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헤어질 것을 생각해 약속 장소는 항상 경의중앙선이 달리는 곳이었는데, 이번엔 용산역이 당첨됐다. 엄마 찾아 삼만리를 찍지 않고 약속 시간에 맞춰 만난 뒤 점심을 먹으러 갔다. 엉겁결에 내가 사게 된 만큼 메뉴는 내가 좋아하는 동남아 음식으로 결정됐다. 거대한 쇼핑몰 안에 위치한 식당임에도 불구하고 식당은 한산했다. 다행히 배달음식도 같이 하는 곳이라 잊을만하면 '배달의 민족 주문'이 실내에 우렁차게 울렸다. 차돌쌀국수, 볶음밥, 분짜를 주문했는데 감탄하거나 실망할 맛은 아니었다. 사실 내가 지독하게 편식을 하긴 하지만 맛에 대해선 관대(혹은 무지)한 편이긴 하다.
식사를 마치고 GB의 새 가구를 보러 갔다. 원목을 사용했으니 그럴 만 하지만, 막상 눈앞에 쉼표와 0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가격표를 보자니 적잖이 놀랐다. 코로나 때문에 많은 사람이 어렵다지만, 집콕하는 사람들의 인테리어 수요 때문인지 매장 직원들은 행복해 보였다. 월급만 따박따박 나온다면야 굳이 울상을 지을 이유도 없겠다.
예전엔 출장 때문에 용산역에 올 일이 잦았는데, 그때마다 서울을 대표하는 기차역이면서도 공사 중인 모습을 거칠게 드러낸 모습을 보여주기가 싫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다시 찾은 용산역은 전보다 깔끔해진 것 같았다. 그런 용산역을 끼고 주변 답사를 했다. 벌써 10여 년 정도 지난 듯한 용산참사. 사실 나는 자세한 내막이나 결과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GB에게 간략하게나마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사람이 남을 죽여 내가 사는 것을 전근대의 일로만 생각했지만, 불과 10여 년 전의 일이다. 모두가 피해자다.
얼마간을 걸어 이태원에 도착했다. 방송 프로그램 유퀴즈에서 개그맨 조세호가 이른 아침에 이태원을 방문하여 상권이 죽었다며 안타까워했던 것이 생각났는데, 한낮에도 문을 닫은 곳이 많은 걸 보니 확실히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선 식당도 있었다. 아싸를 자처하는 우리 셋은 괜히 죽탱이 맞지 말자며 조용히 구경하다 발걸음을 옮겼다. 전쟁기념관에 잠시 들렀다가 미군기지를 따라 또 한참을 걸었는데, 쭉 뻗은 길 따라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낸 풍경이 썩 마음에 들었다. 선선한 날에 다시 걷고 싶은 곳이었다.
목적지였던 북카페는 월요일이 휴관이라 걸음을 되돌려야 했다. 지나오던 길에 봤던 스타벅스에 들어가 열도 식히고 목도 축였다. 10년을 넘게 알고 지낸 우리의 대화는 주식과 부동산으로 가득했다. MR은 파이어족에 꽂혀 있었고, 그런 그를 GB는 나무랐다. 두 사람 모두 원하는 바를 이루면 좋겠다. 서점에 들렀다가 다른 지인과 약속이 있는 GB와 헤어지고, MR이 맛있다고 한 삼송빵집에서 빵 몇 가지를 골라 담아 집에 돌아갔다. 몸은 조금 피곤했지만 알찬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