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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주 May 13. 2022

실패하는 채식은 없다

채식인의 확장을 위하여


작년 여름부터 우리 가족은 채식지향인이 되었다.

남편과 중3 아들까지 동참하고 있는데, 누구의 권유에 의한 것이 아니라 환경문제와 동물권에 관한 대화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의기투합하여 하게 되었다.


베지테리언에도 먹는 음식에 따라 여러 분류(비건, 페스코, 락토, 오보, 폴로, 세미 등)가 있지만, 우리의 채식은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다. 전체적인 양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간 우리는 늘 구비해놓던 치즈, 버터, 우유, 요거트를 사지 않았다. 

집에서 꽤 자주 먹던 돼지고기 삼겹살과 소고기 스테이크를 한 번도 먹지 않았다. 

명절마다 잔뜩 만들던 갈비찜을 더는 만들지 않는다.

우리가 꽤 즐기던 외식 메뉴였던 양념 돼지갈빗집에 가지 않는다. 생고깃집은 말할 필요도 없고.

특히 양념 돼지갈비는 아이가 정말 좋아하는 외식 메뉴였는데, 지난 일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아이는 단 한 번도 먹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 돼지갈비를 먹자고 말하면 나는 흔쾌히 데리고 갔을 거였다)

다양한 음식을 비건 제품으로 선택한다. 


다만 반찬의 한계에 봉착하지 않기 위하여 달걀은 먹고 있다. 

따라서 마요네즈도 먹는다. 

또 유제품을 사지 않는다고 아예 안 먹는 것도 아니다.

케이크도 가끔 사 먹고, 버터가 들어간 것이 틀림없는 빵이나 과자도 먹는다.


말이 나온 김에 좀더 말하자면 치킨을 시켜 먹기도 하였고, 백숙을 먹기도 하였다.

고기만두도 먹었고, 칼국수나 냉면에 들어간 고기 고명도 먹었다.

초밥도 가끔 먹는다. 밀푀유나베도 해 먹었네.

지난달에는 짜장면, 짬뽕, 탕수육 세트를 먹었는데...


그러면 우리는 채식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는가? 없는가?

나는 채식주의자인데 포항으로 여행을 간다면 그 유명한 소머리국밥은 먹겠다는 이 생각은 온당한 걸까?

채식지향인이라는 한 발 뺀 듯한 제스처로 살아가면 되는 건가? 

하지만 이것저것을 먹으면서 '채식지향'이라고 말하는 건 조금 비겁한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이 모든 번민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한 것은, 어쨌든 우리 집의 식생활에서 고기가 차지하는 부분이 70~80% 가량 줄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척 큰 비율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타일러 라쉬'의 환경 관련 책 [두 번째 지구는 없다]를 읽었다. 



환경에 관한 그의 행보를 알고 있던 터라 그를 지지하는 마음과 더불어 내가 알고 있는 환경지식을 정리한다는 느낌으로 읽었다. (책은 쉽고 환경문제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지금을 사는 우리는 지구 환경에 대해, 기후 위기에 대해 모두 마음 한 구석에 걱정을 가지고 있다. 오늘 뉴스만 봐도 만년설이 녹아서 비도 안 내린 파키스탄에 어마어마한 홍수가 났다지 않나. 하지만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는 건 아니다. 


타일러는 나 하나쯤, 혹은 누군가가 해결해 주겠지 하는 마음을 꼬집고 행동에 나서길 촉구한다. 동감이다.

사실 기후 위기의 해결에 있어서는 정치적인 부분이 너무 커서, '내가 뭘 어쩐다고'의 심정이 되기 쉽다. 

그래도 우리는 움직여야 한다. 개인의 힘은 생각보다 막강하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어디에 소속되어 있지 않아도 나의 작은 행동은 나비효과가 되는 법이라는 걸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 않나?


다만 이 책을 읽다가 책 내용 중에 언급하고 싶은 부분이 있어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바로 여기, 타일러가 채식을 시도했다가 두 번이나 실패했다는 발언이 걸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채식에 실패라는 말이 붙으면 안 될 것 같다. 


완전한 비건이 되는 길은 생각보다 어렵다.

이제 고작 10개월 차인 나는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어제 고기만두를 먹었다고, 며칠 전 생일에 고기 미역국을 먹었다고, 매일 새우젓이 들어있는 김치를 먹는다고 나의 채식이 실패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항상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채식지향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채식 지향인이고 싶은 사람)은 선택의 여지가 있는 곳이라면 채식을 택할 것이다.

육류를 사야 한다면 되도록 사육두수를 줄이는 데에 기여하기 위해 비인기 부위를 택할 것이다. 

또 채식이 아닌 식사를 했다면 다음 한 끼는 채식을 선택할 것이다.


환경문제와 동물권 등의 신념 때문에 채식을 행하는 이들이 육식을 (가끔, 몇 번, 정기적으로) 했다는 이유로 실패라고 단정짓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도 그렇게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 

그들은 채식이 갖는 의미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채식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중요하다. 

이제 이런 것쯤은 융통성있는 세상이지 않나?

채식주의자에게 의문을 갖지 않았으면 한다. 

(자신은 결심하지 못하는 것을 하고 있는, 하려고 애쓰는) 채식주의자에게 엄격한 잣대도 들이대지 않았으면 한다. 

채식한다더니 어제 고기를 먹던데? 이렇게 힐난하는 분위기라면 누가 채식지향인이 되려고 하겠는가.


채식인에게 소, 돼지, 닭만 불쌍하냐고 말하면 안 된다.

골고루 먹어야지, 채식은 건강에 좋지 않다고 말하면 안 된다.

확실한 건 채식인이 되고자 결심한 사람보다 질문자가 더 많이 더 깊이 더 열심히 고민하고 공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하루에 한 끼라도,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채식하는 사람, 노력하는 사람은 모두 채식에 성공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다정한 시선을 건네고 싶다.


환경에 관해서는 옳은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채식을 바라보는 것도 이와 같았으면 한다.

어떤 것들은 매우 강력한 기준이 세워져야 겨우 유지될까 말까 하는 것이 있지만, 채식은 그렇지 않다. 

어떻게든 채식 인구가 늘어나는 것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 명이 백 명이 되고 다시 만 명이 되는 것은 매우 매우 중요하고 급한 일이다. 

야박하지 않아야 채식 인구가 높아진다. 

다수의 힘은 크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조금씩이라도 동참하는 것이 완전한 비건인 늘어나는 것보다 더 큰 발자국이 될 것이다.


조건 없이 한 끼 채식을 하는 당신은 이미 성공한 채식인이다. 

채식에 실패는 없다.

채식의 한 끼 한 끼는 모두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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