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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은 Jan 14. 2021

상승장이 잘한 거지 내가 잘한 게 아닙니다

투자에 관심은 있는데 공부는 하기가 싫어요



아이코. 내가 괜한 말을 했구나. 회식자리에서 나와 아주 반대되는 성향의 투자자를 만났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분위기가 과열되기 십상이라 웬만하면 회사 사람들과는 잘 이야기하지 않는 주제인데. '요즘 주식 안 하면 바보라는데, 처음으로 주식을 해보려고 하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떻게 시작해야 하냐.'라고 묻는 말에 성급히 나선 잘못이었다. 


주식은 단타로 소액을 벌고 치고 빠지는 거다 우량주도 예외는 없다는 일장연설이 후루룩 지나가는 동안 나는 별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는 '단타로 칠 종목은 단타로 치는 거고 장투를 할 종목은 장투를 하는 거지, 주식은 무조건 단타를 쳐야 한다는 법칙이 어디 있나요. 물론 저도 그걸 분간할만한 안목은 없습니다만.' 하는 생각을 했다.


지난한 연설(?)이 끝난 뒤에는 연설자 몰래 국내 주식을 살 거라면 삼*전자(당시 5만전자였다)를, 해외주식을 살 거라면 Q** 같이 무난한 ETF부터 시작해보는 게 좋겠다는 말을 넌지시 흘렸다. 당장 내 주식도 오를지 내릴지 모르는 초미니 개미지만, 그래도 그게 첫 시작으로는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옛날의 나처럼 별 이상한 잡주를 허겁지겁 주워 먹는 거보단 나을 테니까.




대학교 몇 학년 때더라... 우연히 대학생 모의투자 관련 광고 보고서 주식이 뭔데, 뭐 하는 건데 하며 재미로 시작했던 것이 내가 투자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계기가 되었다. 이 자리를 빌어 모의투자 대회를 열어 내게 투자의 길을 열어주신 키*증권에게 감사인사를 드린다. 비록 지금은 미*에셋을 쓰지만.


모의주식 결과가 어땠냐고? 노코멘트하겠다. 결코 자랑할 수 없는 결과였다고만 알아주시라. 겨우 용돈 30만 원을 받아 생활하던 내가 모의주식을 그렇게 조지고도 무슨 용기로 진짜 주식을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그땐 아마 별 생각도 없었을 것이다.


주식을 시작하고도 한동안은 거의 야바위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도 거의 그 수준이기는 하다) 그때엔 주식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도 몰랐고 주식? 내 주식은 쌀밥인데! 하면서 그냥 아무 회사에나 투자를 했다. 아, 그런 걸 투자라고 부르면 투자에게 너무 모욕적인 일 일지도 모르겠다. 삼성 주식을 사겠답시고 삼성중공업을 사던 때니까...


여하튼 그땐 몇천 원짜리 주식을 무슨 쇼핑 장바구니에 담듯 주워 담고는 백원이 오르고 내리는 것에 일희일비하곤 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별 이상한 잡주를 다 건드리고 다녔었는데 초심자의 운이었는지 다행히 잃는 일은 그다지 없었다. 대학생 용돈으로 산 주식을 잃어봤자 얼마나 잃겠냐만은.




그렇게 몇 년 간 찔끔찔끔 심심할 때 하는 오락실 게임처럼 주식 매수/매도를 반복하다가, 어디선가 우연히 '해외 비과세 펀드' 막차를 타야 한다는 글을 봤다. 이 얼마나 설레는 글자인가 막차! 영영 다시는 오지 않을 마지막 찬스!


뭘 과세하지 않는다는 건지도 모른 채, 머릿속에 홈쇼핑 [품절 임박] 마크가 번쩍번쩍거림을 느끼면서 있는 돈 없는 돈을 다 긁어모아 우선 백만 원을 마련했다. 일단 만들기만 하면 10년 내 3천만 원까지 넣을 수 있다니 우선 계좌만 뚫어둘 생각이었다. 나름 분산투자를 해보겠답시고 미국, 인도, 중국, 베트남, 유럽 등의 7개 펀드에 돈을 골고루 나누어 넣기도 했다.


그렇게 내 작고 소중한 백만 원은 그날부터 성실하게 마이너스를 기록하기 시작하여, 갈수록 더더더 작고 소중한 금액이 되어갔다! 안그래도 작았는데...하지만 이제 와서 돈을 뺀다면 더 이상은 들 수 없는 비과세 펀드를 포기하는 격이고, 또 애초에 그 백만 원은 잃어버린 돈이라고 생각하고 무조건 10년을 채운 뒤 인출하기로 했었으니. 두고 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결국 나는 뼈아픈 손실을 두고 보기가 힘들어 그냥 어플을 지우고 잊어버리는 것을 선택했다.




이렇게 돈을 잃고도 이미 투자(라고 쓰고 도박이라고 읽는다)의 마술에 걸린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또 새로운 덫에 빠지고 말았다. 헬스케어! 당시 나의 짧은 생각으로는, '세상 사람들이 나와 내 가족이 건강하길 바라며,  대다수의 성인들이 건강 관련 제품들을 소비하는 중이고, 앞으로 계속해서 고령화가 심화될 것이므로, 헬스케어 역시 갈수록 중요해질 것이다. 따라서 이 부분에 투자를 한다면 잃을 일은 없겠다.' 싶었다.


그래서 뭔가에 홀린 듯이 남은 목돈을 끌어다가 셀**온 헬스케어에 돈을 때려 박았다. 당시 그 회사가 뭘 하는 회사 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돌아가는 회사 인지도 모른 채, 그냥 그 회사 이름을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는 이유였다... 평단 13만 7천 원. 그 이후로 해당 주식은 시쳇말로 순조롭게 '꼬라박기 시작해서' 1년 반 만에 3만 7천 원을 기록했다. 하하. 퍼니^^.


뺄 거면 진작 돈을 뺐어야 했는데. 조금 떨어질 때는 조금 떨어진 게 아깝고, 많이 떨어지자 많이 떨어진 게 아까워서 조금이라도 오르기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보니 13만 원이 3만 원이 될 때까지 거기서 헤어 나오지를 못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놀랍게도 거의 17만 원이 다 되어가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 뒤로 한참을 버티다가 더 기다리지 못하고 손절을 했다.


그러고 나니 정말 주식을 이렇게 뭣도 모르고 뛰어들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지고 있던 주식이며 펀드(헬스케어 관련 펀드도 샀었다)며 투자 명목으로 하던 모든 것들을 다 정리하고 4%, 5%대의 이벤트 적금을 드는 것으로 노선을 바꾸었다.




그러나 아는 맛이 더 무섭다고 했던가. 한번 맛본 투자의 짜릿함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던 나는, 아주 대단한 자기 합리화를 하기 시작한다. 그래, 한국 주식을 해서 문제가 되었던 거야. 해외주식을 하면 좀 괜찮지 않을까? 정상적인 사고방식이면 이제 주식을 좀 공부해서 해야겠단 생각을 할 텐데, 주식을 공부하기는 너어어무 싫고 하고는 싶으니 이렇게 이상한 논리를 내세운 것이다.


그러나 한국 회사도 똑바로 모르는 내가 해외에 있는 회사를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그래서 나스닥 상장사를 시가총액 순으로 정렬을 해놓고, 매수할만한 회사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이미 헬스케어의 고난을 겪은 뒤여서 되도록이면 한 번에 큰돈을 투자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내가 알만한 글로벌 기업들은 1주에 최소 몇십만 원에서 몇백만 원을 호가해서 매수를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이름도 모르는 회사의 주식을 덥석 살 수도 없고.


그때 눈에 뜨인 것이 인*과 퀄*이었다. 동생이 반도체 관련 석사과정을 밟고 있던 때였다. 그전까지 인*은 종종 들어봤지만, 퀄*이라는 회사는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회사였는데, 어쨌든 종종 동생의 이야기에 오르내리는 걸 보니 이게 반도체를 만드는 회사인가 보다 하면서 주식을 샀다. IT가 중요한 시대니까 사놓으면 조금이라도 오르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두 회사의 주식이 100달러 이하여서 그나마 매수를 할만하다는 이유가 컸다.


그 이후로 인*과 퀄*에 아주 어마어마한 바람이 휘몰아치며 인*은 바닥을 치고 퀄*은 하늘을 날았다. 인*은 폭락 후 오랜 시간을 거쳐 조금씩 회복되는 중이고, 퀄*은 끝을 모르고 오르는 중이다. 내가 당시 조금만 더 많은 돈을 넣었다면 큰돈을 벌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돈이 돈을 번다고... 내가 투자한 금액이 적으니 아무리 많이 올라도 올라도 겨우 한끼 외식을 좀 할까 말까 하는 정도밖에 되지 않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퀄*은 훨훨 나는 중





나는 퀄*의 선례를 통해 한국의 시가총액이 높은 회사 중에 주가가 많이 높지 않은 회사가 있다면 매수를 해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렇게 삼*전자 개미굴의 미니 일개미 1로 전업을 했다. 덕분에 지금은 꽤 쏠쏠한 이득을 보고 있는 중이다. 시드가 작아서 쏠쏠하다고 해봤자 뭐 용돈벌이 정도지만. 어쨌든 은행에 넣어두는 것보다는 많은 수익을 냈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놀랍게도 17년도 이후로 묻어두고 잊어버리고 있던 펀드들도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있고, 삼*전자 외에 투자한 다른 주식들도 꽤 결과가 좋다. 여기까지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나는 지금껏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고 오로지 뇌피셜로만 투자를 했다. 그럼 잃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도 어떻게 내가 가진 모든 투자상품들이 다 좋은 수익률을 보여주고 있겠는가? 상승장이기 때문이다.


회식자리에서 주식에 대해 조언을 해주신 분은, 주식을 시작한 지가 6개월이 되셨다고 했다. 시작한 이후로 잃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며, 주식을 처음 시작하고 싶다는 분에게 자신의 투자 방법을 전수해주셨는데...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내심 걱정이 되었다. 그분의 투자방법이 아주 좋은 방법이어서 돈을 잃지 않으신 걸 수도 있겠지만, 사실 지금의 장이라면 어떤 방법이든지 이러나저러나 돈을 벌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벼락 거지라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


주식으로 잃을 일은 없다며 나를 믿고 투자하라고 호언장담을 하다가, 어느 날 공매도가 돌아오고 약세장이 시작된다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속으로 이런 다짐을 했다. '항상 잊지 말자. 상승장이 잘한 것이지 내가 잘한 것이 아니다. 봉차트도 볼 줄 모르고, 재무제표도 볼 줄 모르는데 지금 당장 수익이 난다고 해서 내가 주식을 잘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말자.'




그래서 이 글의 결론이 뭐냐면, 나 역시 앞으로 주식을 무슨 신점 때려 맞추듯이 하지 않고, 좋은 회사에 오래 투자할 수 있도록 공부하겠다는 것이다.


하루에 하나씩 차근차근 알아나가야지. 일단 오늘은 그동안의 투자기를 정리해본 것으로 마무리 해야겠다.


내 계좌에 더 이상 헬스케어나 니콜* 같은 대참사가 없기를 바라며.

좀 작더라도 단단한 개미가 되는 그날까지,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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