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링 다이어리 19 - 라오스 루앙프라방(Luang Prabang)
해가 완전히 뜨기 전에 탁발이 시작되는지라 혹시나 못 일어나지 않을까 싶어서 밤을 꼴딱 새웠다. 덕분에 새벽녘 내내 반쯤 눈이 감긴 상태로 움직였다. 피곤에 쩔어 잠든 수정이는 다음 탁발을 기약하기로 하고, 주빈이와 둘이서 탁발을 보기 위해 숙소에서 나왔다. 숙소에서 가까운 곳이 운이 좋게도 탁발 포인트 중 한 군데였다. 관광객들이 주로 많이 보는 탁발 포인트와는 다른 지점이라 그런지 관광객은 드물었다. 탁발을 위해 밥과 과자를 사는데, 이런. 제대로 당했다. 탁발 바구니가 줄어들면 자리에서 일어나면 되는데 스님들의 행렬이 끝날 때까지 탁발을 해야 되는지 알고 우리는 탁발 바구니를 판매하는 아주머니의 장사 손을 쳐내지 못하고 밥, 과자, 바나나 등을 끝없이 탁발했다. 그 결과 일인당 7만 5천낍이라는 거금을 지출했다. 둘이 합쳐 15만낍. 비몽사몽 간이라 정신이 없었던 것도 있지만, 누가 봐도 어리바리한 관광객의 모습이었기에 탁발 사기(?)를 당하기에 딱 좋았던 상태였다. 당황하는 우리를 뒤로 한 채 그날의 영업이 끝난 아주머니는 한 건 했다는 표정으로 씨익 웃으며 홀연히 사라졌다. 탁발의 묘미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낍을 예상보다 더 지출했다는 생각에 망연자실하고 있는데 다른 포인트에서 탁발을 하던 멤버들이 어느샌가 나타나 우리를 보고 호탕하게 웃었다. 그들이 보기에도 우린 정말 제대로 당했다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표정으로 앉아있었으니까. 비록 날려버린 낍은 아쉬웠지만, 그만큼 더 많이 탁발을 했으니 그걸로 위안 삼기로 했다. 이미 지나버린 일에 후회해봤자 어쩌랴. 좋은 쪽으로 생각해야지.
탁발을 마친 후, 아침 시장을 구경 가기 위해 메콩강을 따라 걸었다. 새벽이라 고요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메콩강변의 모습에 조금씩 안정을 찾아갈 무렵, 아침 시장의 시작점에 도착했다. 한창 장사가 시작되려는지 곳곳에서 좌판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침 시장의 초입부터 엄청난 크기의 물고기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마치 월간 낚시에 나올 것 같은 비주얼의 물고기. 크다. 정말 크다. 물고기만 큰 게 아니라 다른 것들도 다 사이즈가 컸다. 새 종류를 다리를 묶어놓은 채 팔기도 했는데, 새를 무서워하는지라 주빈이의 뒤에 숨어 겁쟁이처럼 새를 파는 코스를 지났다. 묶어놨지만 계속 푸드덕거려서 나한테 날아올 것만 같은 느낌이라 무서웠다. 아침 시장은 식자재 위주로 판매했기에 우리가 딱히 살 건 없어서 금세 한 바퀴를 돌았다.
초스피드로 아침 시장을 구경하고 나니 허기가 졌다. 허기보다 잠이 더 중요했던 다른 멤버들은 모두 숙소로 돌아가고 나와 영훈 오빠, 종운이, 주빈이는 아침 시장에서 유명하다는 닭죽을 맛보기로 했다. 메콩강변 앞에 펼쳐진 테이블에서 닭죽을 먹는데, 으응? 이게 대체 무슨 맛인가. 짜다. 엄청 짜다. 소금을 덩어리째 삼키는 느낌이었다. 너무 짜서 다들 몇 숟갈 못 뜨고 있는데, 너무 허기졌던 나는 짠맛을 감수하고 천천히 닭죽을 먹었다. 열심히 먹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포기하고, 식도 가득 찬 짠맛을 해소하기 위해 물을 시켰다. 이럴 수가. 이곳은 닭죽 맛집이 아닌 물 맛집이 틀림없다. 물이 너무 맛있다. 물을 팔기 위해 닭죽을 판매하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물이 닭죽보다 더 맛있게 느껴졌다. 살면서 이렇게 물이 맛있다고 느낀 건 처음이다. 다들 나와 같은 생각을 했나 보다. 물이 제일 맛있다고 말했더니, 공감하는 표정이 지어졌다.
짜디 짠 닭죽 타임을 마치고, 이제 각자의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잠시 눈을 붙이고, 꽝시 폭포를 가기로 했기에. 닭죽을 먹으면서도 비몽사몽 한 느낌이 가시지 않은 나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지듯 잠들었다. 잠이 참 달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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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 애들과 함께 꽝시 폭포에 가기 위해 루앙프라방 사거리에 있는 조마 베이커리로 갔다. 조마에서 모여서 가기로 했기 때문. 조마에 가니 우리를 비롯해 규혁이, 봉수, 준호가 먼저와 기다리고 있었다. 더 많은 인원이 모일 줄 알았는데, 먼저 루앙으로 넘어온 팀들은 이미 꽝시에 다녀온지라 가는 사람은 우리 여섯뿐이었다. 조마에서 대기하고 있으니 우릴 태우러 툭툭이가 왔다. 툭툭이에는 우리보다 먼저 외국인 두 명이 타고 있었다. 물어보니 베트남에서 왔다고 했다. 함께 꽝시로 가는 길, 이왕이면 즐겁게 가자 싶어서 스피커를 꺼내 신나는 노래를 틀었고, 우리는 툭툭이안에서 즐겁게 춤을 췄다. 베트남 친구들은 처음엔 그런 우리의 모습이 낯선지 힐끔거리다가 나중에는 웃으며 우리의 분위기에 함께 동화되었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아도 그들에게도 느껴졌던 게 아닐까. 우리의 행복감이.
한 시간을 넘게 달려서 꽝시에 도착하고, 본격적으로 꽝시 폭포 탐험이 시작되었다. 꽝시 폭포로 들어가는 입구 초입에는 곰들이 한가로이 누워있거나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신기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대나무 펜스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 가까이서 곰들을 보다니. 일본 텐노지 동물원에서 보았던 힘없이 늘어진 곰들이 생각나 기분이 미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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꽝시 폭포는 말로 들은 것보다 훨씬 더 근사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렇게 아름다운 공간이 루앙에 있다니. 루앙의 툭툭이 기사들이 ‘꽝시~ 꽝시~’ 거리며 호객행위를 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다들 꽝시에서 물놀이를 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온 터라 기다렸다는 듯이 물에 들어갔고, 물 겁쟁이인 나는 역시나 구경만 할 뿐 들어가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사실 살짝 발을 담그긴 했지만, 닥터피쉬의 공격에 다리가 따가워서 그마저도 금방 나와 버렸지만. 경쾌하게 쏟아지는 수많은 폭포의 물줄기 소리가 시원하게 귓전을 때리고, 멍하니 꽝시의 아름다움에 넋을 놓고 있는데 물놀이가 끝났는지 다들 촉촉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물놀이를 마쳤으니, 구경을 더 해야 했다. 높은 바위 사이에서 절경처럼 쏟아져내리는 폭포수를 구경하러 위로, 또 위로 올랐다. 폭포를 배경 삼아 프로필 사진을 찍어 줄 테니 한 명씩 포즈를 취해보라고 했더니 신난 표정으로 다들 돌아가면서 폭포를 뒤에 두고 사진을 찍었다. 서로 다 다른 포즈를 취하고, 나는 일일 출장 사진사가 된 마냥 즐겁게 사진을 찍었다. 정말 프로필 사진 감으로 쓸 수 있게 나름의 최선을 다해서 셔터를 누르는 것도 잊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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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를 보니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더 길게 있고 싶었지만, 루앙에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한 규혁이가 오늘 다시 방비엥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규혁이의 차 시간에 맞춰 꽝시에서 나가기로 했다. 툭툭이가 세워진 주차장으로 갔더니 아직 베트남 친구들이 나오지 않아서 그들을 잠시 기다릴 겸 비어라오를 한 캔씩 시원하게 마시기로 했다. 가위 바위 보 해서 진 사람이 비어라오를 사기로 했는데 마실 복이 있었던지 나는 가위바위보에서 승리했다! 기분 좋게 비어라오를 각자 한 손에 들고 홀짝이고 있는데, 베트남 친구들이 구경을 마치고 나왔고 툭툭이가 요란한 엔진 소리와 함께 출발했다.
꽝시에 가던 길처럼, 다시 나는 음악을 틀었고 비어라오의 효과일까. 꽝시에 올 때보다 더 흥이 오른 모습으로 다들 춤을 추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하늘은 맑고, 목은 시원하고, 흥까지 넘치는 루앙의 낮. 일일 툭툭 클럽을 개장했던 그 시간의 추억들을 모두가 잊지 않고 기억하길. 나도 잊지 않고 기억할 테니. 비록 루앙에서 제일 기대했던 땃새폭포는 물이 별로 없다고 해서 가는 걸 포기했지만 꽝시만으로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온통 푸르른 우리의 낮은 그렇게 바람을 타고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