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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on Oct 19. 2023

회복. 다음 챕터로 가기 위해

내 행동과 상태를 일치시키자

Recovery


일을 하고 일을 생각하던 대부분의 시간에서, '일'이 빠졌다. 시간에 갇힌 셈이다.

이제부터 나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좋아했던가. 

'나'는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나'는 지금 어떤 상태이며, 어디로 나아가려는 걸까.



 1. 내가 퇴사를 결심한 이유

 결론적으로 나는 지쳤다. 더 이상 일을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지쳤다. 업무적 정체와 원치 않던 인사이동 등 여러 문제 사항들은 트리거일 뿐, 나는 이제 쉬고 싶었다. 겨우 쥐어짜던 동기부여도 고갈되었다. 꾸역꾸역 살아간다는 느낌. 이런 내 모습을 보는 것도 지쳤고, 여하간 스스로가 마음에 안 들었다.


 2. 퇴사 후 이 지친 심신을 어찌하면 좋을까

일단 잔다. 숙면하고 또 숙면한 다음 낮잠도 불사하며, 방구석을 사수한다. 사실 그전에도 잠은 잘 잤고 수면시간이 적은 것도 아니지만, 억지도 잠을 깬 덕에 그 품질과 상관없이 늘 피곤하다는 오해에 빠져있었다. 점심밥이라도 배불리 먹으면, 미친 듯이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고자 남은 에너지를 다 쓰는 식이다. 

 그다음이 체력 증진. 나는 운동신경이라면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 타고난 체육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약자 지목 배틀 1번으로 지목되며, '사이렌'이라도 출전한다면, 첫 화 갯벌에 파묻혀 다음 밀물에 생을 마감할 캐릭터. 그렇다면 운동을 통해 예전의 나로 돌아가야지. 잠을 충분히 자고, 운동을 하면서 체력을 회복하면 나에게 생긴 에너지가 알아서 다음 스텝으로 이끌어 주겠지... 싶었다. 나름 경험을 통해 얻은 방법인데 일단, 내가 간과한 것들이 좀 있다. 첫 번째 단계인 '잠'부터 예상을 빗나갔다. 


 나는 퇴사 후 숙면을 할 수 없었고, 전보다 더 새벽에 자주 눈이 떠졌으며, 눈을 떴을 때 적막한 어둠을 만나면 숨이 턱 막히는 불안을 마주해야 했다. 불안할게 없는데 왜 불안하고, 기뻐야 할 시점에 왜 슬픈 감정이 들지. 

당황스러웠고, 분명 내가 놓친 부분이 있다고 확신했지만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 아무리 운동하고 움직이려고 발버둥 쳐도 내 상태가 그럴 수 없는 상태라고 버티고 있었다. 정리하지 못한 것을 다시 생각해 보자.


 3. 마지막 근무 후 집에 가는 길

 내가 전철을 탔던가, 버스를 탔던가. 집에 가는 길이 통 기억나질 않는다. 나는 시원한 기분이 전혀 들지 않았다. 첫 직장에서 퇴사했을 때의 기쁨과 환희가 기억나는데, 이번에는 전혀 다르다. 그만두기 위해 그렇게 오랜 시간 생각했고, 용기 내어 내 발로 걸어 나왔는데 왜 후련하고 통쾌하지 않을까. 오히려 답답했다. 가슴속에 뭔가가 막혀있어 한숨을 쉬어야 겨우 해소되었다. 


 여러 해 동안 애정을 가지고 일했다. 꽤 많은 시간을 공들여 생각하고, 부족한 부분을 내 손가락 아픔처럼 여겨가며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퇴사라는 단어로 정의해버린 그 지나간 챕터는 단지 '회사'라는 물리적 공간만이 아닌, 내 소중한 시간이라는 가치가 있었다. 내가 노력해왔던, 자랑스러운 내 시간들이 아직 정리되지 못하고 남아있었다. 지쳤다는 말로 몸만 바삐 탈출하느라 챙기지 못한 내 자아는 아직 발이 묶여 있었다. 자아를 잃어버린 것이다. 어릴 때 시장에서 엄마를 잃고 속으로 울음을 삼키던 감정이 올라왔다. 잃었는지 이별했는지 모르겠는 상실의 슬픔. 당연히 퇴사가 기쁘지만은 않아야 맞다. 나의 노력과 애정이 빚어낸 소중한 시절을 다시 찾아와야겠다. 그건 내 것이니까. 그걸 찾아와야 나도 다음 스텝으로 나아갈 수 있다. 


 4. 복기하기

 다이어리를 폈다. 입사 시점부터 현재까지 기억나는 것들을 최대한 적었고, 하나의 일이 끝날 때마다 나를 칭찬했다. 가령, 입사 후 첫 업무를 적고 무엇을 배웠는지 그때 기분이 어땠는지, 고생했다는 글도 덧붙여 줬다. 생각보다 자잘한 부분들은 많이 지나가게 되고 큰 이슈 중심으로 적게 되었다. 그리고 이력서에나 들어갈 법한 이력보다는 도움 준 사람들, 의지가 된 동료들, 인상 깊었던 외부 업체 직원 등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내가 애정을 가지며 일하고 나를 버티게 해 준 것은 커리어에 대한 내 욕심보다는 사람이렸다... 가급적 감동의 요소를 빼고 담담하게 적으려 노력했으나 마지막에 나 스스로에게 편지에 가까운 글을 쓸 때는 눈물이 핑 돌아 몇 번을 훔치며 작성을 마쳤다. 약 두 시간여의 편지 끝에 나는 과거에 남아있던 내 자아를 다시 데려올 수 있었다. 


 5. 적극적으로 충전하기

 자아를 찾아왔다고 해서 바로 숙면을 한다거나, 슬픔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속 안에 맺힌 울음들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을 뿐 이제는 적극적으로 회복에 나서야 한다. 당초 계획대로 잠과 운동. 첫 번째는 잠을 잘 자기 위한 운동이다. 노력하지 않아도 6시 전 기상은 거뜬하다. 미라클 모닝은 이럴 때 하는 것이리라. 눈 뜨면 일어나 미리 계획한 루틴을 실행했다. 내가 애용하는 집 앞 체육공원에서의 산책은 이제 무조건 러닝으로 변경했다. 1시간의 러닝 후 간단히 씻고 쉬다가 10시 반에 헬스장에 간다. 생전 처음 받아보는 pt는 내면의 울음을 신체의 고통으로 씻어내는 법을 알려줬다. 그리고 낮 시간에 독서하거나 공부하기. 나는 이 낮 시간(약 2시에서 6시 사이)을 제일 소중하게 활용했는데 잃고 싶던 책을 모조리 사서 병렬 독서의 사치를 누리고, 카페에서 빈둥거리거나, 그간 가고 싶었으나 언제나 뒷전이던 북토크 행사에 자주 참여했다. 저녁엔 집에 들어와 청소를 하고 11시에 잘 준비를 하는 것에 최대한 집중했다. 마음의 울음이 가시고 신체도 활력을 찾으니 심신이 충전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퇴사 후 약 한 달이 지나서야 이제야 비로소 자유를 찾은 셈이다. 


 6. 활용하기

 설레는 마음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것. 가뿐한 몸으로 살 수 있다는 것. 맑은 정신으로 사유할 수 있다는 것은 삶을 충만하게 한다. 운동할 때는 내 몸이 운동할 에너지가 있고, 책을 읽을 때는 내 상태가 독서에 집중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던 내 심신의 상태는 늘 준비되어 있다. 이제 내 인생은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럴 때 나는 이 소중한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이제야 비로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 나아가 내가 무엇을 도전해 볼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매일 이런 루틴으로 살며, 경제적 풍요도 이룬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심신에 에너지가 넘치고 맑은 정신으로 사는데 돈도 많이 번다면 얼마나 좋을까. 처음으로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몸을 움직이고 일을 해야 돈을 버는 삶이 아닌, 자동으로 돈이 들어오는 시스템을 만들 수 없을까. 그렇다면 매일 이렇게 운동하며 독서하고, 나누는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저런, 나는 이제 새로운 삶으로 접어들었다. 이제는 전처럼 살지 않으리라. 다시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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