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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은 Sep 26. 2021

그냥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일들

우리는 나란히 걸을 때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는다 - 7

내게 줄곧 무심했던 아빠는 열외로 두고 엄마는 내 엄마니까 당연히 나를 제일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너무 괴로웠다. 작은 내 세상에는 온통 엄마밖에 없는데, 엄마의 세상엔 나 말고도 중요한 것들이 너무나도 많은 것만 같아서. 나도 엄마에게 동생처럼 사랑받고 싶었다. 동생이 되고 싶었다. 얻어맞고 뺏기고도 이해해야 하는 그런 누나 말고.    

  

엄마는 왜 나를 귀찮아하는 걸까? 왜 매번 내게 이해하라고 하고 나를 이해해주지는 않는 걸까? 엄마는 나를 낳고 싶어서 낳았겠지만 나는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가끔 사랑하고 가끔 화내는 거 말고, 엄마가 나를 매번 사랑하고 또 사랑해주기만 하면 좋겠다. 하지만 엄마의 마음이나 감정을 내가 마음대로 주물러 바꿀 순 없었으므로, 나는 그저 언젠가 사랑의 빗방울이 내 머리 위로 떨어지는 순간만을 간절히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고 내가 이해한 것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을 선택하지 못한 것처럼 엄마도 나를 선택해서 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엄마도 내가 어떤 아이이고 어떤 어른으로 자랄지 몰랐다. 이십 대 중반의 나는 내 앞가림조차 못하고 일자리도 없이 부모님께 얹혀살았는데, 엄마는 그 나이에 나를 낳고 기르기 시작했다. 아이를 키우는 데 서툰 게 당연하고, 어려운 게 당연하다.     


어쩌면 아무렇게나 놓아두고 알아서 자라도록 둘 수도 있었던 나를 어찌 되었든 곁에 두고 보살피며 사랑해온 것 역시 보통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나서야 나는 편해질 수 있었다. 아무리 나를 낳은 부모님이라도 나를 꾸준한 사랑으로 돌보는 것은 당연하지 않다. 


누구나 처음 부모가 되는 시간이 있다. 나는 부모님의 처음이었고 나는 엄마가 엄마로서 서툰 것이 싫었지만 사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 하는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 누구도 처음 부모 노릇을 하면서 서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리고 엄마가 나를 귀찮아할 때마다 나는 내심 상처 입었지만 뒤돌아 생각해보면 자라면서 내가 엄마를 귀찮아한 적이 훨씬 더 많을지 모른다. 엄마가 내게 짜증내고 화낼 때 나도 덩달아 화가 나 문을 쿵쿵 닫기도 했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엄마한테 짜증내고 화낼 때가 더 많았다. 나는 아이였지만 그래도 어엿한 한 사람이고 엄마도 나라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고 키우며 상처 받았을 때가 많았을 것이다. 




내 짧은 평생은 부모님을 이해하기 위한 삶이었던 것 같다. 두 사람은 왜 저렇게 싸우는 걸까, 왜 매일 같이 싸우면서도 같이 사는 걸까. 왜 이혼하지 않는 걸까. 아빠는 왜 말로 해도 될 이야기들을 버럭버럭 화를 내며 말하는 걸까. 엄마는 왜 아무렇지 않은 일로 내게 소리를 지르는 걸까. 왜 부모님은 내 동생을 더 좋아할까, 왜 부모님은 내가 슬프고 아프다는 걸 모르는 걸까. 왜?      


어른들이 뭐든 ‘크면 다 알게 된다’ 하는 소리가 참 싫었지만, 지금은 그 말이 진실이라는 걸 안다. 나는 이제 어른이고 어른인 나는 부모님이 왜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는지 잘 알고 있다.


누구나 편안하고 안정되고 사랑하고 사랑받는 삶을 살고 싶어 하고 부모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싸우고 싶어서 싸우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상황이 그랬을 뿐이고, 시간이 그랬을 뿐이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뿐이다.




출판 스튜디오 '쓰는 하루'에서 <남김없이 응원해>로 출판했던 글을

브런치에서도 같이 읽고 싶어 업로드합니다:)


책쓰게 9기 출간 도서 <남김없이 응원해>

-출판사 : 키효북스

-저자 : 이상은, 신나윤, ㅅㅅㄱ, 신성희, 황지영, 정진이, 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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