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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뀨우 Feb 06. 2021

오늘 밥값은 한 것 같다.

2021년 2월 나흘날의 단어들

사카모토 료마 기념관의 의뢰를 받아 출장을 다녀왔다. 외국인의 관점에서 시설과 전시 내용에 대한 의견을 구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버스를 놓치게 되면 다음 버스가 오기까지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사무실에는 얼굴 도장만 찍고 바로 나왔다. 너무 일찍 온 탓인지 기다리는 버스가 오려면 아직 십여 분이나 남았는데 다른 버스들이 짧은 간격을 두고 정류장에 멈춰 섰다. 한국에서는 버스를 타지 않으면 기사님에게 등을 보이든지 딴짓을 하든지 어떠한 방법으로든 내가 당신의 버스를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사를 밝힌다고 했다. K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국도 같다고 했다. E는 재밌다면서, 싱가포르에서는 버스를 타려고 할 때 손을 흔들어서 사인을 보내지 않으면 버스가 정류장을 그냥 지나쳐버린다고 했다. 이런 수다를 떠는 사이에 기다리던 버스가 멀리서부터 보이기 시작했고 우리는 정류장 앞으로 쪼르륵 줄 맞춰 서서 버스에 탈 의지를 적극적으로 내비쳤다.


오전에는 시설을 둘러봤다. 전시관은 아담한 넓이지만 막부 말기의 상황과 사카모토 료마에 대해 알차게 설명하고 있다. 잘 정리된 한 권의 참고서 같다. 바로 옆의 존 만지로 전시실은 가볍게 보기 좋았고 마지막 기획전시실은 그 무엇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한 바퀴 스윽 걷고만 나왔다. 본관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듯 쉽게 설명하고 있어서 보기 좋았다.


점심은 돈가쓰 덮밥을 먹었다. 10퍼센트 소비세를 포함해서 860엔이다. 밥알이 양념에 질퍽하게 젖은 부분은 짭조름하면서 단 맛이어서 내 입에 딱 맞았다. 요리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간장과 설탕을 듬뿍 사용한 일본 요리가 그리워질 것 같다. 밥을 다 먹고 기념관 앞에 있는 우라도 성터에 올라갔다. 지금까지 기념관엘 몇 번이고 왔어도 손님들을 모시고 온 터라 한 번도 성터에 가볼 생각을 못했는데 오늘은 여유가 있어 산책 겸 안내판을 따라 가봤다. 정확히는 천수각터였는데 너무 좁아서 지금도 내가 잘못 보고 온 것인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오후엔 기념관 직원들에게 느낀 점을 이야기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사카모토 료마가 암살된 오우미야 전시였다. 본관에서 유일하게 영어 표기가 있길래 자세히 보니 신발을 벗고 올라가라는 안내더라. 직원들은 부끄러워하면서도 배를 움켜쥐고 웃었다. 오늘 밥값은 한 것 같다. 이외에도 여러 이야기를 나눈 뒤, 한 시간에 한 번씩 오는 버스를 놓치지 않도록 기념관을 나섰다. 보람찬 하루였다.



사카모토 료마 기념관
https://ryoma-kinenkan.jp/country/ko/


乗り遅れる(のりおくれる):차를 놓치다
跡地(あとち):터
税込み(ぜいこみ):소비세 포함 / 税抜き(ぜいぬき):소비세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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