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됐다.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도 경건함을 담아야 할 것 같은 그런 날이다. 그렇다고 동트기 전부터 목욕재계하고 뒷산에 올라 사위의 어둠을 깨치며 서서히 솟아오르는 해를 보면서 새해를 맞이한 것은 아니다. SBS 연기대상 MC를 맡은 신동엽이 카운트다운을 하기 전까지 오디오 공백을 메우기 위해 김소연, 이제훈, 이하늬에게 차례로 인사를 부탁했고, 2021년을 20여 초 남긴 기가 막힌 타이밍에 마이크를 되찾아온 신동엽과 함께 숫자를 거꾸로 세가며 2022년을 맞이했다. 새해는 오전 12시부터 시작하는 것이니, 산봉우리 정상에서 타오르는 아침해를 마주하며 정기를 받지 않더라도 일단 새해는 맞이한 셈이다.
새해가 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분이 하신 말이 생각난다. 그분에 대한 내 정성을 표현하고자 한 자 한 자 고심하며 새해 인사를 적어 보냈고, 간결하면서도 묵직한 답장을 받았다.
하루를 사이에 두고 2015년과 2016년이라고 명칭이 달라졌어요. 자연 자체에는 시간의 매듭이 없으며 시간의 매듭은 인류 문화의 산물이라고 누군가가 말했지요. 어쨌거나 묵은해가 가고 새해가 오면 잠시나마 마음을 다져 잡는 momentum이 되니 나름대로 의미가 있어요.
새해 언저리가 되면 받은메일함을 뒤적여 기어이 이 글귀를 찾아내고서는 방금 내린 커피처럼 음미하는 것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향과 맛이 진해진다.
다 큰 자식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가 가족들이 둘러앉아 떡국을 한 그릇씩 먹었다. 이제는 새해와 설날이 아니고서는 잘 안 먹게 돼서 그런지 떡국이 반가웠다. 숟가락 위에 떡을 올리고, 국물에 폭 젖은 김을 마저 얹으면서 그릇을 비웠다.
오후엔 스타필드에 갔는데 이미 도착하기 전부터 일대가 정체됐다. 멀리서 주차장 입구가 보였다. 전광판에서는 모든 층의 만차를 알렸지만 차들은 꾸역꾸역 들어갔다. 여기까지 와서, 그동안 길 위에서 기다린 것이 아까워서, 이제 진짜 얼마 안 남아서 혹은 차를 돌릴 수조차 없을 정도로 차가 많아서 모두들 '노빠꾸'였다. 실내에 들어가서도 주차 공간을 찾는데 한참이나 걸렸다.
이미 상여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상여금을 받았을 때 '내가 쏜다' 했던 말만 무성히 남아 아빠 옷과 내 신발, 또 다른 선물을 차례로 샀다. 역시 돈 쓰는 것은 쉽고 즐겁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Y에게서 연락이 왔다. 작년에 연하장과 함께 보냈던 선물이 잘 도착했다는 감사 인사와 선물 중 하나인 컵라면은 도대체 얼마나 매운 것인지 설명해달라는 것이었다. 많은 한국 사람이 맵다고 생각하지 않을 농심 육개장이 Y와 그 가족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에 수프를 조금 더 넣어가며 먹어보길 추천했다. 새해 첫날부터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Y도, 의도치 않았지만 특별한 날에 선물이 도착하게끔 보낸 나도 기분이 좋았다. 아울러 새해 벽두부터 쉬지도 못하고 택배를 날랐을 우체국 직원이 오늘은 빨리 퇴근했기를 속으로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