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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Jun 15. 2021

휘둘리지 않고 당당하게

엄마의 침묵은 소리 없는 외침

 아마도 청마 유치환의 <깃발>이라는 시는 누구나 한 번쯤 접해 봤으리라 생각이 든다. 그 시의 1연을 보면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그 짤막한 구절 속에는 무언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깊은 한이 서려있음이 느껴진다. 사전을 찾아보니 ‘아우성’이란 여럿이 함께 기세를 올려 악을 쓰며 부르짖는 소리나 그 상태라고 나와 있다. 그런데 그런 시끌벅적한 아우성에 소리가 없다는 게 참으로 역설적이다. 사실 유치환 시인이 활동하던 시기는 일제 치하에서였다. 따라서 그 당시로서는 일본의 막강한 힘에 직접적으로 저항할 수 없었기에 그 끓어오르는 분노를 비록 소리는 없지만 대한민국의 독립을 염원하는 힘찬 깃발에 비유한 것일 게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역설적인 상황은 우리 가정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난 고등학교 1학년,

중학교 2학년 남매를 키우는 엄마다. 한동안 전혀 예상치 못했던 첫째 딸아이의 사춘기를 겪어냈고, 지금은 둘째 녀석의 사춘기를 겪어내고 있는 중이다. 사실 예전의 난, 잔소리를 꽤 많이 하는 엄마 중의 한 사람이었다. 아이들이 방을 어질러 놓으면 “방에서 귀신 나올 것 같다.”라고 하면서 깨끗이 정리하라고 잔소리를 했고, 공부를 안 하면 “너 그러다가 대학 못 간다.”라고 하면서 열심히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했고, 음식을 질질 흘리고 먹으면 “넌, 턱이 빠졌니?”라고 핀잔을 주면서 제대로 먹으라고 잔소리를 했고, 이빨을 잘 안 닦으면 “결국 다 썩어서 나중에 틀니 해야 한다.”라고 겁을 주면서 제발 이빨 좀 닦으라고 잔소리를 해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아직 작고 어렸기에 엄마인 내 말을 제법 잘 따라주곤 했다.     


 사실 ‘잔소리’라고 얘기는 했지만 어떻게 보면 사랑하는 아이들을 향한 엄마의 간절한 외침이라고 하는 게 맞을 듯싶다. 그만큼 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의 말은 자식이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뜻에서 내뱉는 깊은 영혼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말들도 있을 것이다. 내 경험상, 엄마가 하는 좋은 얘기들을 아이들이 계속 거부했을 때, 그때 화가 치밀어 올라 거친 말들을 내뱉기도 한다. 다만, 내가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이들의 좋은 습관, 바른 인성 등을 위해서 엄마가 수시로 내뱉는 말들이다. 여하튼 남들이 흔히 말하는 ‘엄마의 잔소리’라는 말은 듣기 참 거북하다.


 그런데 아이들을 향한 나의 그 간절한 외침들이 어느 순간 침묵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 시점은 바로 첫째 딸아이의 혹독한 사춘기를 겪어내고 이어 둘째 녀석의 기가 막힌 사춘기를 겪어내는 과정에서다. 첫째 딸아이의 사춘기 때만 해도 아이의 기분을 이리저리 살피면서 도를 넘는 부분은 간간히 지적을 해주곤 했다. 물론 그럴 때마다 “네, 알겠습니다.” 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듣기 싫은 나머지 영혼 없는 대답을 하기 일쑤였다. 그나마 대답이라도 하면 다행이다. 오히려 소리를 지르면서 그만 좀 하라고 윽박지르는가 하면 무시하듯 아무런 대답이 없을 땐 그야말로 자존감이 저기 저 밑바닥으로 한없이 곤두박질 쳐진다.   


 그렇게 첫째 딸아이의 사춘기를 겪어냈고……. 이어 둘째 녀석의 사춘기를 겪어내는 과정에서 이게 무슨 나의 기구한 운명인지 둘째 녀석은 더했다. 그러니까 보고 배운 누나의 사춘기 증상을 보다 더 업그레이드시켰다고 할까? 한마디로 기가 막혔다. 무언가 일이 발생했을 때 혼을 낼라치면 그 즉시 “누나도 그랬잖아요.”, 내지는 “누나는 뭐라고 하지도 않았으면서…….”라고 투덜대면서 누나와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곤 했다. 사춘기로 한창 몸살을 앓고 있었던 첫째 딸아이의 눈치를 보느라 그저 숨죽여 살았는데, 둘째 녀석은 그런 내 마음도 모른 채 자신의 어떠한 행동에도 엄마의 말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미리 선수를 치는 식이었다. 그때 절실하게 깨달았다. 흔히들 사춘기를 가리켜 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칭하는 지를.


 답이 없었다. 끊임없이 지금의 자신과 과거의 누나를 비교하면서 얘기할 때는 내가 무슨 얘기를 해도 전혀 먹혀들어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당시 누나가 사춘기였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면 그 말은 또 사춘기인 자신에게도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한다는 빌미를 주는 셈이었다. 아! 정말이지 자식을 키운다는 것은 도 닦은 스님보다도 한 수 위여야만 가능한 일인 듯싶었다. 이 세상의 부모, 특히 ‘엄마’라는 존재는 정말 위대함 그 자체다. 여하튼 그러한 상황 속에서 나로서는 침묵밖에 답이 없었다. 무언가를 말하면 그 말은 계속해서 실타래가 꼬이듯 점점 더 풀기 힘든 상황으로 치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 난 아무런 의미 없는 벽 세계에서 조용한 침묵의 세계로 발을 내디뎠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 없는 내 엄마의 삶을 서서히 이해하기 시작했다.


 나의 엄마는 언니, 나 그리고 남동생 삼 남매를 키워냈다. 내 기억 속 엄마는 항상 조용히 노래를 부르면서 묵묵히 살림만 하는 그런 엄마였다. 그렇다고 엄마가 행복한 가정 속에서 한 남자의 부인이자 세 자녀의 엄마로 살아간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우리 집은 아빠의 사업 실패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 숨 막히듯 권위적인 아빠, 유독 사춘기가 심했던 언니, 그리고 줄줄이 사춘기를 앓았던 나와 남동생이 있었다. 솔직히 같은 엄마 입장에서 볼 때 숨이 “컥” 하고 막힐 지경이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게다. 엄마는 말이 없었다. 다만, 자식들이 서로 심하게 싸울 때만 제외하고는 그저 조용히 침묵만 지킬 뿐이었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엄마가 왜 침묵했는지. 사실 난 운명론자는 아니다. 하지만 사춘기 아이를 키우면서 뼈저리게 깨달은 바가 있다. 그건 바로 내가 배 아파 낳은 자식이라도 절대 내 뜻대로 안 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 아이를 아무리 좋은 방향으로 이끌려고 해도 스스로에게 어떠한 커다란 계기가 있지 않는 한 이미 타고난 성향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는 곧 부모가 자식을 가르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고……. 다만, 그런 부모의 뜻을 받아들이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결국 아이들의 몫인 것이다. 참 어리석게도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내 뜻대로 잘 자랄 수 있을 것 같았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의 엄마도 역시 어느 시점까지는 자식들이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꾸준히 가르쳤을 것이다. 그러다가 자식들이 하나둘씩 사춘기를 겪게 되면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시점이 되자 결국 침묵이라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싶다. 자식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은 너무도 많지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그저 침묵밖에 답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침묵이라는 단어에는 정작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했던 엄마의 깊은 한이 서려있다. 그렇게 나의 엄마는 소리 없는 외침, 즉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외로운 삶을 살아왔던 것 같다. 참으로 놀라웠던 건, 병원에 가기 싫어하던 엄마가 이 세상과 이별할 때쯤, 충격적인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평소 A형인 줄로만 알았던 너무도 조용했던 엄마가 피검사를 통해 O형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물론 혈액형의 특징과 성격이 모두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내 주변의 O형인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밝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소리 없는 외침! 엄마의 한 사람으로서 자식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은 너무도 많지만 지금은 침묵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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