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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의 Apr 30. 2024

삶은 기승전결 없는 기다림이 아닐까

고도를 기다리며 (사뮈엘 베케트)



◇ 그저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도 있다


완벽한 희망을 품을 수도, 어제와 오늘은  확실히 다르다는 변화를 눈치챌 수도, 타인과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할 수도 없이 어제와 똑같이 무의미한 시간만 되풀이된다는 생각이 들 때가 가끔 있었다. 


한 치의 오차도 변화도 없이 어제와 똑같은 업무를 해야만 해야 했을 때, 혹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도대체 이 회사나 이 세상에, 이 수많은 고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없을 때. 가끔은 나의 감정이나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놓거나 직면하지 못하고 다른 짓에 몰입하는 것으로 회피하고 싶을 때 시간은 무의미하게 되풀이된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세상에 어떤 영향력도 줄 수 없는 무의미한 상황만 되풀이되는 상황에서 언젠가는 오늘과는 확실히 다른 날이 올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는 상황. 누구나 한 번쯤은 겪지만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는 이러한 상황이 바로 책 <고도를 기다리며>에 등장하는 모든 것이다. 




주인공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한 그루의 나무 앞에 서서 언제 올지 모르는 고도라는 인물을 기다린다. 그런데 그들은 고도가 정확히 누구인지, 언제 오는지, 왜 기다려야 하는지 모른다. 심지어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종종 잊어버린다. 


그들은 기다리는 동안 서로 아무런 의미나 맥락이 없는 대화를 반복하거나, 나무에 목을 매달아보려고 하거나, '가자'고도 말하지만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는다. 기다리는 것 외에 그들에게 의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기승전결도, 교훈도, 맥락도, 배경도 없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던 도중에는 문득 비틀즈의 I am the Walrus라는 곡이 떠오르기도 했다. 수업의 일환으로 비틀즈의 노래 가사를 분석하는 학교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레논이 일부러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 쓴 곡인데, 이 노래 가와 뮤직비디오는 <고도를 기다리며>와 마찬가지로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고 심각하게 혼란스럽고 난해하다.


 그러니 I am the Walrus의 가사에서 의미나 맥락을 찾을 수는 없다. 의미를 찾아내려는 사람들을 골탕 먹이려는 의도만 찾을 수 있을 뿐이다. 어쩌면 <고도를 기다리며> 또한 마찬가지로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기다림을 반복하는 행위' 그 자체에 집중한 작품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가 누구인지 생각해 볼 이유는 딱히 없다.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기다림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영원히 되풀이되는 기다림. 


주인공이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때때로 잊는 것처럼, 나 또한 무언가를 늘 기다리면서 살아가고 있었다는 걸 미처 몰랐다. 친구와 손 편지를 주고받았던 초등학생 때는 한 달에 한 번꼴로 도착하는 친구의 답장을 기다리면서 그 모든 지루한 시간들을 견뎌냈고, 아침부터 자정까지 공부만 해야 했던 고등학교 수험 생활 때는 하루빨리 어른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막상 수험생활을 다 끝내고 대학에 입학하니 선배들의 군기가 너무 심해서 하루빨리 나보다 나이 많은 선배가 학교에 남아있지 않는 고학번이 되기를 기다렸다.


수험 생활이나 대학 입학 같은 인생의 굵직한 이벤트뿐만 아니라 평범하고 흔한 일상에서도 기다림은 언제나 존재했다. 내가 동경하는 사람과 언제  지금보다 친해질 수 있을까, 내가 원하는 능력을 언제 얻을 수 있을까, 언제가 되어야 지금보다 나의 기분, 상황, 처지, 인간관계, 재정 상태, 건강이 더 나아질까? 이런 질문을 늘어놓다 보면 결국에는 내가 정말로 내 삶을 바쳐 기다리는 것을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게 된다. 



원하는 것을 손에 얻는 날이 오더라도, 기다림 자체가 인생에서 사라질 리는 없다.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무의미한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건 우리 인생에는 영원한 기다림이 함께 한다는 점이다. 


때로는 인생의 거창한 의미를 찾아내지 못한 채로도 삶은 계속 이어지는 것처럼, 기다림 또한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상태로도 삶은 계속 이어진다. 삶에는 필연적으로 기다림이 존재하므로, 삶이 곧 기다림이라 한다면 <고도를 기다리며>의 등장인물들이 고도를 기다리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을 통해 우리는 그저 살아가는 것만이 우리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에스테라공과 블라디미르가 고도를 기다리는 내내 서로 의미 없는 대화를 주고받아도 고도를 기다리는 상황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우리의 삶 또한 때로는 무의미하고 보잘것없는 말과 행동으로 가득 차 보여도 사실은 그것 또한 우리 인생의 전부일 수 있다.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해도, 고도를 만나지 못해도, 내일은 꼭 온다는 고도가 오지 않아도, 기다림이 해소되지 못해도, 그래도 그것이 인생이므로 고도가 오지 않는다고 자리를 떠날 이유는 없다. 상대와 '가자', '목을 메자'라는 말을 주고받다가도 꼼짝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어도 괜찮다. 누가 고도를 못 만났다고 우리를 비난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저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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