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루는 조각
어릴 적 나는 군인 출신 아버지의 말투가 불편했다.
"물 좀 줘." "저거 해."
짧은 어조는 늘 지시처럼 들렸고,
사춘기 땐 "그렇게 시키듯이 말하지 마!"라며 반항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땐 아버지가 가부장적인 사람이라 여겼다.
하지만 친구들이 “너희 아빠는 요리도 하시네? 우리 아빠는 집안일 절대 안 하셔.”라는 말을 할 때마다
아버지는 생각보다 전통적인 분은 아니구나 싶기도 했다.
성인이 된 후에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권위를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진심을 알아보는 사람이라는 것을.
내가 건강을 걱정하며 잔소리를 하면,
아버지는 말없이 내 손을 꼭 잡아주고 조용히 끄덕였다.
아버지는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다.
단, 진심 없는 말이나 상대를 깔보는 태도에는 단호했다.
그것이 누구든 아버지는 그 불순함 용납하지 않았다.
겉으로는 체면을 중시하는 듯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진심과 태도를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걸 이제는 알겠다.
그래서일까. 나는 늘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아버지의 눈은 사회와 연결되어 있었기에,
그 눈에 괜찮은 사람으로 비치는 일은 곧 세상에서도 인정받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렸을 적 "다이어트는 의지가 엄청 필요한 거야"
라고 하셨을 땐 내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고,
내가 직장 상사에게 예의 없이 굴지 않을까 걱정하실 땐
회사에서 내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공손하게 행동하며 좋은 직원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부모님께 좋은 며느리가 될지 걱정하실 땐,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진심을 다하려 했다.
사실, 내가 성인이 된 후 아버지의 걱정은 많았다.
하지만 내가 씩씩하게 삶을 잘 꾸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느 순간 더 이상 걱정의 시선으로 나를 보지 않게 되었다. 그제야 비로소 나는 아버지에게 성인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반면, 엄마에게 그런 인정 욕구가 없었던 이유도 이제는 알 것 같다. 엄마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봐주는 사람이었으니까.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되는, 안온한 존재..
사람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 앞에서는 마음이 놓이고, 가치를 증명하고 싶은 사람 앞에서는 더 잘 보이고 싶어 진다고 하지 않던가. 아버지의 인정은 나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신을 갖게 해주는 힘이었다.
아버지는 종종 나를 보며 "불쌍한 내 딸…"이라고 중얼거린다. 그 말에는 애틋함과 못내 미안한 마음이 함께 실려 있다.
마치 어릴 적 집으로 데려온 고양이를 제대로 돌봐주지 못해 늘 미안한 내 마음과 닮아 있었다.
애틋함. 그 감정 또한 사랑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버지는 다른 방식으로도 내게 사랑을 전해주곤 했다.
어느 날, 말을 더듬는 콤플렉스로 위축되던 내게 말했다.
“넌 화술은 없어도, 화력이 있어.
그러니 사람들이 네 말을 귀 기울여줄 거야.”
아버지의 그 말은 큰 위로와 용기가 되었다.
그 누구보다 내 진심을 가장 먼저 알아봐 준 사람이 바로 아버지였다.
이제 나는 안다. 아버지의 짧은 말투는 그의 투박한 스타일일 뿐, 권위적인 태도가 아니었음을.
그리고 이제는 나도 조금씩 아버지처럼 사람의 진심을 알아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저는 말보다 먼저 전해지는 마음이 있다는 걸
아버지를 통해 배웠습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은,
저를 더 나은 사람으로 이끌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이 정말 건강한 힘이 되려면,
결국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는 힘으로 연결되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에게 인정받고 싶으셨나요?
그 마음의 뿌리는 무엇이었을까요?
그 인정은 당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나요,
아니면 때론 힘들게 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