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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의 바다 Nov 18. 2024

교집합과 여집합



가을비가 오락가락했다. 두 시간 뒤 비예보를 확인하며 우리는 서둘렀다. 하늘은 언제든지 먹구름을 몰고 올 것 같았다. 거친 바람과 파도가 몰아치기 전, 낮게 깔린 구름 아래 파란 바다는 끝도 없이 광막하기만 했다. 침묵의 바다를 보면서 내 마음의 속도는 길을 잃었다. 매일같이 우리는 이리도 바빠야 할까.





창포말 등대가 보였다. 푸른 용이 여의주를 품듯 영덕 대게의 거대하고 검푸른 집게다리가 등대를 감싸고 있었다. 여러 대의 관광버스는 알록달록한 관광객들을 우르르 쏟아내고 사라졌다. 주차장에서 공연하는 가수의 트롯 노래가사가 흐린 하늘처럼 애잔했다. 부산히 오고 가는 사람들의 설렘이 가을바람에 흩날리고 있는 해안 산책로에 들어섰다.





바위들이 눈에 들어왔다. 밝은 색과 어두운 색이 섞여 있었다. 약 2억 년 전 깊은 지하에서 마그마가 식어 만들어진 화강섬록암이라고 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지하에 있다가 수면 위로 올라왔는지, 그 뒤로 또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바위들의 둥글고 뾰족한 다양한 형태가, 표면에 깊게 파인 수많은 주름들이, 그저 내가 셀 수 없는 숫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짐작하게 했다.


국가 지질공원으로 등록된, 경북 동해안 29개의 지질명소 중 한 곳이었다. 오늘 처음 알게 된 화강섬록암의 존재는 새로운 색깔의 조각이 되어, 그동안 단편적이었던 나의 시간 속으로 서서히 흘러 들어왔다. 밝은 화강암질 마그마 속에 어두운 섬록암질 마그마가 섞여 들어갔듯이.





해바라기처럼, 바위들은 하늘과 맞닿은 바다를 보고 있었다. 매일같이 새롭게 뜨고 떠나가는 해를 볼 것이었다. 눈과 비와 바람을 맞으며 오롯이 서있을 것이었다. 수행자의 경건함이 느껴지는 이곳에서 고독의 심연으로 빠져들고 싶어졌다. 파란 파도는 바위 사이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하얀 거품은 바위를 만나는 순간 안개처럼 사라져 갔다.








구불거리는 산길을 따라 숙소를 찾아갔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10월의 끝자락이지만 여전히 푸릇한 산속은 고요했고, 그 앞으로 펼쳐진 파란 바다는 한없이 너그러웠다. 우리는 텅 빈 방에서 천장을 보고 드러누웠다가 무료하게 창밖 빗소리를 들었다.


이윽고 나는 창문을 열고 바다가 보이는 아담한 데크에 나가 앉았다. 자연 속에서 숨을 제대로 쉬고 싶었다. 초록의 비 냄새를 맡으며 전범선의 <살고 싶다, 사는 동안 더 행복하길 바라고>를 읽었다. 책 속에는 김종철 선생님이 창간, 발행한 격월간지 <녹색평론> 이야기가 나왔다. 2020년 선생님의 별세 소식과 함께.





2000년 초반, 세상 고민을 혼자 다 짊어진 것처럼 나는 늘 벅찼었다. 그 무렵 처음 만난 선생님은 마른 체격에서 강한 힘이 품어져 나오고 희끗한 머리카락 아래 눈빛이 강렬했다. 여행하듯 기대감이 가득 찬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셨고, 다시 희망을 안고 긴 여정을 출발하듯 그 자리를 떠나셨다.


처음부터 달랐다. 교재를 펼치고 가르치는, 내가 알고 있던 ‘수업’이라는 것이 그 시간엔 없었다. 다른 책을 읽으며 딴짓을 시작한 나는 얼마 되지 않아 보던 책을 덮고 강의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정신 차리고 보니, 내 손에는 <녹색평론>과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가 소중히 들려져 있었다.


시간이 흘러, 나의 딸이 태어나 이유식을 먹을 때였다. 꼬물거리는 딸아이를 보면서, 비로소 나는 ‘다음 세대를 위한 환경 보호’가 무슨 의미인지 가슴 뜨겁게 알아챘다. 내가 먹고 소비하는 것들이 어떻게 나를 아프게 하고 지구를 파괴하고 있는지에 대해 눈 뜨기 시작했다. 10여 년 전 <녹색평론>에서 읽었던,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과 자동차를 가지지 않는 사람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그제야 짐작하게 되었다.


2024년, 삶에 지친 몸과 마음을 편히 놓일 곳을 찾아 푸른 바다 앞에 나는 앉아 있었다. 책표지 사진 속 사슴의 표정에 마음이 아릿해져 집어든 에세이였다. 까맣게 잊고 살았던 선생님과 생태 이야기는 부메랑처럼 계속해서 나에게 돌아왔다.


기후위기라는 용어가 없던 시절부터 30여 년을 줄곧 생태주의 담론을 쌓아온 <녹색평론>이었다. 온전히 내 것이 된 줄 알았던, 선생님의 가르침은 사실 나의 미약한 깨달음과의 합집합일 뿐이었다. 지난 20여 년을 나는 어떤 실천으로 교집합을 키워냈는지 알 수 없었다. 빗방울이 굵어져서 내 몸이 젖어드는지도 모르고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새벽 6시 45분, 눈을 떠보니 거짓말처럼 하늘이 개어 있었다. 수평선 너머 하얀 구름 장막을 두른 바다가 보였다. 새파란 하늘에 붉은 태양이 서서히 온기를 퍼트리고, 투명한 공기는 상쾌하게 내 얼굴을 간지럽혔다.


따사로운 빛깔이 맑은 하늘을 은근히 물들이는 모습을 지켜보며, 파래졌던 내 심장이 다시 붉게 뛰고 있었다. 마침내 구름 밖으로 동그란 점이 떠오르고 수면 위로 태양빛의 물그림자가 펼쳐질 때까지, 마치 우리는 어제 본 바위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새로운 하루가 시작됐다. 달라진 건 없었다. 내 몸속에 얼마나 오래 자국을 남길 지 알 수 없는 얼룩을 가진 채, 바닥으로 한없이 가라앉는 느낌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지 몰랐다. 밝은 화강암 같은 내 삶에서 어두운 섬록암이 섞여 들어온 혼동 속에서도 세상은 여전히 똑같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모든 게 달라졌다. 어딘가 억눌려 있었던 나를 보살피기 시작했다. 내 주변을 돌아보았고 마음에 불쑥 찾아오는 쓰레기 같은 감정을 들여다보았다. 연한 화강암질 마그마에 흘러들어온 진한 섬록암질 마그마는 교집합을 넘어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결점 없이 밝음을 유지하려는 완벽함을 벗어나 어두움과 섞여 더 아름답게 완전해짐을 느꼈다.


대자연에게 받아온 아낌없는 혜택과 위로 속에 내가 가진 자그마한 영향력으로는 여집합이 크게 남았다. 그 나머지는 이따금 내게 아픔이 되었고, 이제는 내가 감당해야 할 때였다. 내가 사는 길이 곧 자연이 사는 길이고, 자연을 위하는 것이 결국 나를 위하는 것이었다.








산등선 이면에
칠흑 같은 어둠이 덮친 건,
눈부신 태양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인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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