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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Jul 05. 2023

만신창이 워킹맘의 하루

만신창이가 된 하루다.


새벽 동트기 전 요란스러운 고양이 싸움소리.. 격렬하다. 블라인드를 젖히고 보니 얼룩덜룩한 고양이와 회색 고양이가 싸운다. 내가 주는 밥 때문에 영역 싸움을 하나 싶고.. 주민들이 싫어할 것 같아 어서 싸움을 그치게 창문을 연다. 그 소리에 한 놈이 도망가고 또 한 놈도 이어 도망가 싸움을 마쳤다. 난 또 잠이 들었다. 


아침에 영우가 안 일어난다. 늦게사 엉엉 우는 소리가 들려 급하게 가보니 영어학원에서 친구들과 샘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들었단다. 얼마나 실감 났는지 울음이 오래간다. 오늘 분명 꿈처럼 될 것 같아 학원을 가기 싫다며... 월요일은 차가 많이 막혀 지각하기 쉬워 서둘러야 했기에 "꿈은 반대잖아" 하고 대충 얼르고 집을 나온다. 다행히 지각은 면했다.


어젯밤늦게 온 시어머니 문자. 답을 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맘에 쓰인다. 신랑에게 연락이 왔다. 


아침에 출근한다고 문을 여니 초희(우리냥이)가 현관문 앞에서 지친 모습으로 서있다가 집으로 들어오더라고. 밥을 줘도 잘 안 먹고 현관에는 털이 빠져 있더라고. 마음이 덜컹 내려앉는다. 내가 본 그 싸움이 초희였다니. 그 격렬한 싸움이. 초희가 밖으로 나갔는지 모르고 문을 닫고 잤던 것이다. 분명 현관 앞에서 울었을 텐데 못 듣고 그냥 자버린 거다. 지난밤은 초희에게 얼마나 힘든 밤이었을까. (이후 3일간 초희는 다락방에서 내려오지 않고 식음을 전폐한다.)


회사 생활이 녹록지가 않다. 내 맘 같지 않다. 다 내 탓 같으면서도 다 원망스럽다. 리더십은 개나 줘버려 싶다. 그냥 사람대 사람의 문제인데 입장에 따라 참 다르다. 싫은 소리 하기가 참 힘들다. 결국은 화까지 내고 나니 너덜너덜해진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몸이 떨린다. 


영우의 전화가 온다. 역시 꿈대로 이루어진다고. 샘한테 혼났고 속상한 하루였다고. 엄마도 너무 힘든 하루라고 이따 밤에 만나면 서로 위로해 주자 하고 전화를 끊는다. 


야근하는 날. 퇴근 준비하는데 울리는 사장님 전화. 여러 군데 전화를 해 일일이 굽신굽신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 7~8통에 진이 다 빠진다. 


10시가 넘은 합정역 버스 정거장은 사람들로 붐빈다. 역시나 만원 버스. 타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후들후들한 다리에 더 힘을 준다. 계속 뒤에 있는 남자에게 몸이 밀착되는 것 같아 불편하다. 집에 도착하면 애들이 자고 있어야 할 텐데 하는 마음과 깨어있었으면 좋겠다는 맘이 동시에 든다. 집에 오니 다들 잔다. 집은 난리진창 부르스. 초희부터 살핀다. 기운이 없고 거동이 불편해 보인다. 그 좋아하던 간식도 안 먹는다. 야속하게 굴었던 지난 내 모습이 생각나 너무 미안하다.


평소 같으면 좀 치우고 낼 아침에 덜 힘들자 싶은데 오늘은 손 까딱하기 싫다. 그냥 둔다. 씻고 티브이를 보는데 마침 슬픈 노래와 장면이 나온다. 신랑은 늦은 저녁과 맥주 한 캔을 하며 클래쉬로열게임을 한다. 난 소리 없이 엉엉 운다. 들키고 싶지 않아 어느 정도는 버텼는데 터져버린 울음은 어쩔 수 없다. 그냥 엉엉 울고 나니 속이 좀 후련하다. 이제 내일 버틸 힘을 위해 자야겠다. 설마 오늘 같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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