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에피레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의 Jun 12. 2024

멀고도 험난한 돈과의 관계

2월의 에피레터 키워드: 관계

‘돈은 있다가도 없는 것.’ 돈에 대해 제가 할 말은 이 말 하나밖에 없어요. 저는 돈을 원하는 만큼, 부족함 없이 가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살면서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거든요.


이처럼 돈은 ‘없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돈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늘 삐그덕거리기만 하더라고요. 돈이 없기 때문에 고가의 물건은 마음대로 구매하는 건 망설이다가도, 그렇다고 돈이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는 싫어서 소소한 물건은 고민 없이 시원하게 구매하는 이중적인 행동을 하면서 말이에요.


며칠 전에도 돈과의 관계가 순탄치 못했던 순간이 있었어요. 어느 브랜드에서 1년에 딱 한 번 한다는 대규모 세일을 진행한다는 광고를 보았는데, 이를 놓칠까 봐 얼른 두 개의 제품을 망설임 없이 결제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결제가 완료되었다는 문자를 보니 ‘지금 이 돈을 이렇게 아무 망설임 없이 보내도 괜찮은 걸까’ 의문이 들더라고요.


지금 놓치면 다음 세일 기간이 올 때까지 1년을 더 기다려야 하니 잘 한 행동이다 vs 평소에도 거의 구매하지 않았던 브랜드의 제품이니 사지 않아도 괜찮다.


평소에 구매한 적 없는 제품이었으니 이번 기회에 한 번쯤 사용해 봐도 괜찮다 vs 좋아하는 브랜드가 아니기 때문에 평소에 구매하지 않은 것 아닌가. 차라리 이 돈으로 좋아하는 브랜드의 제품을 정가로 구매해라.

이처럼 상반된 의견이 머릿속에 맴돌다가 끝내는 이 정도의 금액을 고민 없이 시원하게 지불하지 않는 제 모습에 회의감까지 느껴지더라고요.


반대로 돈과의 관계가 껄끄럽지 않고 친근했다면 어떤 일이 생겼을까 궁금하기도 했어요. ‘이 정도의 돈을 쓰더라도 나와 돈 사이의 관계가 틀어질 일은 없을 거야.’ 라는 말을 가뿐하게 할 수 있었을까요? 어쩌면 제가 사용하는 돈의 액수가 저의 가치를 깎아내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될 수도 있고, 이 생각을 바탕으로 저 또한 돈을 사용할 때 어떤 고민이나 걱정도 없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돈과의 관계를 그 정도로 친밀하게 쌓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 질문의 답을 한순간에 찾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50% 세일이라는 흔치 않은 기회에 구매한 두 제품의 결제를 취소했어요.


그 대신 돈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어요. 돈을 마음 편하게 사용하려면 어떤 기준으로 무엇을 구매할 것인지, 돈에 대한 걱정을 덜어내려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돈을 대하는 태도는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등등 제 주관이 확실히 세워진 후에 비로소 돈에 대한 고민을 덜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좋아하지는 않아도 한 번쯤 써보고 싶었던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기회를 놓쳐서 사실 많이 아쉽기는 했어요. 그래도 이날을 계기로 제가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었던 돈과의 관계를 제대로 마주하게 된 것 같아 너무 슬퍼하지만은 않으려고요. 이 아쉬움을 발판 삼아, 앞으로는 돈 때문에 아쉬워할 일 없는 미래를 꿈꿔보고 싶어요.  


조금 비싸더라도 정말 원하는 것 사기 vs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가격이 저렴한 것 사기. 여러분은 둘 중 어느 선택을 더 자주 하시나요? 저는 항상 이 두 가지 고민을 하느라 물건을 자주 못 산답니다.�

현의�



에피레터(ep.letter)를 소개합니다

에피레터는 매달 한 가지 키워드를 주제로 현의/미뇽이의 에피소드를 메일로 보내드리는 뉴스레터입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여 에피레터 최신호를 매주 수요일, 금요일에 무료로 받아보세요.

https://maily.so/journaletter

매거진의 이전글 가끔 나는 바보가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