성이네 반은 5명, 은재네 반은 5~6명은 온다기에 그걸로 위안을 삼았던 것 같다. 그런데 12월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그 전까지는 별말이 없던 어린이집에서 맞벌이와 한부모 가정을 제외하고는 긴급보육 이용시 사유서를 내라고 했다. 우리는 사유서 대상은 아녔지만, 아이들이 급격히 줄었다. 일주일 지나 코로나 2.5단계가 시행되면서 이제는 맞벌이와 한부모가정도 모두 사유서를 내라고 연락이왔다. 사유서를 쓰는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 자체가 뭔가 위화감을 조성했다. '아이를 보내면 안되는건가...' 사유서를 제출하고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냈는데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됐다. 은성이 포함 2명만 등원을 한 것이다. 그날 오후 선생님으로부터 알림장을 받았다. 은성이가 걱정된다는 메시지였다. 같이 있던 친구가 평소보다 일찍 하원을 하고 한시간 정도 혼자 있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말수가 급격히 줄고 계속 이모님 언제오시냐는 얘기를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 더 최악의 상황이 왔다. 은성이만 등원을 했다는 것이다. 은재네 반은 그래도 3명 정도는 왔다는데 은성이네 반은 은성이만 왔다고 한다. 내가 해줄 수 있는건 이모님께 평소보다 하원을 일찍 시켜달라는 것이었다. 은성이 앞에서는 티를 안 내려 했지만, 매일 "오늘은 누구 왔어?" "나 혼자야" 라는 대화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혼자면, 선생님의 관심도 더 많이 받고 좋은거지. 애들 집에만 있으면 동영상만 보고 지루할텐데' 가벼이 넘기려했고, 또 자기 위안을 했다. 처음에는 쓸쓸해 했던 은성이도 "나 혼자가는거 괜찮은데? 선생님들하고 더 놀 수 있어"라고 말했다. 그 말이 어찌나 고맙던지...
그렇게 연말을 보내고, 새해가 됐다. 새해에는 애들이 좀 더 나오겠지? 라고 기대했지만, 역시나 아무도 안나왔고, 은성이와 친하게 지낸 엄마에게 다음주부터 아이를 보내려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말이 어찌나 기뻤던지. 하지만 유례없는 추운 날씨와 폭설이 겹치면서 그 친구는 등원을 안한다고 연락이왔다. 또 다급해졌다. 친구가 같이 나오다가 또 안나오면 은성이가 엄청 상심할텐데...신랑에게 내일 좀 늦게 출근을 하거나 일찍 올 수 있는지 물었다. 신랑은 "왜 안보내려는데?" 라는 냉담한 반응이 왔다. "아니, 오늘 눈도 이렇게 많이 와서 이모님도 가시기 힘들고, 은성이도 친구가 같이 나오다 안나오면 안그래도 날도 추운데 많이 실망하지 않겠어?" 라고 했다. 신랑은 내게 "너무 신경 쓰지마. 은성이 아무렇지도 않다잖아. 다른 사람한테 말하니까 거기는 유치원 다 보낸다고 왜 안보낸다고 묻는다"라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러면서 "그럼 자기는 은성이가 혼자 가는데 신경도 안 쓰여? 그 사람들이 내 사정을 얼마나 안다고 그렇게 얘기해?" 라며 폭발했다. 신랑은 본인도 신경 쓰이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 아니냐고 되묻는다. 자기의 말 뜻은 우리가 뭘 해줄 수 없는 상황에서 자꾸 미안해하면 은성이가 그 기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말도 맞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그런 이성적인 판단이 냉정하게 들렸다. 역시나 '육아는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또 들 수밖에 없었다. 그날 결국 대화의 끝은 목요일과 금요일 번갈아 반차를 내고, 이모님께 몇 시간 육아를 부탁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우리가 아이들을 보기로 했다. 그 일이 있고 난 이후부터 은성이는 또 매일 어린이집에 간다. 확진자가 1천명에서 600명대로 내려오면서 은성이네 반에도 처음에는 3명, 4명, 최근에는 6명까지 늘었다. 예전에 '미생'이라는 드라마에서 워킹맘인 엄마가 어린이집에 갔을때 아이들이 우루루 나와서 자기 엄마인지 확인을 하고, 자기 엄마가 아닐 때는 실망하고 들어가는 장면이 있었다. 또 주인공의 아이만 남아있던 날도 여러날. 그때는 아이를 낳기 전이었는데도 그 장면을 보고 엄청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 일이 내게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그때는 나중되면 뭔가 다 해결돼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일이 되지는 않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나도 리얼한 나의 현실이 돼 버렸다.
결혼 전부터 알고지내 은성이와 같은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아는 언니가 "나 아는 사람이 워킹맘인데, 그 엄마는 애한테 너무 미안해했어. 집에오면 늘 걱정 근심에 쌓여 있었어. 근데 나중에 보니까 그 애가 정신적으로 불안해 했다고 하더라고...상담을 받아보니 그 엄마의 불안함과 우울함을 그 애한테 고스란히 전해졌던 것 같아. 그러니까 너무 미안해하지마"
그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흠...어찌보면 신랑의 냉정한 말이 맞는 말이라는 생각도 들면서, 감성과 이성사이에서 어떻게 콘트롤을 잘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부족함 없이 키운다고 하지만, 아이들한테 늘 미안한 마음이 있는데 티를 안낸다고 하지만 집에오면 첫 질문이 "오늘은 몇명왔어?" , 어린이집 선생님께도 "오늘은 몇 명왔나요?" 라고 묻는다. 은성이 외에 한명이라도 더 나왔다고 하면, 마음이 놓인다. 생각해보면, 이런 걱정이 내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조금 더 침착해지자. 지금 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얼마전 휴직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친구 엄마가 "언니, 내가 경험해보니까 같이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 중요한게 아냐. 같이 있는다고 좋은 엄마가 되는 것도 아냐. 그것도 내 마음의 위안이었어. 같이 있으니까 내 스트레스는 더 커지고, 좋은 소리가 나오지도 않고 짜증만 내게 돼. 나도 올해는 복직 할거야. 그리고 둘째 초등학교 갈 때도 그냥 휴직 안할래" 그 말에 나 또한 위안을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