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차_과거 돌아보기
팬을 자처할 정도로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했던 적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감상은 그저 '좋다' 정도에서만 끝나기만 하지 좋아하는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그 사람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깊게 파고든 적은 손에 꼽힌다. 솔직히 그 이유가 짐작된다. 한 록밴드를 열렬히 사랑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과 열정을 바쳤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은 그때 다 쏟아붓고 더 이상은 남지 않은 게 아닐까?
18살에서 19살로 넘어갔을 무렵에 비틀즈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 나이대 또래라면 누구라도 그랬겠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나 또한 비틀즈는 유명하긴 하지만 너무 오래된 사람들이고, 내가 그들을 딱히 좋아할 만한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 당시 좋아했던 작가가 비틀즈의 노래 제목으로 장편 소설을 썼고, 그 노래 가사가 책에 잠깐 언급되기도 해서 책을 읽던 도중 비틀즈의 노래를 검색해 본 적이 있긴 했지만 그게 다였다. 아름다운 노래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길이가 너무 짧고 중간에 뚝 끊기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금세 흥미가 떨어졌다. 그 곡은 서로 다른 노래를 이어붙인 메들리의 일부라서 다른 노래와 연이어서 들어야 완성된다는 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
평생 나와는 연이 닿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비틀즈에 관심이 생긴 이유는 어디선가 우연히 본 문장 때문이었다. '미디어는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를 라이벌 구도로 만들지만 둘의 관계는 라이벌이라고만 정의할 수는 없다'라는 요지의 내용이었던 것 같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고 '라이벌이 아니면 대체 무슨 사이인데?'라는 질문을 떠올린 것만 기억난다. 그 글에는 해답이 적혀있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그 질문은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그 이후로 유튜브에 비틀즈의 라이브를 검색해 보았고, 비틀즈처럼 오래된 밴드의 라이브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다는 사실에 놀라고, 비틀즈가 처음으로 미국 방송에 등장하게 된 애드 설리번 쇼를 보던 도중, 조지 해리슨이 기타 솔로를 연주하는 장면이 등장하자마자 내가 이들에게 빠질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 이후에는 무슨 곡부터 먼저 들어야 할지 몰라서 처음에는 일단 그들의 라이브 영상을 하나씩 보았고, 그다음에는 그들의 앨범을 하나씩 들었다. 나와 그들 사이에는 약 50년이라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하모니카 솔로의 촌스러움에 적응을 못하고 소름이 돋기만 했다. 하지만 앨범을 넘겨갈수록 어느 순간 촌스러움을 지나 실험적인 노래가 한두 개씩 등장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어느 앨범은 전부 다 실험적인 노래로만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고, 후반부로 갈수록 시간의 흐름이 무색하게도 시대를 타지 않는 곡의 비중이 늘어났다.
알고 보니 비틀즈는 유명세에 비해 활동 기간이 굉장히 짧아서 전곡을 금방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이미지와 상품은 끝도 없었다. 그래서 그 당시 해외에서 인기 있는 사이트였던 텀블러에서 내 또래들이 업로드한 사진이나 인용문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틀즈 데뷔 50주년을 기념하여 BBC 라디오에서 비틀즈가 불렀던 노래를 모아 만든 앨범이 나왔고, 그 이후에는 조지 해리슨의 전기 영화의 개봉, 또 그 이후에는 폴 매카트니의 내한 소식이 들려오며 비틀즈에 대한 관심에 계속 불을 지폈다.
이 과정에서 너무 많은 관심을 갖다 바쳐서 그런 걸까. 지금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든, 그때만큼의 애정이 좀처럼 샘솟지는 않는다. 자연스럽게 비틀즈에 대한 애정도 많이 식어서 폴 매카트니의 신곡이 나와도 뒤늦게 소식을 알고 찾아 듣곤 한다. 하지만 비틀즈를 좋아하면서 알게 된 것들은 애정이 식은 후에도 또렷하게 남아 있다. 비틀즈는 늘 새로운 시도를 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사랑받는 놀라운 밴드로 자리 잡았다는 점 말이다.
라이브 공연을 포기하고 단지 음악을 만드는 것에만 집중하면서 그 당시 새롭게 등장한 기술은 무엇이든 다 실험해 보고, 멀쩡하게 녹음한 소리를 괜히 빠르게 돌려보거나 거꾸로 재생해 보기도 하고, 낯선 외국의 악기를 익혀 곡을 만들고, 비틀즈가 아닌 가상의 밴드인 척 컨셉 앨범을 만들고, 한 앨범에 실험적인 장르의 음악을 이것저것 넣어보기도 하는 실험정신이 비틀즈를 비틀즈로 만들었다. 이러한 실험적인 면이 모두에게 환영받지 않았을 테지만 (비틀즈를 정말 좋아했을 때도 Revolution no 9을 듣다가 이어폰을 벗어던진 뒤로는 두 번 다시 찾지 않았다) 그래도 꿋꿋하게 창의성을 이어갔다는 점 때문에 비틀즈를 오랫동안 사랑할 수 있었다.
때로는 편안함에 안주하고 싶을 때도 있고, 그저 주어진 환경에 입을 다물고 만족하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정말 좋아하는 것이 있고, 포기할 수 없는 게 있다면 그것을 꼭 붙들고 마음대로 갖고 놀아도 괜찮다는 걸 비틀즈가 알려주었다. 그러다 보면 그 모습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생길 것이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던 예전의 모습이 더 좋았다거나,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건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것이며 그건 우스꽝스럽기만 할 뿐 진짜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는 말도 듣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반대로 성공과는 거리가 먼, 우스꽝스럽고 실험적인 면이 있기 때문에 내가 나로서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결과를 감히 예측하려 하지 말고, 그저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다양하게 시도하는 행위 자체를 즐긴다면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될 수 있다는 비틀즈의 목소리를 잊지 않고 삶에서 계속 재생해나가고 싶다. 때로는 한 글자씩 뒤집어서 들어보기도 하고, 비틀즈와는 전혀 관련 없는 희한한 장소에서 들어보기도 하면서 정말 재미있게.
✏️ #365노트챌린지 ?
하루에 하나씩 365개의 질문에 간단한 기록을 남기는 개인적인 기록 챌린지입니다. 소소한 질문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고자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쌓일수록 그 가치가 더해지는 아날로그에 대한 존경을 담아, 거친 질감의 종이 재료와 손글씨로 이미지를 만듭니다.
구겨질수록 오히려 돋보이는 비닐 질감 재료를 더하여, 반듯하게 정제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멋이 담긴 삶에 대한 지향을 표현합니다.
365노트챌린지 시리즈는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