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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용 시뭔SiMone Apr 11. 2023

용龍의 혀舌를 본 적이 있는가?

술 이야기

용은 허구의 동물이므로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펴야 그 모습을 그려 낼 수 있다. 그 혀의 생김새를 나타내려면 더욱더 상상의 날갯짓을 퍼덕여야 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용을 본 사람은 없어도 용의 혀를 닮았다는 식물은 있다. 

용설란龍舌蘭이다. 이름은 낯설지만 사진을 보면 눈에 익은 만큼 국내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식물이다.

선인장과 비슷하나 엄연히 다른 종자인 용설란은 학명으로는 아가베 Agave라 부른다. 그 잎은 길쭉하여 끝으로 갈수록 가늘어져 마치 창과 같다. 게다가 잎의 가장자리에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나 있어 과연 무시무시한 용의 혀로서 손색이 없는 모양이다. 용의 혀를 잎으로 갖고 있는 이 아가베가 바로 테킬라를 만드는데 쓰인다.




blue agave와 pina

생김새만큼이나 쓴 맛을 내는 용의 혀(아가베의 바깥 잎)는 술 만드는 데는 필요가 없어 잘라낸다. 그런 후에 줄기 밑동에 들어있는 탄수화물 덩어리인 커다란 야자나무 열매처럼 보이는 핵(pina)을 쪄서 당분으로 변환시킨다. 이 당을 발효시키면 막걸리와 흡사한 풀케pulque라는 발효주가 나오는데 이를 증류하여 메스칼을 생산한다. 메스칼은 테킬라를 포함한 아가베로 만든 증류주의 총칭이다. 코냑, 샹파뉴 지방에서 나온 브랜디나 와인만이 코냑, 샴페인으로 불리듯이 할리스코라는 특정지역의 것만 테킬라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당뇨병을 앓고 있는 한 친구가 있다. 그는 병 때문에 술을 거의 안 마시지만 피치 못할 때는 언제나 테킬라만 마신다. 그가 주로 마시는 테킬라가 호세 쿠에르보 에스페시알 레포사드 Jose Cuervo Especial Reposado. (51%: blue agave, 49%: others)이다. 이 술은 해외 시장에서의 비중이 가히 독보적이고 테킬라의 역사라고 할 정도로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소개를 한다. 


증류기


태어나자마자 커다란 통나무 집에서 6개월을 지낸 이 녀석은 우선 때깔도 좋다. 불빛에 비쳐 보면 빛 나는 금색으로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나무집에서 겨우 몇 개월 살았다고 그런 금빛 색깔의 옷을 입을 수는 도저히 없는 것이므로 어느 정도 캐러멜로 치장을 한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일단 눈으로 보기에도 때깔이 좋다. 

코를 대어 본다. 냉장고에 너무 오래 두어선지 내음이 잘 안 올라온다. 스니프터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온기를 주어 본다. 조금씩 조금씩 향이 솟아난다. 후추향이 먼저, 그리고는 개수대 물 냄새라 할까 아니면 행주 냄새라 할까 시금 털털한 냄새가 올라온다. 

이젠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마셔 본다. 향기라기보다는 특유의 시큼함과 매운맛이 목을 찌른다. 데낄라 블랑코 보다는 약간 절제된 맛이지만 화장을 진하게 하지 않아 고유의 품성은 잃지 않고 있다. 



사실 한국 음식 특히 김치와 가장 잘 어울리는 서양술을 꼽자면 테킬라만 한 것도 없다. 테킬라의 강렬한 매운맛과 김치찌개의 얼큰함이 잘 어울린다. 테킬라의 털털한 느낌과 김치의 시큼함이 아주 잘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감자 탕이나 매운탕등 탕 종류 음식과 특히 젓갈류와의 마리아주에도 훌륭하다. 


테킬라를 가지고 빙글빙글 잔을 돌리고 찬찬히 향을 음미하며 마시는 정통 시음 방식은 어쩐지 좀 어색하다. 어색함을 넘어서서 오히려 이 술을 무시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테킬라는 멕시코의 태양이 녹아든 술이기 때문에 맛의 강렬함을 한 번에 느껴야지 그런 단편적인 시음은 요식행위일 뿐이다. 것 저리를 먹을 때 향내를 일일이 맡지 않고 입안에 넣어 전체적인 식감을 느끼는 것처럼 그렇게 마셔야 한다. 그냥 입안 깊숙이 잔을 탁 털어 넣고 목구멍에 번개가 칠 때까지 기다릴 뿐이다. 입술에서부터 혀, 입천장을 거칠 것도 없이 그냥 그대로 목울대에 들이부어 식도와 위장관까지 한꺼번에 '짜릿하게' 만들어야 한다. 화끈하게...

테킬라와 슬래머잔


테킬라의 주 재료인 아가베의 수액에서 나오는 당분은 아주 달게 느껴지지만 당도를 재보면 실제 그리 높지 않다고 한다. "프록탄"fructan 이란 물질로 단맛은 강하지만 체내의 과당 구조와 연결이 되어 당뇨병 환자에게 효과가 있다고 멕시코 의료팀이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이 약효를 술(테킬라)에 까지 적용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다. 


친구에게는 굳이 알리고 싶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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