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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은 Sep 26. 2021

오늘 당장 로또가 된다해도 죽고싶어

우리는 나란히 걸을 때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는다 - 2

* 표지 이미지 @여름문구사

이런 마음이 꼭 필요한 것 같아요. 지나고 나면 별일 아니겠지!




몇 주간 내 곁에서 헛된 소리를 하는 ‘잘’을 떼어내고 과거를 돌아보니, 문득 지금 내가 이렇게 단단한 마음으로 살아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그까짓 거 그냥 한번 해보자!’라는 마음을 먹을 때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지.


사실 상경하기 전까지 나의 유일한 소원은 어느 날 내가 갑자기 먼지처럼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냥 죽고 싶었다. 특별히 어떤 사건이 있거나 기분이 나빠서가 아니라 오늘 당장 로또가 된다고 해도 죽고 싶었다.




왜냐고? 인생은 길고 괴롭다. 아침이면 일어나야 하고 밤이면 자야 하고. 때때로 먹어야 하고 씻어야 하고 걸어야 하고 생각해야 한다. 배워야 하고 또 돈을 벌어야 하고. 아등바등 사람들과 부딪히며 웃고 울어야 한다. 그 사이 행복한 일은 순간순간 찾아오고 또 사라진다.


무엇이 행복인지 알기에 남은 불행은 더욱 깊어지고, 행복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슬픔의 기억은 오래도록 남지만 행복의 기억은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다.     


그래서 나는 기뻐도 우울했고 슬퍼도 우울했다. 기쁨의 순간이 지나면 슬픔이 올 것이고 슬픔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 행복이 오겠지만, 어차피 행복은 금세 사라질 것이다. 나는 흔적도 남지 않는 행복과 영원히 내 곁을 지키는 슬픔 사이에서 끊임없이 괴롭겠지.


가끔은 화가 나도 우울했다. 화가 날 일이 생기면 그게 다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생긴 일인 것만 같아서. 애초에 내가 살아있지 않았다면 화가 날 만한 일도 생기지 않았을 텐데.




나는 스스로를 긍정적이고 웃음이 많은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하루에 한 번쯤은 죽고 싶었다. 살아갈 이유가 없었다. 왜냐하면 삶은 언젠가 끝나고, 끝날 때까지 나는 계속 괴로울 테니까. 오늘 죽는 게 가장 좋았다. 오늘 죽으면 괴로움을 가장 적게 겪을 테니까.     


지나고 보니 참 우울하고 힘든 이야기지만, 정작 당시의 나는 내가 그다지 힘들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는 굉장히 행복하고 평안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매일 울면서 잠들고 매일 한 번 정도 죽고 싶을 뿐이지.


나는 언제나 울면서 잠들었고 언제나 죽고 싶었으므로 한 번도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평범한 사람은 아무도 매일을 울면서 잠들지 않는다. 누구도 매일 진심으로 죽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 때 나는 집 앞 대로변에 육교를 건설하는 걸 보면서 ‘저기서 사람이 뛰어내리면 어쩌려고 저런 걸 짓는담. 관계자들도 참 생각이 없다.’고 생각했다. 육교가 완공되고 난 이후에는 그 다리 가운데에 멍하니 서서 도로를 쳐다보는 일도 잦았다. 그때는 큰 도로와 수평선에 어떤 마력이 있어서 사람들은 자연스레 거기에 홀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내게는 아직도 그때 그 육교를 지나다니면서 찍었던 사진이 남아있다. 물론 사진의 결과물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아름답지 않았지만. 아마 그때 내가 아름답게 보았던 것은 풍경이 아니라 죽음이었지 않을까...


시간이 지나고 누구도 거기에서 뛰어내리지 않자, 나는 왜 아무도 뛰어내리지 않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 고민의 결론은 ‘육교가 너무 낮아서 잘못하면 죽지 못하고 병만 얻게 될까 봐 그런가 보다’였다. 참 바보 같은 결론이다.




내 마음이 살찌고 그 속의 감정들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으며 이젠 나도 평범한 사람들처럼 그저 앞을 보고 걷는다. 참 다행인 일이다.


이 자리를 빌어 과거의 질문에 이제야 제대로 된 답변을 한다.


육교를 왜 짓냐고?

길을 건너가려고!     




출판 스튜디오 '쓰는 하루'에서 <남김없이 응원해>로 출판했던 글을

브런치에서도 같이 읽고 싶어 업로드합니다:)


책쓰게 9기 출간 도서 <남김없이 응원해>

-출판사 : 키효북스

-저자 : 이상은, 신나윤, ㅅㅅㄱ, 신성희, 황지영, 정진이, 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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