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하우스에서 서울 아파트로

<5> 런던에서 서울로 _ 아파트 한 동이 성처럼 보일때

by 프시케








친구들이 묻는다.

"한국 오니 뭐가 좋아?"

글쎄, 격리 중이라 집에만 있기에
바깥 한국은 아직 실감하지 못했으나
그래도 한국이기에 좋은 것을
집 생활면에서만 꼽아보자면


1, 빨래가 짱짱하게 된다. 그리고 잘 마른다

( 영국 날씨와 시원찮은 가전제품 때문에 지난 3 년 여간의 빨래는 어정쩡한 것이었다. 고작 이것이 1번인가 싶지만 주부에겐 정말 중요한 사실! )



2, 냉장고를 비롯한 다른 가전제품 역시 쌩쌩하다

( 가전도 국민성이 있는지 영국에서 쓰던 제품들은 심지어 한국 기업 제품들도 영 제기능이 나오지 않았는데, 영국인들은 또 작은 불편을 불편의 범주에 놓지 않았기에 개선이 어려웠다)


3. 집이 따뜻하다

( 정말 큰 장점이다. 영국에서 열효율이 떨어지는 하우스에 살았기에 가을부터 겨울이 오는 것이 두려웠었다. 라디에이터로 집안에 온기를 불어넣지만 뜨겁고 건조한 공기가 라디에이터 주변만 감싸줄 뿐 여름 빼고는 집이 쾌적하지 않았다.
습한데 건조하고 추운데 답답했다.)


4. 치안 걱정을 크게 덜었다

( 영국에선 현관, 마당으로 통하는 문 부엌으로 통하는 문 등 세 통로가 있음에도 자동 잠금장치가 없었다. 집 앞 가게에서 30초면 열쇠 복사가 가능한 열쇠 한두 개로 문단속을 하는, 그런 보안 상태 속에서 살았다. 전 세계 각국에서 온 좀도둑이 많았고 경찰도 허술했다.)


5. 집이 구조적으로 효율 적이다

( 분명 영국의 하우스는 겉으로 보기엔 크고 예쁜데 안으로 들어가면 좁았다. 구조가 비효율적이었다. 만들어진 지 오래되었으니 당연하다. 그에 반해 한국의 아파트는 면적이 작아도 효율적이다. )






그러나 ( 두둥!)



이 모든 편리를 전복시키는 불편이 이 안에 있으니
그것은 아무리 해도 이 곳은 성냥갑 공간
1층 위에 2 층이 있고 3 층 밑에 2 층이 있으며


천고가 높지 않고
벽과 벽이 얇은 아파트라는 것.
이런 아파트에서는 층간소음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

( 영국에도 플랏이라는 이름의 아파트는 있고 그곳에도 소음문제는 있으나 하우스가 더 영국적 주거 형태라 할 수 있다. 하우스에 살아도 소음 문제는 있으나 이를 한국 사람들처럼 크고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걷는 것과 뛰는 것의 경계가 미묘하고
쉴 새 없이 움직이며
기뻐도 슬퍼도 소리 지르는 것이 일인 어린아이가 셋,

그 아이들을 내내 혼자 봐야 하는 나는,
한국에 오고 난 이후부터 계속 경계상태다.



움직이지 마라
뛰지 마라
소리 지르지 마라


아이들이 자연스레 하는 모든 움직임을 제한시켜야 하는 임무, 민폐를 최소화해야 하는 의무를 맡게 되었으니,
그것은 지난 3 년간 한국의 부동산 움직임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런던에 가기 전부터 한 달 렌트비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었다.( 전세 개념이 없다, 5인 가족이 살 집을 찾으며 보통 하우스는 한 달에 2백만 원~ 3백만 원 정도의 렌트비를 예상해야 했다.) 그래서 이 곳은 한국보다 더 살기 팍팍한 곳이구나, 싶었었다.


한국에 돌아오니 지난 3년 사이 전세 개념이 멸종위기에 몰린듯하다. 이미 너무 비싸서 감당이 되지 않던 아파트 가격은 두배 세배까지 뛰었다.


그래서 집을 찾고 찾다 결국 겨우 10 층에 있는 집을 찾게 되었는데 지금 며칠 살아보니, 후회스럽다.


나는 1층을 얻었어야 했던 것 같다.









아래층 아저씨가 쫒아오셨다.

( 충분히 그럴만했다. 아이들은 바닥에 깔아 놓은 매트도 세워가며 놀고 이미 커튼 하나와 블라인드 하나가 부서지도록 놀고 싶어 했다. 나갈 수도 없으니 할 일도 딱히 없으니 몸 쓰며 놀 수밖에 없는데 내 입에서는 하지 마라, 는 소용없는 속사포 랩만 반복된다.)




항의하러 올라온 아랫집 아저씨에게
잠금장치 걸쳐두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허공에 머리를 숙이며 사정 얘기를 했다


문만 열면 죄송하다고 이야기해야 하는
죄송함의 시간이 한국의 아파트에서 시작된 것.




"뛰지 마라"


이 말이 가장 잘 먹히지 않는
세돌 지난 막내 아가씨,
미꾸라지처럼 이리저리 도망치는
우리 집 요주의 인물 막내를 붙잡아

뛰지 말자고 안아주며
아파트 건너편을 내다보는데



셋째가 묻는다


Is that the castle our granma live?
할머니는 저 건너편 성에 살고 있는 거야?


Is this the castle our uncle live?
삼촌은 여기 건너편 성에 살고 있는 거고?


태어나서 반년차에 영국에 갔다가
세돌 생일 지나고 돌아온 셋째에게는
한국의 아파트 한 동이 통째로 성처럼 보였던 것.
(이 엄마는 영국에 살았어도 캐슬은 캐슬인데
아이들은 저들끼리 '카슬 '이라 발음한다)



셋째의 이야기에 한참 웃다가
갑자기 가슴이 서늘해지는데
아파트 여기저기에 성과 궁전 이름에
이국의 이름을 붙여야 했던 이유,
가장 일상적이고 적나라한 현실의 공간에
그렇게 해서라도 환상의 이름을 열심히 가져다 붙이며
거 품어 거품을 키워와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에
마음이 가 닿았기 때문이었다.



이 아파트 한 공간 한 가족의 보금자리를 구하겠다는
지극히 단순하고 당연하고 소박한 소망을 ,
가닿을 수 없는 환상 속 꿈으로 저만치 올려놓은 움직임들에 우리의 일상이., 우리의 관계가
성처럼 견고해지기보다
성냥갑처럼 구겨지기 쉬웠는지
생각나는 이야기가 많아서
그냥 웃기가 어려웠다





우리가 가진 욕망이란
아파트 한동 전체를 성처럼 가지겠다는
영주의 욕망도 왕의 욕망도 아닌데

의식주란 기본 욕망이라 하면서도
그 기본을 가지는 것이 쉽지 않은 구조 속에서
다닥다닥 살게 되는 것인데,


우리의 욕망은 본디 성냥갑만 한 것이었는데
이를 채우기 위해
아파트 한동만 한 성을 축조하는데 필요한 안간힘을
계속 요구하는 구조 속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구조적 결함이고 거시적인 담론인데
우리는 그로 인한
다툼과 갈등과 안간힘을
개인적으로 미시적으로 일상적으로 않게 된다



"뛰지 말라니깐, "
"뛰면 안 된다니깐, "



중간중간 아이들을 제지시키고
층간소음 방지 키워드로 물건을 사고
기진맥진하여 아이들 재우려고 불을 끄는데,
큰 창에 가로등 불빛이 어른 거린다.



아이들은 한국에 오니
베트멘 표시도 보게 된다며
셋이 나란히 누워 베트멘 출동을 기뻐하는데


난 또 이 모습을 귀여워하다가
귀여워만 할 수없다는 생각을 한다



영웅은 악당이 많기에 필요한 존재인데
나는 영웅이 없는 곳
있다고 해도 큰 영웅은 없는 곳,
그저 모두가 작은 영웅들인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아이들 도란도란 키우면서
사소한 불편은 적당히 감당하고
작은 편리에 일일이 감동하며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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