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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윤이 Oct 05. 2023

Chap.12 또 한 번의 좌절과 몸 상태 악화

참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게 되었다. 내 스스로도 실망을 너무 많이 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9월 넷째주에는 출국을 했어야 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현재 영국이 아닌 한국에 머물고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몸 상태의 악화에 있었다. 영국으로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진료를 봤다. 류마티스 내과를 방문하여 최근에 허리(정확하게 말하자면 엉치쪽)이 아프다고 말했더니 교수님께서 CT를 찍어보는게 좋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생물학적 제제에 대해 설명을 해주시길, 교수님께서는 화농성 한선염의 경우 TNF제제가 많이 사용되는데 이를 1차 치료제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강직성 척추염으로 진단을 받는게 낫다고 하셨다. 허리가 아프다고 하니 강직성 척추염이 의심된다며 우선 검사를 해보고 결정하자고 하셨다. 코센틱스는 IL-17 차단이며 화농성 한선염으로 새롭게 승인이 나게 될 약제이지만 류마내과 선생님이 피부쪽으로 이런 상황을 잘 알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TNF제 설명을 들으면서 이 얘기를 할까 했으나 우선 강직성 척추염 검사는 받아보는게 좋을 것 같아서 얘기하지 않았다. 


그날 바로 CT를 찍었다. 예약환자가 이미 많이 있었고 응급환자도 수시로 발생했기 때문에 기다린지 1시간이 넘어서야 CT를 찍으러 들어갔다. 조영제는 넣지 않고 찍었다. CT 자체는 빠르게 찍을 수 있기 때문에 MRI보단 훨씬 좋은것 같다. 이전 강동경희대 병원에서 건선관절염으로 진단을 받았을 때 교수가 뼈스캔만 보고 확진을 내려주었기 때문에 CT 검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판독지를 떼본 결과 핵의학과에서 따로 염증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는데 교수가 판단하에 발에 염증이 있다고 봐서 건선관절염으로 산정특례를 받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CT에서 무슨 문제가 있겠냐고 생각했다. 


하지만, 웬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찾아왔다. 꿈에서도 강직성 척추염으로 진단을 받기까지 했다. 만약 내가 강직성 척추염에 걸려서 척추가 다 망가지는게 아닐까하는 상상까지 하게 되었다. 불안한 마음에 CT 판독지를 의무기록사본을 통해서 먼저 확인을 해봤다. 긴장된 상태로 이를 살펴봤는데 속으로는 '뭐.. 별거 있겠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주렁주렁 영어로 몇 장이나 써있지 않은건가...


나는 CT를 목부터 천장관절까지 전부 찍었다. 그래서 CT가 경추-흉추-요추 1장, 골반 1장, 천장관절 1장 이렇게 총 3장의 판독지가 나왔다. 첫 파트에서부터 인대가 석회화 되었다는 내용과 함께 왼쪽 신장에 결석이 있으며 요추가 원래 곡선으로 되어 있어야 하는데 직선으로 진행중이라는 말이 써있었다. 두 번째장에서는 천장관절에 새로운 뼈 형성이 보인다고 되어 있었고 세 번째 장에서는 양쪽 천장관절이 모두 좁아졌으며 경화되었기 때문에 강직성 척추염이 의심된다고 적혀 있었다. 다른 사람들 판독지에는 구체적으로 강직성 척추염의 그레이드가 적혀 있는데 내 판독지는 그런게 없어서 의심 수준인가 했으나 이는 영상의학과마다 다른 것 같다. 어떤분은 영상의학과에서 판단하지 않고 류마쪽 선생님이 그레이드를 내려준다고 했다. 


이 결과를 보니 앞이 깜깜했다. 강직성 척추염에 대해 구체적으로 찾아보니 그레이드 단계에서 이미 뼈가 형성되었거나 경화가 진행중이면 확진을 받을 확률이 높았다. 게다가 흉추쪽에 인대가 이미 석회화 되어 있는 상태라 추가로 MRI를 찍어 척수신경을 누르고 있는지 확인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그동안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아 잠잠했던 화농성 한선염까지 갑자기 심해졌다. 양쪽 겨드랑이가 붓기 시작하더니 새로운 종기가 또 생겼다. 속으로 정말 쌍시옷 욕이 다 나왔다. 

이미 8월 31일이 디퍼 마감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결국 원서를 드랍해야 하는 것인지 걱정이 되었다. 학교에 메일을 보냈더니 나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주었다. 첫째, 휴학을 하는 것. 둘째, 입학을 거절하고 다시 새롭게 지원해서 재입학을 하는 것이었다. 나로서는 입학 절차를 또 거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첫 번째 절차를 실시하겠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휴학절차가 쉬운 편이지만 보통 유럽/북미 대학들은 취업준비와 같은 이유로 휴학을 하지 않기 때문에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나는 영문 진단서 뗀거를 자료로 제출했다. 학교에서는 병가로 휴학을 한 후 복학을 할 때 학업에 지장이 없다는 의사의 진단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도 나에게 있어선 이게 최선의 선택이었기 때문에 결국 병가를 이유로 휴학을 신청했고 현재 승인이 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영국의 절차는 꽤나 느리기 때문에 기다리는건 어쩔 수 없다. 


정말 재수없는 일이다. 9월달 내내 이때문에 속이 너무 상했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내가 이룬 모든 것을 덮어야 한다니... 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영국에 가서도 치료를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이렇게 된거 한국에서 생물학적 제제를 진행하고 이 자료를 바탕으로 해외에서도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생물학적 제제를 시작하지 않으면 해외에서도 그 치료를 받기가 힘들다. 그래서 어차피 한국에 남게 된거 몸 관리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에 진단받았을 때 내가 추가로 CT를 하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었다. 내가 처음 류마티스 내과를 방문하게 된 것은 엉치쪽이 많이 아파서였다. 그래서 CT까지 하는걸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사로부터 뜬금없이 뼈스캔 얘기를 듣게 되었다. 아마 내가 이곳저곳 아픈데가 많아서 전체적으로 몸의 염증을 보려고 뼈스캔을 진행한 것 같다. 내가 처음 의심한 병은 "강직성 척추염"이었다. 지금보면 내가 의심한게 맞아 떨어진 것 같다. 나름 나는 이 병에 대해 유명한 의사를 찾아가서 진료를 본 것이었는데 그 과정에 화가 많이 난다. 결국 의사가 CT 오더를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허리나 엉치가 아픈 원인을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나름 유명하다는 그 의사는 내가 등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다는 말에 건선관절염인지 섬유근육통인지 헷갈린다는 말을 나에게 했다. 그러면서 두 병을 구분하기 위해 유플라이마(휴미라 바이오 시밀러)를 한 번 써보고 염증이 확 떨어지는지 확인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내가 무슨 인간 실험 대상자도 아니고 왜 병의 진단 구분을 위해서 이런걸 해야 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국내 건선관절염 환자들을 보면 나처럼 전신이 다 아픈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나는 그 의사의 황당함에 어이가 없어서 피부과를 다니는 대학병원으로 전원을 결심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강직성 척추염과 건선관절염은 쓰는 약이 거의 똑같다는 것이다. 다만, 산정특례 후 주사제 조건이 강직성 척추염은 3개월이고 건선관절염은 6개월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강직성 척추염으로 진단을 받아 산특을 했다면 이미 생물학적 제제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내가 등이나 허리가 아픈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는 섬유근육통이 아니라 등쪽 뼈인 흉추에 인대가 섬유화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CT로 확인하면 단번에 알 수 있는 것이었는데 그 의사가 오더를 내리지 않아서 이를 몰랐던 것이다. 나는 황색인대 골화증과 후종인대 골화증이 모두 있는 것으로 확인이 되었다. 이 병도 희귀병으로 동아시아 사람들에게 많이 있는 질병이며 원인은 아직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유튜브에서 본 서울대 신경외과 교수님 말씀으로는 자가면역질환자들이 이 병에 걸린 사람이 많아 그 원인이 자가면역이 아닌지 연구 중에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강직성 척추염 환자들 중에 이런 병을 가진 사람들이 꽤나 많다고 한다. 이론적으로는 강직성 척추염이 몸의 어디든 인대에 염증이 달라붙어 골화가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명한 의사에 현혹되면 안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피부는 급하게 비상용으로 처방받은 훌그램과 리팜핀으로 가라 앉혔지만 어째 느낌이 다시 종기가 생길 것 같다.. 10월 말 중에 다시 병원을 갈 생각이며 그때부터 생물학적 제제 준비를 할 것 같다. 그리고 결석이 있어서 신장내과도 가야 할 것 같고 등 문제 때문에 신경외과도 가야할 것 같다. 완전 종합병원 그 자체가 된 것 같다 ㅠㅠ 정말 산정특례를 받았기에 망정이지 그거 아니었으면 에휴... 덕분에 CT는 참 싸게 찍을 수 있었다. 그리고 CT를 경추부터 천장관절까지 다 찍으라고 오더를 내려준 순천향대 류마내과 교수님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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