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꿈 잘 안 꾸는데 요즘 꿈속에 네가 나와
참으로 찝찝한 꿈이다. 네가 다른 여자와 결혼하고 뒤로는 나랑 연애하는 꿈이라니. 갑자기 왜 네가 꿈에 나오는 것일까? 네가 타지로 떠난 지 2개월쯤 됐나? 내가 무의식 중에 네 생각을 하는 걸까? 그냥 개꿈인가? 아니면 내가 외로워서 이러는 걸까? 얼마 전에도 꿈에 나온 것 같은데 그 꿈은 너무 어렴풋하다. 그러나 이번 꿈은 막장이라 뇌리에 박혔나 보다. 우린 참 타이밍도 오지게 안 맞았는데 네가 꿈에 나오는 타이밍조차 참 뜬금이 없다.
사실 3년 전인가? 네가 불러서 우리 둘이 호프집에 갔을 때 '혹시 얘가 날 좋아하나?' 싶었다. 너는 고백할 수 없었겠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차이고 몇 개월이나 지났지만 잊지 못해 울먹거리고 있었으니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너는 그 자리에서 처음 들었고, 날 위로해주느라 너의 마음을 차마 꺼낼 수 없었을 테니.
그 뒤로 나는 네가 다른 여자를 좋아한다는 착각에 빠져 그 친구와 이어 주기 위해 부던히도 자리를 만들었다. 네가 밥 먹자고 할 때마다 그 친구를 데리고 나갔으니, 네가 얼마나 답답했을지 상상도 가질 않아.
그러다가 내 친구 A가 널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너무 싫었다. 솔직히 네가 너무 아까워서 A가 널 좋아한다고 나에게 말했을 때 심장이 내려앉고 손이 떨렸어. 그래도 친구니깐 잘해보라고 A를 응원해줬다. 또 A한테 너무나도 잘해주는 너를 보면서 혹시 너도 A를 좋아하나 싶었다. 넌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너에게 고백을 받은 날, 널 앞에 두고 A한테 미안해서 울었던 게 생각나. 멀리 떠나기 전에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하라고 조언해줬던 건 나인데, 그 대상이 나였다는 게 놀랍지는 않았어. 어쩌면 은연중에 알고 있었던 것 같아. 그냥 A가 너에게 고백한지 생각보다 오래 됐고, 네가 날 좋아하는 걸 A가 안 것은 더 오래됐고, 난 그것도 모르고 둘 사이를 응원한다며 A에게 푼수짓을 했던게 너무 미안했어. 그래도 네가 좋은 사람이니깐, 너무 편하지만 대화와 취향이 잘 통하는 사람이니까 친구가 아닌 남자와 여자로 만나보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A, 그리고 너와 A를 엮어주기 위해 날 따돌리고 A와 널 데리고 여기저기 모임을 만들고 놀러 다녔던 B, C. 그 셋이서 나 없는 자리에서 여우 취급하며 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녔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그들과 손절했지만, 그래도 나는 걔네들에게 '우정보다 사랑을 선택한 인간'이 되기는 싫었던 것 같아. 너와 내가 사귄다는게 알려지면 걔네들이 '아, 역시나.'라고 할게 싫었어.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서 설레지 않았던 것도 있고 말야. 그래서 널 잠깐 만나는 내내 행복한 마음보단 심란함이 컸어. 결국 너에게 미안하다고 너무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서 설레지 않는다고 했다. 그 뒤로 코로나가 닥쳤고 우리는 1년간 만나지도, 서로 연락하지도 않았다.
네가 드디어 타지로 떠날 날을 받아놓고 우리는 마지막으로 만나 밥을 먹었다. 떠나기 전 싱숭생숭한 마음에 나에게 연락했던 너에게 "막상 간다니깐 서운하다"라고 말하고 싶었어. 하지만 내가 어떻게 너한테 그렇게 말할 수 있겠니. 널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친구로서 서운한 건지 나도 헷갈리는데, 널 헷갈리게 하고 싶지 않았어.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야.
만약 타이밍이 잘 맞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됐을까? 너와 나를 둘러싼 모든 상황이 가끔 나는 원망스럽다.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다가 갑자기 네가 잘 지내는지 궁금해질 때, 이렇게 뜬금없이 꿈에 나타날 때, 나는 타이밍이 맞지 않았던 지난 날들에 대해 안타깝고 화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