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우연한 하루에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행복해?’ 내 기준에서 엄마는 절대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묻자마자 크게 미소 지으면서 행복하다고 했다. 사랑스러운 딸 아들을 키우며 매일이 행복하다고.
나는 그걸 진심이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 엄마도 언젠가 내게 죽고 싶다고 그랬었잖아. 매일 아빠와 싸우며 울었잖아. 근데 어떻게 행복할 수가 있지?
나는 두 친구를 만난 자리에서 똑같은 질문을 했다. ‘너희는 사는 게 행복해?’ 당연히 사람이 먹고 사는 게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행복할 수가 있겠냐 같은 답변을 예상하며 던진 질문이었는데, 친구들은 아주 별거 아니라는 듯이 ‘그럼 행복하지 안 행복해?’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제서야 문득 깨달았다. 아, 어쩌면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드문 게 아닐까?
그전까지 나는 행복하다는 말은 그냥 자기 위안 삼아 하는 말인 줄 알았다. 아니면 한 순간의 생각이거나. 그런데 그동안 나만 그렇게 생각해오고 있었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내게 행복은 사전 속에나 있는 단어인데. 대체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걸까.
그래서 나는 다시 되물었다. 삶은 언제나 고통의 연속이고 그 사이 행복은 잠깐 왔다 사라지는 것뿐인데 어떻게 행복할 수가 있냐고. 친구들은 별 이상한 소리를 다 듣는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니지, 인생은 괴롭지만 그래도 소소한 행복이 있으니까 살아갈 수 있는 거잖아.”
나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빛이 내 얼굴로 날아와 박혔다. 둘에게는 아무 감정이 없는데도, 분명히 그걸 아는데도 나는 그 눈빛이 아프게 느껴졌다. 두 사람의 앞에 나는 마치 햇빛을 투과하는 유리처럼 앉아 있었다.
내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내 마음을 스쳐 지나가 일곱 갈래로 흩어졌다. 나는 이토록 투명하고, 손에 쥔 것 없이 허무한데.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행복의 프리즘은 나를 스쳐 지나가 세상을 아름답게 비추고 있었던 것이다.
내 등 뒤에 어둠이 있을 때, 나는 모든 불행을 반사하는 거울이었다. 나는 내가 아팠으므로 모든 사람의 아픔에 깊이 공감했고 그래서 나는 그들이 하는 말이 다 진심일 거라 믿었다. 죽고 싶다, 죽는 게 낫다는 말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서 하는 말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또 삶에 대해 별 생각 없이 산다.
나는 내가 왜 살아야만 하는지를 오래 고민했으나, 사실 고민해보면 사람이 살아야 할 이유 같은 건 없다. 살 이유가 없으면 죽어야 하는가? 아니다. 우리가 태어난 데에 아무 이유가 없었던 것처럼 살아가는데도 아무 이유가 없고,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 지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삶은 그냥 주어진 것이고, 우리는 그냥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