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고양이가 나른하게 누워있다. 갈색과 검은색, 흰색이 뒤섞인 오묘한 무늬의 그녀는 배가 둥글고 묵직하다. 남편이 얼른 차에 가서 고양이밥을 가져온다. 조그만 혀를 날름거리며 먹는 모습을 딸아이가 유심히 지켜본다. 고양이 배 속에 아기들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고요한 숨결 너머 꾸준히 이어지는 생명의 힘이 나를 위로하는 것 같다. 시선을 돌리자, 그제야 소쇄원 안내지도가 눈에 들어온다.
쏴아, 물이 흘러간다. 살랑이는 바람을 따라 가을냄새가 은은하다. 비 온 뒤 청명한 공기는 폐 깊숙이 파고든다. 탁한 숨이 빠져나간 내 몸은 이내 맑음으로 차오른다. 숲에서 대나무잎이 사각거린다. 푸르디푸른 대나무의 현재를 색 바랜 과거가 둘러싸고 있다. 반듯하게 서 있는 시간은 묵묵할 뿐이다. 500여 년 전 양산보는 어떤 마음을 이곳에 남겼을까.
존경하던 스승님이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했던 양산보는 당대 최고 학자인 조광조의 문하에 들어가 그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 소중한 시간은 시련이 가만두지 않는 법. 수제자를 아끼던 스승은 한순간에 유배지에 끌려가 사사되고 만다. 기득권자들이 두려웠던 건, 그가 젊은 개혁가였기 때문이다. 세상은 스승의 뜻을 짓밟았다. 혹독한 피바람을 목격한 양산보는 고향에서 은둔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나이 17세였다.
봄의 새순처럼 한창 피어오르던 그는, 냉혹한 현실 앞에 멈춰 섰다. 불합리한 세태에 지독한 원망이 차올랐을까. 권력에 휘둘린 조정을 보고 절망스러웠을까. 성리학적 이상사회를 꿈꾸던 38세의 스승 목소리가 이따금 그리웠을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고향에 돌아왔다는 사실이 그를 괴롭히진 않았을까.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길이 되었다.
지겨운가요
힘든가요
숨이 턱까지 찼나요
할 수 없죠
어차피
시작해 버린 것을
담벼락을 따라 걷는다. 비슷한 크기의 돌들을 고르고 황토로 틈을 메운 섬세한 손길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외부를 차단하는 것이 담장인 줄 알았는데, 주변과 소통하는 따스함이 나를 헷갈리게 한다. 남쪽 언덕 끝 햇살이 가득 내려앉는 공간은 애양단이다. 해를 사랑한다는 이름을 붙여주고 담장에 새겨 넣은 세 글자가 따사롭다. 진한 세월의 이끼를 두른 주황빛 벽은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것처럼 한없이 다정한 표정이다.
소쇄천 마저 가로지른 담벼락은 길 위에 틈이 있다. 오늘날 관람 방향과 다르게, 소쇄원의 입구는 바로 오곡문이다. 지금은 사라진 그 문을 상상 속에 열어본다. 정원 안으로 들어와 다섯 번 꺾인 길을 따라 느긋하게 걷다 보니, 자연과 하나 되는 기쁨이 샘솟는다. 문이 있던 빈자리로부터, 속세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들어오던 사람들의 감동이 시간의 마법이 되어 번져 나온다.
이 공간을 너무나 사랑했던 양산보는 낙향한 지 10년이 지나 본격적으로 집을 짓고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10년 동안 구상하며 차근차근 준비한 것이리라. 계곡의 물길을 돌려 연못을 만들고, 나무는 저마다의 의미를 헤아리며 위치를 정했다. 건물은 물론, 다리, 계단, 오솔길 하나하나에도 사람이 걷는 동선과 조망을 고려했다. 55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싹둑. 휴대폰을 끊어내며 나는 은둔생활을 시작했다. 누구는 선생님이 되었고 누구는 대학원생, 누구는 회사원이 되었지만, 이 넓은 우주에 내 자리는 없어 보였다. 친구들은 내가 살아 있는지, 이따금씩 우리 집 전화로 안부를 물었다. 내 귀에는 어떤 소리도 닿지 않았다. 끝이 보이지 않아서 무서웠고, 그래서 더욱 비장했다.
삶은 극도로 단순해졌다. 집에서 강의를 듣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다. 시험을 치르고 면접을 다니고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노래도 사치로 느껴져서 마음 편히 듣지 못했다. 가슴이 답답해서 터질 것만 같을 때, 우연히 S.E.S의 <달리기>를 들었다. 후우. 막혔던 긴 숨이 비로소 흘러나왔다. 가사 안에서 때로는 울고, 때로는 기대했다. 그것은 음악이 아니라, 달리는 내 심장의 박동이었다.
쏟아지는 햇살 속에
입이 바싹 말라와도
할 수 없죠
창피하게
멈춰 설 순 없으니
위엄 있는 바위를 거침없이 흐르는 물줄기는 내 마음속 묵은 때를 다 벗겨낼 듯 맹렬하다. 오곡길을 따라 계곡 옆 좁은 계단을 내려가 광풍각을 만난다. 나무마루 위에 우리 셋은 나란히 걸터앉는다. 내 눈앞에 오래되지 않은 것이 없다. 주변 나무들에 둘러싸여 바위 이끼마저 숲을 이룬다.
수백 년간 물의 흐름에도 단단한 바위는 꿈적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암석 덩어리가 물방울 무리를 거문고 현처럼 튕겨내는 것만 같다. 무너지지 않는다. 그 한결같이 묵직한 마음에 왠지 모를 안심이 된다.
수만 가지 잡음이 연기처럼 사라진다. 오직 자연과 나, 우리는 하나이고 온전하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느낌과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 그래서 양산보는 여기서 달리기를 시작했구나. 미소가 지어진다.
소쇄원은 호남 사림 교류의 장이었다. 양산보는 김인후, 송순, 정철 등과 함께 토론하고 시를 지었다. 또한 제자를 가르치며 후학을 양성했고, 광풍각 뒤편 언덕 위 제월당에서 끊임없이 학문에 정진했다. 맑고 깨끗한 자연에서 오직 수양에 힘쓰는 선비로 살겠다는 의지와 청렴정신을 평생 이 정원에 담아냈다. 기묘사화로 낙향한 이들 중에 관직에 다시 나아가는 이가 많았으나,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끝끝내 절의를 지켰다.
스스로 소쇄옹이라 칭한 그는 지역사회의 존경받는 선비이자, 사림파의 정신적인 구심점이 되었다. 결국 은둔생활은 좌절이 아닌, 성리학적 이상을 위한 선택이었음을. 외면이 아닌, 더 넓은 세상을 향한 외침이었음을. 도피가 아닌, 곧은 의리를 지키는 신념이었음을, 그 삶으로 보여주었다. 고요하지만 멈춤 없이, 꾸준한 마음으로 더 깊은 곳을 향해 나아갔다.
벼슬을 포기한 양산보와 달리 나의 은둔은, 세상이 내 어주는 자리 하나 얻기 위해 세상을 외면한 아이러니 속에 머물렀다. 무수한 경쟁자들로 불안했지만, 결국 나 자신과의 경쟁임을 알았다. 집과 도서관을 오가는 작은 세계 속에 조용히 숨고 있었지만, 사실은 더 넓은 세계를 향해 달려가는 격렬한 몸짓이었다.
이유도 없이 가끔은
눈물 나게 억울하겠죠
일등 아닌 보통들에게
박수조차 남의 일인 걸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쉬운 순간은 없었다. 숨 가쁘게 몰아친 시간 끝에 남들처럼 더 나아가지 못하고 집으로 되돌아와 좌절했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그곳에는 나를 언제나 응원하는 엄마와 아빠, 가족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롭지 않았다. 나의 집은, 계곡의 힘찬 물줄기였고 나무의 든든한 뿌리였다. 나의 가족은, 따사로운 햇살이었고 시원한 그늘이었다. 이토록 눈물 나게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나 자신을 갈고닦는 하루 이틀이 모여 일 년이 되었고 합격 소식이 날아왔다. 정말 그 끝이 왔다. 애양단의 눈부신 햇살처럼 환한 빛이 내게 쏟아지는 듯했다. 일등 아닌 보통인 나에게 스스로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양산보 또한 나의 발걸음을 믿어주지 않았을까. 그동안 애썼다고, 이제 달리는 속도를 늦춰도 된다고.
단 한 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끝난 뒤에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
굉음과 함께 우르르 쏟아져내린 물줄기는 이내 잔잔해져 아래로 고요히 흐른다. 깨끗한 피부아래 비치는 핏줄처럼, 맑고 투명한 물은 푸른빛이 감돈다. 이렇게 계곡을 달리는 물은 어디에서 끝인 걸까. 나는 과연 달리기를 끝낸 걸까. 지겨울 만큼 긴 휴식이 왔던가.
눈을 감고 앉아서, 자연의 이야기를 듣는다. 내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 나의 의미 있는 순간들이 스쳐 지나간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 그리고 그 끝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다. 지금껏 달려온 이 길이 오늘의 나를 만든다. 완벽하지 않아서, 그래서 충분하다.
물처럼, 나는 계속 달리고 있다. 이제는 숨이 차도 괜찮다. 쉬어가도 괜찮다. 나의 달리기는 더 이상 야속한 세상을 향한 날 선 경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따뜻하게 보듬는 여정이다.
양산보가 소쇄옹이 된 것처럼.
<달리기>
- S.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