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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드 큐레이터 서윤 Nov 17. 2023

 사랑은 인생에 가장 강력한 진통제이다.

-추억의 붕어빵

올해 첫눈이 온다는 소식에 들떠 일어나자마자 창문 밖 하늘을 보았다. 어젯밤 까지도 눈이 올 것만 같은 날씨였는데 웬걸 아쉽게도 하늘이 맑다.


이렇게 차가운 겨울날이 오면 버스 정류장 옆 주황색 비닐 포장에서 풍겨 나오던 겉바속촉의 고소한 붕어빵 생각이 절로 난다. 점점 사라지는 붕어빵 가게들이 아쉽기도 하고 치솟는 물가에 붕어빵마저 가격 올라 옛날 정감 있는 추억의 붕어빵을 맛볼 수 없어 아쉽기도 하다.


막내아들이 초등학생 시절이었을 것이다.

눈 오는 겨울 꽤 늦은 시각이었다. 갑자기 아이들의 붕어빵이 먹고 싶다는 말에 옷을 주섬주섬 찾아 입고는 막내를 꼬셔 집 앞 횡단보도 건너편에 있는 붕어빵을 사러 갔다. 주인장 아주머니의 철커덕철커덕 잠금질을 하는 소리가 이른 저녁을 먹은 우리에게 꼬르륵 배고픔을 안겼다. 싸늘한 겨울 날씨이지만 붕어빵 철판이 돌아가면서 익어가는 고소함의 향기는 우리 몸속까지 따뜻함이 전해왔다.   

   

철판에 기름 칠을 하고 노란 양은 주전자의 입에서 쏟아지는 적당한 하얀 반죽, 배를 채우듯 가득 담기는 달콤한 통단팥은 허기진 그리움을 채우는듯하다. 그렇게 여러 개의 붕어 배를 채우고 나면 주인장의 손놀림으로 고소함을 배가 시켜줄 음악회가 시작된다. 철커덕 휘리릭, 철커덕 휘리릭 바삭한 갈색 옷을 입어야만 뜨거운 철판 안에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붕어빵을 기다리며 막내의 시린 손을 꼭 잡아주었다. 기다리는 사람의 애간장이 녹는지 마는지 아랑곳하지 않는 주인장은 고소함이 극대화되는 노릇함의 포인트를 포기하지 않는다. 대신 그사이 오고 가는 짤막한 세상 이야기를 나누며 잠시 기다림을 잊게 해주는 센스를 발휘했다.     

막내 손을 잡고 있던 나에게는

“아드님이 엄마를 빼닮았어요. 눈빛이 또롱또롱한 게 야무져 보이네~”     

늦은 시간 학원을 끝마치고 들어가는 길에 들러 붕어빵을 기다리는 학생에게는

“아이고 손 시리지? 가까이 다가와서 손 좀 녹이면서 기다려요. 늦게까지 공부하느라 힘들겠네”     

퇴근길 거나하게 술 냄새를 풍기는 아저씨에게는

“요즘은 손님이 늦은 시간에 몰려요. 다들 추워서 그런지 일찍들 집에 들어가서 그런가,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며 미소를 잃지 않는다.

기다리다 지친 손님들이 떠나갈까 아쉬워 입으로는 담소를 건네며 손으로는 부지런히 철판을 돌려가며 분주히 움직이시는 주인장 아주머니의 손맛이 춤을 추었다.    

 

어느 겨울날, 어린 막내와 손잡고 찾았던 붕어빵 마차에서 기다렸던 시간이 떠오르며 잠깐의 추억이  마음을 가득 채워준다. 주인장 아주머니의 엄마랑 붕어빵처럼 닮았다는 말에 붉으락푸르락 화를 내던 우리 집 막내가 생각나 소리 없이 미소가 지어진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심심한 손이 싫어 퇴근길 가족을 위해 주섬주섬 돈을 꺼내는 가장의 미소를 볼 수 있는 곳, 너의 입으로 나의 입으로 호호 불며 서로 챙기는 사랑스러운 젊은 연인도 만날 수 있는 곳, 꼬르륵 허기진 배에 만만한 한 끼를 해결하듯 와구 와구 한입 가득 넣은 채 무거운 책가방을 짊어진 학생에게도 붕어빵은 천 원의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선물이 되어주던 시간들이 이제는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이들에게는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붕어빵이 되어 버렸다.      


어릴 때 나의 기억 속에 자리 잡은 붕어빵이 그리워진다.

붕어빵을 좋아하는 엄마는 팥이 든 음식이라면 다 좋아하셨다.

겨울이 시작되면 시장에서 붕어빵을 파는 아줌마가 이곳저곳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붕어빵과 호떡을 팔았었다. 엄마는 가끔 우리 가게에서 생채기가 나 있는 과일들을 모아 봉지 한가득 담아 붕어빵 아줌마에게 가져다주셨다. 그러고 나면 붕어빵 아줌마는 일을 끝나고 들어가시면서 엄마가 좋아하는 통팥 가득 넣은  갓 구운 따뜻하고 달달한 붕어빵을 구워서 우리 집에 가져다주셨다. 겨울날 늦은 밤에 먹던 붕어빵 아줌마의 고소한 붕어빵을 서로 먹겠다며 동생들과 가위바위보를 했다. 너 하나 나 하나 이긴 사람이 가장 많이 먹는 약육강식의 세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때 먹었던 붕어빵 맛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붕어빵과 딱딱하게 식은 호떡 꾸러미를 건네던 아줌마의 손끝은 하루 종일 차가운 겨울을 꿋꿋이 견딘 시간의 흔적이기도 했다.      


팥을 유난히 좋아하는 엄마의 식성을 닮았는지 나도 붕어빵 수레를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팥이 들어있는 음식이라면 주저 없이 주섬주섬 사 들고 오게 된다. 특정 사람이 생각나는 음식은 언제나 기억 한 편에 자리 잡고 가장 행복했던 때를 떠올리게 한다. 앞으로도 팥이 들어있는 음식을 볼 때마다 엄마와 붕어빵 아줌마가 떠오르겠지?

   

그렇게 먹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꼭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입 안을 채우는 무엇이라도 좋았던 시절을 채우는 우리네 간식 붕어빵은 오늘도 이렇게 나의 기억 저편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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