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단상 2020년 12월호
언니들을 만나러 갔던 어느 해의 베트남에서도 똑같았다. 여전히 언니들은 나를 챙겨주었다. 베트남 여행을 앞두고 언니들과 페이스북 메시지로 그룹 대화를 주고받는데, 갑자기 흐엉 투이 언니가 말했다.
“석류, 그 머리로는 베트남 입국 못해.”
당시 내 머리는 겹벚꽃보다 더 진한 분홍색이었는데, 처음에는 이 언니가 무슨 장난을 치나 싶어서 그냥 웃어넘겼다. 그러나 연이어 흐엉 투이 언니는 진짜로 그 머리로는 베트남에 못 온다고 말했다. 머리색으로 입국을 막을 일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사뭇 진지한 흐엉 투이 언니의 모습에 불안감이 밀려온 나는 탄 투이 언니에게 정말 염색 머리는 베트남에 입국을 못하냐고 물었다. 내 말에 탄 투이 언니는 깔깔 웃으면서 흐엉 투이 언니가 나를 놀려먹으려고 장난치는 거라고 했다. 머리색은 입국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했다.
역시, 머리색으로 입국을 막을 리가 없다. 안도했지만 순간 마음이 덜컥했다. 베트남은 공산국가기에 정말 머리색으로 입국을 막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으니까. 지금 보면 정말 터무니없는 거짓말이지만 감쪽같이 속아버린 나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메시지창을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머리색으로 입국을 막는다면 휴양차 베트남에 오는 비 아시아권의 관광객들은 전부 검은색으로 머리를 염색해야 하는 건데, 그때의 나는 당황감이 너무 커서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는 미처 떠올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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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색 에피소드를 겪고 얼마 안 되어 언니들이 살고 있는 호치민으로 떠났다. 호치민의 날씨는 3월의 밤에도 한 여름처럼 더웠다. 아스팔트 위로 모락모락 열기가 올라오는 것 같은 후끈함이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호치민 공항에 도착해 달러를 베트남 동으로 환전하고, 유심카드를 사서 휴대폰에 갈아 끼웠다. 아무 택시나 막 타면 바가지를 쓴다는 말이 있어서, 미리 한국에서 휴대폰에 다운받은 그랩 어플을 켰다. 그랩은 우리나라로 치면 카카오 택시 같은 개념인데, 미리 목적지까지 설정한 금액만큼만 요금이 나오기 때문에 바가지를 씌울 수가 없다.
그랩 어플을 킨 후 언니들이 미리 알려준 주소를 입력하고 택시를 호출했다. 공항에 있는 택시 중에 한 대가 올 줄 알았는데, 공항 밖에 있던 택시가 오는 건지 그랩 어플에 띄워진 지도에 모형처럼 표시된 택시가 저 멀리서 공항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순조롭게 언니들이 있는 동네에 도착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기대에 부응하듯 택시는 점점 공항과 가까워지고 있었고 나는 손 부채질을 하며 얼른 택시에 탑승하기만을 기다렸다. 공항 밖은 너무 더워서 잠시 서있는데도 땀이 끊임없이 솟아올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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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가 공항에 진입한 순간 드디어 이 무더위에서 탈출할 수 있겠구나 싶어서 기뻤다. 그러나 모든 게 계획대로만 착착 된다면 여행의 묘미는 하나도 없겠지. 시작부터 변수가 발생했다.
택시 기사가 내가 서 있는 공항 입구 플랫폼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해서 계속 빙글빙글 근처를 돌고 있었다. 빙글빙글 돌다가 지쳤는지 전화가 걸려왔는데, 전혀 의사소통이 되질 않았다. 내 짧은 영어보다 기사는 더 영어를 못했던 것이다. 기사는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베트남어만 계속 쏟아냈다.
한참 기사가 쏟아내는 베트남어를 듣고 있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의사소통이 1도 안 되는 기사와 승객은 이 상태라면 결국 만나지 못할 게 자명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주변에 서 있던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도움을 요청하면서, 그가 혹시 베트남인이 아니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그는 베트남 사람이었다.
흔쾌히 나 대신 전화를 받아 든 그는 아주 빠르게 기사에게 베트남어로 말했고, 이내 통화가 끝났는지 내게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나는 그에게 도와줘서 고맙다고 베트남어로 인사했고, 그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