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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성일 Jun 11. 2021

튼튼한 나무에 앉아 번쩍 든 자유를 향한 세 손가락

<미얀마 8요일력> 10화


2021년 2월 1일, 미얀마 수도 네피도에서는 중학교 체육 선생님인 Khing Hnin Wai 씨가 평소처럼 야외에서 에어로빅 영상을 촬영하여 그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런데 그날 그 영상에 찍힌 장면에 전 세계 언론은 깜짝 놀랐다. 바로 쿠데타를 일으키러 들어가는 군부의 무장한 차량이 영상에 그대로 찍혔기 때문이다.


https://youtu.be/yEHiTjViicE

Khing Hnin Wai의 영상에 담긴 미얀마의 상황을 외신들은 빠르게 보도했다. (c) BBC News


이 영상이 촬영된 2021년 2월 1일, 미얀마에서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시민들의 자유를 빼앗았다. 4개월이 지난 지금도 쿠데타 상황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군부의 무자비한 폭력에 현재까지 무고한 시민 약 86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코로나 19와 더불어 쿠데타로 국경이 막혀 참담한 현지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프다.


미얀마 군부는 지난 1962년 쿠데타로 집권한 이후 2015년까지 거의 53년 간 집권하며 권력을 행사했다. 끊임없이 일어난 민주화 운동의 결과로 2015년 총선거에서 아웅 산 수찌(အောင်ဆန်းစုကြည်, Aung San Suu Kyi, 1945-)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NLD)이 과반수가 넘는 의석을 차지해 마침내 민주 정부가 들어섰으나, 여전히 군부는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민주 정부 5년의 임기 종료를 앞두고 치러진 2020년 총선거에서 NLD는 전체 476석 중 396석을 차지했다. 또 한 번 새로운 민주 정부가 이어지는가 했으나, 새로운 정부가 시작되는 2021년 2월 1일, 군부는 지난 총선거를 부정선거라 규정하여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지난 4개월 동안 미얀마 사람들은 일상과 자유를 빼앗은 군부에 맞서 싸웠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목숨을 잃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겼다. 오늘의 아픔은 단지 4개월 동안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오늘 우리는 미얀마에서 오랫동안 이어진 투쟁의 일부분을 지켜보고 있다. 지난 2021년 2월 22일 2시에 미얀마 전국에서 일어난 '22222 항쟁'은 지난 1988년 8월 8일의 '8888 항쟁'을 잇고 있다. 학생, 스님, 시민 너 나 할 것 없이 거리로 나와 파업과 시위를 이어가는 모습이 미얀마에서는 수년째 이어졌다.


  



이 투쟁의 역사는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영국 식민지 시절 독립 투쟁으로도 이어진다. 유럽 국가들이 전 세계를 식민지화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던 19세기, 인도를 차지한 영국은 동남아시아 내륙 동쪽 지역(라오스, 베트남 일부)을 점령한 프랑스를 의식하여 1886년 지금의 미얀마인 버마(Burma)를 식민지로 점령한다. 버마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는 1948년까지 영국은 무려 62년간 버마를 식민 지배했다. 1942년부터 45년까지 일본도 버마를 점령했는데, 일본의 지배 3년 동안이 영국의 60년 지배보다 더 힘든 시기였다고 한다. 식민지 시절 버마에서는 영국과 일본을 향한 크고 작은 독립운동이 일어났으며,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운명과 개척 사이


<미얀마 8요일력>에서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따르면, 미얀마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요일로 정해진 거대한 운명을 따른다. 그런데 운명을 따르는 사람들이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자신이 처한 현실을 바꾸려는 모습을 보면 두 가지 삶의 태도가 공존하기에는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운명'이라는 말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것 같고, 순응적으로 따라야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힌두 점성학의 기초가 되는 베다는 운명에 대응하는 카르마(業)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베다 점성학은 우리가 지닌 자유를 얻으려는 열망과 관계하고 있다.
베다 점성학의 목적은 별을 통하여 우리의 운명을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베다 점성학은 우리를 운명 앞에 무력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 데이비드 프롤리, <베다 입문>, 100p.


베다가 말하는 운명은 한국에서 말하는 순응적 운명론이 아니라 주어진 카르마 안에서 자신의 꽃을 피워내는 최선을 다하는 삶이다. 힌두 점성학에서 출발한 버마 점성학은 달력을 만들었고, 그 달력을 따라 살아가는 미얀마 사람들은 자유를 가로막는 운명의 벽 앞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



미얀마 시민들은 촛불을 피워 군부의 폭력에 희생된 시민들을 추모하고 있다.




튼튼한 나무처럼


미얀마 시민들의 투쟁 중심에는 늘 두 명의 아웅 산이 있었다. 아버지 아웅 산 장군은 과거 영국 식민 지배에서 독립을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했고, 그의 딸 아웅 산 수찌는 군부 독재에 맞선 민주화 투쟁의 중심에서 시민 불복종의 아이콘이 되어 왔다. 이 두 사람의 존재만으로도 미얀마 시민들에게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큰 힘이 되는 모습을 보며, 이들의 존재가 사회에서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 보았다.


오래전 미얀마 지역에 전파되었던 힌두교에서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내려와 구원자가 되는 '아바타(Avatar)'로 봐야 할까? 시민 모두가 주권을 가진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사람에게 절대자의 상징인 아바타를 붙일 수는 없다. 수찌 여사가 직접 쓴 글을 읽으며 큰 깨달음을 얻었다.


오랜 가택 연금에서 풀려나 따마냐의 위나야(U Winaya) 큰 스님을 찾아뵌 일화에서 아웅 산 수찌는 큰 스님을 보며 "튼튼한 나무 한 그루에는 만 마리의 새가 앉을 수 있다."라는 버마 속담을 언급한다. (<아웅 산 수 치의 평화>, 127p)


သစ်တစ်ပင်ကောင်း ငှက်တစ်သောင်း
튼튼한 나무 한 그루에는 만 마리의 새가 앉을 수 있다.


민주화 투쟁을 하는 시민들에게 아웅 산 수찌 역시 튼튼한 나무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압제와 회유, 오랜 가택 연금과 고통의 순간을 버텨내고 시민들에게 튼튼한 나무가 되어주는 삶...  





자유를 향한 연대


미얀마의 오랜 민주화 투쟁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아시아에 새롭게 불어오는 연대의 바람이 미얀마에도 이르렀기 때문이다. 2014년 홍콩의 우산 혁명에서 시작된 시민 불복종의 바람은 필리핀, 대만, 태국을 거쳐 미얀마에 닿았다.


밀크티 동맹(Milk Tea Alliance)이라 불리는 이 연대의 바람은 최초에 반중국 정서를 바탕으로 형성되었다. 여러 지역에서 일어난 반중국 시위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민주화 운동으로 광범위하게 확대되어 국가와 지역을 뛰어넘는 연대의 물결이 되었다.


트위터의 밀크티 동맹 이모지(왼쪽)와 세 나라의 밀크티 색깔로 구성된 밀크티 동맹 깃발(오른쪽)


밀크티 동맹의 매력 중 하나는 포용성입니다. 아시아 지역을 재정의하여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및 남아시아에서 연대를 구축했습니다. (중략) 태국, 홍콩, 미얀마 및 기타 지역의 다양한 시위 운동에 대한 도전에도 불구하고 밀크티 동맹 활동가들 사이에는 여전히 엄청난 희망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군대가 오래 버틸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자유를 알고 자란 세대의 탄력성과 정치적 양심입니다.

"미얀마는 최근 몇 년 동안 민주주의를 경험했습니다. 이는 완전히 새로운 세대가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홍콩, 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힘은 군대, 전차 또는 총만이 아니라 젊은 세대가 세상을 보는 방식에 있습니다."

미얀마 시위대는 유튜브에서 군대의 수류탄이나 기관총과 싸울 수 있는 수제 무기를 만드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태국 시위대는 트위터를 통해 홍콩 시위대가 직면 한 물대포와 최루탄에 맞서기 위해 무엇을 입어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페이스북 라이브 스트림은 권위주의 정부의 다양한 잘못을 계속해서 기록합니다. 소셜 미디어를 넘어서도 젊은이들은 다양한 형태의 저항에 대한 캐치 프레이즈를 만들어 왔습니다. 태국에서는 인기 있는 카레 요리의 이름인 kaeng te po가 경찰을 속이는 코드로 사용되었습니다.

- Jasmine Chia, <The Milk Tea Alliance: one year in, where is it now?>, April 23, 2021, Thai Enquirer


힘은 군대, 전차 또는 총만이 아니라
젊은 세대가 세상을 보는 방식에 있습니다.




헝거 게임, 세 손가락 경례


근 몇 년간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일어난 민주주의 운동에 모인 사람들은 세 손가락을 들어 올려 권력에 저항한다. 이 장면은 영화화된 소설인 '헝거 게임(Hunger Games)' 시리즈에 나온다. 여기 등장하는 가상의 국가 판엠(Panem)에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중앙(캐피톨)과 그 주위를 둘러싼 지배와 착취를 당하는 열두 구역이 등장한다. 캐피톨은 열두 구역에 지배력을 강화하고 공포를 주입하기 위해 매년 12-18세 사이 소년소녀 한 사람씩을 선발해 모인 스물네 조공인 중 단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서로 죽이는 배틀 로열 게임을 생중계한다. 주인공인 캣니스 에버딘(Katniss Everdeen)은 무자비한 캐피톨의 권력에 정면으로 맞서 혁명을 일으키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헝거 게임이 영화화되어 상업적인 성공을 이루자, 아시아 지역 십 대들을 통해 가상의 콘텐츠가 현실에 뿌리내렸다. 헝거 게임의 조공인과 동일한 나이인 십 대들이 자신의 삶에 뿌리내린 권력에 항거하여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유를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앞에서 재스민 치아가 언급한 "힘은... 젊은 세대가 세상을 보는 방식에 있습니다."라는 말을 읽고 바로 이 장면이 떠올랐다. 상대 조공인을 적으로 대하지 않았으며, 예를 갖춰 장례까지 치러준 캣니스는 카메라를 향해 세 손가락을 들어 올린다.



영화 <헝거게임: 판엠의 불꽃>에서 혁명의 불씨가 타오른 순간. (c) Lionsgate Films


전국으로 생중계되는 헝거게임에서 TV 스크린을 향해 들어 올린 캣니스의 세 손가락 경례는 더 이상 캐피톨에서 짜 놓은 대로 서로 적이 되어 죽고 죽이는 관계에 머물지 않겠다는 외침이었으며, 적인 줄만 알았던 서로가 힘을 모아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연대의 선언이었다.


권력자의 지배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삶을 쟁취하겠다는 연대의 손동작이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나타나는 것은 매우 특별한 울림을 준다. 과거 유럽 식민지로서 자원을 착취당했던 지역이자 현대 사회에서 부와 권력의 불균형이 여전히 서로를 착취하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돌리지 않고 연대하여 새로운 흐름을 만들겠다는 각오가 바로 이 세 손가락에 들어 있다.



태국 방콕의 민주기념탑 주위로 모인 태국 시민들이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이제까지 세계 질서는 자본주의를 추앙하며 인간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질주하며 나아갔다. 그러나 코로나 19로 경제적 불평등이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뉴스로 접하면서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과연 인간의 생명보다 자본이 더 중요한가?'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자본의 축적은 누구를 위한 일인가?'

 

미얀마 쿠데타로 다시 돌아가 본다. 5년 간의 민주화 사회 말미에 이어진 코로나 19, 그리고 일어난 쿠데타. 군부는 생명을 짓밟고 자본과 권력을 선택했다. 코로나 19라는 거대한 위기를 겪었으나 아직까지도 생명에 관심이 없는 모습. 자극에 무뎌진 걸까? 아니면 권력의 중독이 이렇게나 강력한 걸까? 그들은 얼마나 더 큰 시련을 겪어야 주위의 사람들을 돌아보게 될까?


 

경계 지어진 미래


지난 글에서 미얀마 달력은 복잡한 계산법 때문에 5년 뒤까지만 미리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레고리력처럼 수백, 수천 년 앞을 미리 내다보고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딱 5년만 계획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나 불안해진다. 먼 미래를 계획할 수 없다니. 이것을 나는 "경계 지어진 미래"라고 부르고 싶다. 너무 아득한 먼 미래가 아니라 눈 앞에 보이는 5년까지만 내다보고 경계를 짓는 삶.


그런데 코로나 19로 이제는 5년 앞이 아니라 1년, 아니 한 달 앞도 알 수 없는 혼돈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미래를 계획하느라 현재를 사는 데 익숙하지 않았던 현대인은 더욱 혼란스러운 한 해를 보냈다.


서두에서 쿠데타가 일어난 현장을 기록한 체육 선생님 Khing Hnin Wai 씨는 페이스북에서 그 영상을 올린 뒤 이렇게 얘기했다. (쿠데타 상황으로) 이슈 몰이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자신은 그저 일상을 기록했을 뿐이라고. 커다란 시련을 만났지만 그럼에도 오늘을 살아가기에 그의 영상이 주목받는 것 아닐까.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을 믿으면서 '경계 지어진 미래'에는 더 나은 현실을 쟁취하기 위해 '오늘' 투쟁하는 미얀마 사람들을 보면서 뉴 노멀 시대를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된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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