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편바라기입니다.
"멋모르고 결혼해야 한다."
많은 어른들이 이렇게 말한다.
결혼하면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
누구랑 결혼해도 큰 차이는 없다는 말도 한다.
그런 말을 하는 어른들 치고 부부 사이가 좋은 걸 본 적이 없다.
나는 때때로 생각한다.
결혼 적령기에 대한 사회적 압박이 오히려 조급함을 만들고,
좋은 배우자를 만날 기회를 막을 수도 있지 않을까?
연애는 보통 어떤 한 가지 조건에 빠져 시작된다.
어떤 사람은 그의 지성에,
어떤 사람은 그의 재력에,
어떤 사람은 그의 외모에,
끌려 연애를 시작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사랑의 콩깍지가 벗겨지면,
진짜 중요한 것은 인격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고백하자면,
지나온 인연들과도
사랑에 눈멀어
늘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고 다녔다.
그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주변사람들에게
지켜봐 달라고 했다.
"내가 진짜로 결혼할 사람은 정말 멋있는 사람일 거야."
나는 확신했다.
결국 배우자로 선택할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일 거라고.
나도 당시엔 이미 알고 있었다.
사랑에 눈이 멀어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시간을 두고 오랫동안 상대를 지켜봤다.
콩깍지가 벗겨질 때까지.
그리고 생각했다.
'그와 맞지 않는 부분을 평생 안고 갈 수 있을까?'
결국, 나는 이성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순간엔 이별을 선택했다.
힘들었지만,
나는 나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별은 언제나 쓰라리고 아프다.
헤어지기 어려운 이유는 참 많다.
함께한 추억과 정 때문에
상대의 장점 하나 때문에
연민 때문에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그가 변할 거라는 희망 때문에
이보다 나은 사람을 다시 만나지 못할까 봐
이만큼 날 사랑해 주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아서
하지만,
만약 상대 때문에 내가 계속 아프다면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이별은 충분히 선택할 가치가 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고칠 수 있는 것은 상대가 아니라, 나의 행동뿐이다.
아무 노력 없이 상대방이 바뀌길 바라는 건 이기적이지만
내가 노력함에도 바꿀 수 없는 상대의 성향이라면 그건 어쩔 수 없다.
정말 좋은 사람이지만,
함께하는 것이 힘든 관계라면,
그건 오래갈 수 없는 인연일지도 모른다.
결혼은 신중해야 한다.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
법적인 관계로 묶이기 전까지,
배우자 선택만큼은 정말 신중했으면 좋겠다.
자신과 잘 맞는 사람을 만나,
서로를 존중하며 사랑과 책임 속에서 아이를 키웠으면 좋겠다.
사랑에 빠지게 하는 상대의 조건은
시간이 지나면 단점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그러나
성숙한 인격의 멋은,
콩깍지가 벗겨진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운이 좋았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그런 멋이 있는 사람을 만났다.
시간을 두어 지켜보았고, 따져보았다.
그리고 결혼했다.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먼저 결혼했다.
혹자는 '멋모르고 일찍 결혼했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것만은 알고 결혼했다고, 그것만은 자부할 수 있다.
나만 잘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남편 덕분에
더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짐한다.
나는 미래의 내 딸과 아들이
순간의 감정에 휩싸여
결혼을 결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함께하는 시간이 상처가 되는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결국, 그들의 선택을 믿어야겠지.
다만, 묻고 싶다.
지금의 절절함 때문에 못 보고 있는 건 없을까?
평생을 함께할 사람과 관계에서
진짜 애틋함은 같이 보낸 세월이 만들어주지 않을까?
사랑의 형태는 결국 변한다.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
그것이 결혼을 결정하는 더 중요한 기준이 아닐까?
좋은 배우자를 만난다는 것.
그것은 단순히 좋은 결혼 생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나도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결혼을 통해 배운 가장 소중한 깨달음이고,
이런 관계를 앞으로도 지켜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