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빈 밥그릇을 내미던 아이들의 함박 웃는 사진을 찍어 친정 엄마에게 보낼 때면,엄마는몇 백 포기 김장을 하느라 온몸이 눅진해져 몸져누워 계시다가도
" 오메, 우리 강아지들 뭐 또 먹고 싶은 거 있는가~"라며 다시 몸을 일으켜 세우곤 하셨다.
배추절임부터 시작해 양념 준비까지 다른 사람 손을 거치면 당신 마음에 안 드시다며 재료손질부터 김치 담그는 것까지 다 혼자서 해치워야 직성이 풀리시는 엄마에게 올 해는 나도 바쁘니 절임 배추라도 사서 하자고 전화를 드렸다. "농사지은 배추가 산더미인디 뭣하러 절임 배추를 사야~ 너 바쁘면 엄마 혼자 할라니까 김치 담가서 보내줄꺼나~"
긴 통화를 하며 우리 집 김장에 사촌네 절임 배추 주문까지 받았다는 걸 알고는 결국 쓴소리를 하고야 말았다.
"엄마 아프면 병원비가 더 들어요. 엄마 아프면 자식들 고생시키는 거야. 난 이제부터 김치 사 먹을 거예요! 내 거는 챙기지 마요!!"
꼬시고 꼬시다 반협박을 했다.
엄마 김치보다 외할머니 김치에 입 맛이 길들여져 있는 아들에게도 올해는 외할머니 김치는 없다! 고 문자를 보내고 나니
아들: 외할머니 어디 아프신 건 아니죠?
나: 몰라!!
아들: 엄마 또 외할머니 속상하게 했죠? 그냥 하시게 놔두지, 내가 가서 도우면 되는데..
나: 걱정이 돼서 그러지. 맨날 삭신이 쑤신다고 끙끙 앓으시면서 김장을 왜 하냐고!
아들: 외할머니 김치를 우리가 좋아하니까 식구들 챙기시는 거잖아요. 엄마는 왜 할머니 마음 아프게 해요!. 나중에 내가 엄마처럼 똑같이 하면 좋겠어?"
속상한 마음에 친정엄마에게 한 마디 던진 나에게 아들의 송곳 같은 몇 마디가 심장을 찌르듯 아프다.
그래 , 맞다. 친정엄마 김치 없으면 또 아쉬워할 거면서 괜한 엄마 마음만 속상하게 한 것 같아 다시 전화를 드렸다
속이 상했는지 전화기 너머 엄마의 목소리가 시큰둥하다.
"엄마, 미안해요. 김장할 때 미리 내려갈게요. 대신 올 해까지만이예요.♡"
"그럴래? 그래 너 좋아하는 굴 넣고 보쌈김치에 밥 먹자" 금세 밝아진 엄마의 목소리에 내 마음도 한결 편해졌다.
이 나이에도 나는 엄마의 철없는 못난 딸이로구나..
보지 않으려 했을 뿐, 보려고 하면 알게 된다. 엄마에게 김장 김치는 자식들에게 마음처럼 해주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현실에 오히려 미안해하는 엄마 마음의 표현이라는 것을.
한 해 동안 김치라도 걱정 없이 먹으며 밥심으로라도 잘 살아주길 바라는 엄마 마음이라는 것을...
엄마를 통해 먹고 입고 자고 자라는 동안, 늘 주기만 하는 엄마의 삶을 들여다 보기보다, 무심한 게으름으로 받기만 하는 자식으로서의 철없음에 괜스레 엄마에게 미안해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