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어느 날 오전. 학부형 인솔자로 10명의 중1 여학생을 데리고 직업체험을 갔다. 이미 이전의 두 번의 교육에 ‘나는 도대체 왜 이걸 신청했나.’, ‘과거의 정신없던 나는 왜 경솔하게 참여버튼을 누른 것인가’ 하며 나를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비까지 내리는 오전에 굳이 내가 애들을 데리고 지하철을 타고 가야하는 것인가 싶은 마음에 썩 유쾌하지는 않게 길을 나섰다.
아들 둘만 키우는 내가 여자아이들 10명을 데리고 가니 약간 조심스러운 마음이 있었고, 별거는 아니지만 무사히 내 임무를 완수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꽃집에 도착했고 멘토님(플로리스트)은 매우 당찬 기운으로 우리를 맞이했는데 그 포스에 살짝 쫄리기도 했다. 당연히 다 알고 있다고 여겼던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에 대해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된 것도 만족스러웠는데 그 외에 본인의 진로 고민했던 경험들을 얘기해주시면서 진심을 다해 아이들의 미래를 응원하고 아이들이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꿈을 향해 가기를 원하는 마음이 물씬 묻어나는 말들에 내가 다 감동했다.
멘토님이 꽃다발을 시범으로 만들고 나서 “꽃다발을 만들 때 정답은 없어 너희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야” 라고 하셨다. 시범을 보고 나서 아이들이 직접 꽃다발을 만들어보는 시간. 처음이라 어떻게 할지 우물쭈물하는 아이들에게 “네가 생각하는 그게 맞아! 그렇게 하면 돼! 정답은 없어. 네가 만들어 가면 돼”라고 여러 번 말씀하시는 멘토님의 말에 나는 주책없이 눈물이 찔끔; (비가 와서 그런지 감정과잉상태), 중1 아이들에게 하는 말로 들어도 감동이지만 나는 왠지 나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해서 위로가 됐다.
그러고 나서 아이들을 보니 그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꽃도 예쁜데 아이들도 예쁘고. 그런 예쁜 꽃을 조심스레 만지며 각자 자기의 모습처럼, 정답 없는 자유로운 꽃다발을 만드는 아이들의 모습이 감동스러울 정도로 예뻤다. 감동에 빠져있는 내 귀에 들려오는 멘토님 말씀 “모든 것을 나에서부터 시작하세요.” 이 얼마나 좋은 말인가! 부모님도, 친구도, 나를 잘 모르는 그 누군가들이 아니라 ‘나’에서부터 시작하라. 나를 존중하고, 나를 아끼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싫어하는 것이 뭔지 내 마음을 들어주는 것. 이기적이라는 말이 아니라 무슨 일이든 진짜 내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에서 시작하라는 말로 들렸다.
각자 만든 꽃다발을 포장까지 완성하고 난 샘플로 만들었던 꽃다발을 선물로 받고 그 꽃집을 나섰다. 무사히 동네로 이동해 각자 집으로 해산한 다음 나는 단톡방에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인사했다. “꽃다발을 만드는 것도 정답이 없듯이 너희들의 삶도 정답이 없어. 꽃 그 자체로 너무 예쁘듯이 너희들도 존재 자체로 너무 예쁘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