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루는 조각들
정확히 말하면 초등학생 때까지는 언니가 무서웠고,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극혐' 단계에 돌입했다.
초등학생이던 나와 달리 언니는 이미 중학생.
집 밖에서는 어땠는지 몰라도, 집 안에서만큼은 폭군 같았다. 기분이 조금이라도 상하면 화풀이를 가족에게 했고, 작은 실수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내가 대체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던 걸까 싶은데 말이다.
언니는 실수하면 "무릎 꿇고 빌어" 혹은 "바닥에 머리를 박아" 같은 말을 서슴지 않았다. 어느 날엔 어린 나는 언니가 미안해해 주길 바라며 정말로 바닥에 머리를 세게 찍었다. 아쉽지만 피는 안 났다. 그럼에도 그 장면은 아직도 선명한 충격, 상처, 수치로 남아 있다. 이 에피소드 하나만으로도 언니가 얼마나 망나니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네 살 차이는 말발로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난 속으로 백 번 반박해도 결국 이겨낼 수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언니는 한편으론 든든했다.
'도른 자' 같기도 했지만,
"내 동생 잘못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기세가 느껴졌달까.
그리고 언니답게 조언도 참 많았다.
"엄마아빠는 한 번 말해서는 절대 안 사 줘. 세 번은 졸라야 해."
"렌즈 끼면 나중에 예쁜 동공 망가져. 웬만하면 끼지 마."
철없고 엉뚱하든 도움이 되든, 먼저 겪어 본 길을 기꺼이 터 주려는 태도였다.
나도 꽤 성깔이 있었지만,
언니 때문에 부모님이 고생한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어서
100 %를 드러내진 않았다. 한 50 %쯤?
머리가 커지면서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친구들 앞에서 내놓는 의견이 사실은 언니의 녹음테이프 같다는 걸.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는데…'
그렇게 순한 동생에서 쌈닭 동생으로 변신하는 데
걸린 시간은 오래지 않았다.
중학생이 된 뒤, 나도 반격을 시작했다.
덕분에 집안은 매일 전쟁이었다.
그 무렵 언니는 동생 팔불출이었고,
나는 언니 극혐 뒷담화꾼이었다.
언니가 밖에서 내 자랑을 하고 다녔다지만,
나는 친구들에게 언니 흉만 봤다. 아이러니했다.
분노의 씨앗
미움은 칼날처럼 자신을 먼저 다치게 한다.
내 안에서 언니를 향한 분노의 싹이 자라기 시작했고
이 감정이 자라면서 나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결국 엄마 권유로 청소년 Wee센터에 가 상담을 받았다.
부모님 때문도, 친구 때문도 아닌 친언니 때문에 상담받는 사람은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결론은 분명했다.
1.언니가 부모 이상으로 내 생각과 감정에 영향을 주고 있다.
2.나는 언니와 독립된 사람이다.
이 깨달음 덕분에 분노는 더 커지지 않았다.
거리감 두기.
물리적 거리는 감정 정리를 돕는 ‘임시 저장 공간’이다.
마침 언니가 대학에 들어가며 물리적 거리까지 생기자
마음도 조금씩 가벼워졌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 언니의 고3 시절은 폭풍 그 자체였다.
부모님과 언니는 냉전 중이었고, 나는 그 사이에서 눈치만 봤다. 그래도 수능 당일 언니가 부모님께 절을 올리는 걸 보며,
'언니도 나름 많이 힘들었겠구나' 하고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성인이 된 언니는 자신이 학창 시절 얼마나 폭군이었는지 뒤늦게 깨닫고 있었다.
"나 같은 애 낳으면 진짜 힘들 거야"하고 자조적으로 웃을 때,
나도 어린 시절 상처를 솔직하게 털어놨다.
역시 가해자는 세세한 기억이 없었다..
그래도 언니는 진심으로 사과했다.
상처가 완전히 아물진 않았었다.
성인이 됐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니었다.
나는 언니에게 틱틱대고, 언니 말이면 일단 반박부터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언니가 조용히 말했다.
"이제 그만하면 안 돼? 네게도 좋지 않을 거야."
그제야 깨달았다. 이미 달라진 언니를 알면서도,
나는 미움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는 걸.
그래서 처음으로 용서를 시도했다.
용서는 곧 내 안의 어린 시절을 놓아주는 일이었다.
용서는 과거를 지우는 일이 아니라,
현재의 나를 풀어 주는 선택이다.
그 이후로 나는 언니에게 더 이상 어린 시절의 감정으로 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언니를 보며 깨달았다.
사람은 성찰하고 자각하면 변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과거를 미화하지 않는다.
잘못을 똑바로 바라보고, 인정한다.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언니는 그 힘을 몸소 보여 주었다.
덕분에 배웠다.
돌아볼 용기가 있는 사람은,
언제든 다시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을.
미움을 내려놓고 보니
언니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기분이 상하면 바로 표정을 드러내니 오해가 길게 갈 틈이 없고, 칭찬 한마디면 언니를 날게 한다. 손해를 보는 쪽으로 기꺼이 선택하며 동생을 챙기고 언니미를 뽐낸다. 늘 스스로를 돌아보려 애쓰는 태도만으로 언니를 좋아하기엔 충분하다. 의견이 달라 신경전이 벌어져도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언니는 내게 가장 든든한 친구다.
현재 갓 태어난 아기를 돌보느라 정신없는
언니가 가끔은 안쓰럽지만,
육아를 즐기는 모습도 귀엽다.
힘들겠지만 너무 지치지 않길 바란다.
어린 시절, 언니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는 그 말이 썩 고맙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진심으로 말할 수 있다.
저에겐 언니라는 존재가 부모님보다도 컸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