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상경해서 3달은 셰어하우스에서 살았다. 그 3달 동안 사람의 생각이 얼마나 다양하고, 서로의 경험이 얼마나 다른지 처음 알게 되었다. 늘 싸움은 사소한 곳에서 일어난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고무장갑으로 설거지만 해야 하는 사람이 있고, 또 누군가는 설거지와 음식물쓰레기 처리까지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또 누군가는 그 하나의 고무장갑으로 주방과 세탁을 모두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이 셋의 합의점을 찾기란 참 쉽지 않다.
고무장갑이면 그래도 그나마 각자의 고무장갑을 두고 사용하면 되지만 고무장갑처럼 딱 떨어지지 않는 문제들도 많았다.
거기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엄마와 아빠도 이십몇 년을 각자의 삶을 살다 만났으니 한 지붕 아래 살더라도 서로 얼마나 많은 생각의 차이가 있었겠는가. 두 사람의 다툼의 과정은 조금씩 서로를 맞춰나가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 역시 그 두 사람의 아래에서 자라면서 ‘우리 집’의 삶의 방식을 익혔고, 그 방식대로 사회에 나와 다른 사람들과 조금씩 부딪히면서 살아간다.
타지에 나와 사람들과 실컷 부대껴보고 나서야 나는 부모님이 완벽할 수 없는, 그저 평범한 하나의 사람임을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이십대 중반인 내가 나 혼자 살아가기도 이렇게 어려운데, 그 나이 때쯤 두 사람은 나를 낳고 키우기 시작했다. 아직 완전히 여물지 않은 두 청춘이 걸어가는 길이 평탄치만은 않았을 것이다.
두 사람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느라 서로를 바라볼 시간이 없었고, 나 역시 너무 가까운 곳에서 그들과 함께하느라 그들이 어떤 차림새이고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돌아보지 못했다. 잠깐 거리를 두고 찬찬히 그들의 모습을 살펴보니 뭐라고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마음 깊이 이해되는 것들이 있었다.
인생은 퍼즐이 아니어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 퍼즐 조각처럼 딱 맞추어 살 수는 없다. 가끔은 나도 내가 어떤 모양의 조각인지 모르고 산다. 누군가를 만나 부딪히고 깎이고 나서야 ‘아, 내가 그런 부분이 뾰족한 사람이었구나.’ 생각한다. 그리고 나 말고 누군가에게도 이런 부분이 있을 거라는 생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