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루는 조각들
가히 내가 살아오며 만난 사람 중, 가장 기가 센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우리 엄마다.
'기가 세다'는 말엔 보통 자기주장을 강하게 드러낸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지만, 엄마는 조금 다르다.
누가 뭐라 해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중심.
그게 엄마의 기였다.
조선 여성의 인내보다는 신여성의 당참에 가까운 사람.
딱, 영화 '타짜'에 나온 "나 이대 나온 여자야~" 같은 사람.
실제로 그 학교 출신이기도 하다.
그런 엄마 밑에서 자랐지만,
나는 엄마와는 조금 다른 기질을 가졌다.
언니는 어디서나 기죽지 않는 엄마의 모습을 꼭 닮았고,
나는 그런 엄마의 태도를 배우는 입장이다.
그녀는 뻔뻔하다 싶을 만큼 당당하다.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이 정한 원칙을 따른다.
엄마는 늘 그렇게 살아왔다.
어릴 적 엄마는 장녀이자 장손녀였고,
공부에 대한 압박감을 짊어져야 했다.
그래서였을까.
대학에 들어간 뒤엔 실컷 놀았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런 학창 시절의 기억을 우리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걸까. 엄마는 단 한 번도 공부하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무엇이든 "알아서 해라~"는 말을 늘 달고 살았던 엄마.
'성적은 너의 것이지, 엄마의 체면이 아니란다.'
그런 엄마의 태도에선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언니와 나는 각자의 필요에 따라 학원이나 과외를 선택했다.
엄마는 우리의 요청이 있기 전까지 먼저 나서는 법이 없었다.
엄마는 나를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빠짐없이 아침밥을 챙겨주셨다.
아침을 챙기는 건 엄마에게 좋아서가 아닌 책임이었다.
그렇다고 억지로 먹으라 하진 않았다.
"나는 아침을 차렸고, 안 먹은 건 너다.
안 먹어서 배고픈 건 너의 선택의 결과란다."
이 말을 직접 들은 적은 없지만,
엄마의 태도는 언제나 이런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책임은 다했지만, 희생은 하지 않았다.
우리 때문에 무언가를 포기했다는 말 대신,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켜내며 살아가는 사람.
경제적으로 힘든 시절에도 엄마는 강해 보였다.
하지만 점점 깨닫는다. 그 단단함은 억센 게 아니라,
여리고 여린 마음 위에 세운 다짐이었다는 것을.
엄마는 자식에게 뭐든 해주고 싶어 안달 나는 스타일이 아니다. 직접 요청하기 전까지, 뭘 먼저 해주는 법이 없다.
딸들이 사춘기를 맞고, "싫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기 시작했을 때, 엄마는 손을 뗐다.
그 이후, 엄마는 철저하게 책임까지만 감당하고 나머지는 스스로에게 집중했다.
다른 엄마들은 오랜만에 집에 오는 자식들을 위해 집밥 한 상 차려놓곤 한다는데, 우리 엄마는 그렇지 않다.
"엄마, 오랜만에 엄마표 집밥이 먹고 싶어~"라고 하지 않는 이상, 먼저 차려주는 법이 없다.
엄마는 소비에 있어서도 브랜드에 기대지 않는다.
삼*이나 L*가 아니어도 좋은 전자제품을 골라내고,
명품이 아니어도 자기 스타일에 맞는 가방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스스로에게 선물하듯 산다.
엄마는 필요를 스스로 채울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뭐 필요한 거 없어?"라고 묻지 않는다. 엄마도 나에게 묻지 않는다.
이게 좋다, 나쁘다 말할 수는 없다.
그저 우리는 서로에게 그렇다.
그런 엄마에게서 나는 한 가지 정신을 배웠다.
바로,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태도.
그것은 언제나 이기는 비법 같았다.
나의 청소년기 시절은, 경제적으로 여유롭진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선택을 할 수 있었다.
비싼 학원이 아닌 인강을 들었고, 교재를 스스로 골랐다.
더 많은 돈을 쓰더라도 결과가 훨씬 좋을 것 같지 않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한정적인 요구 속에 옷보다는 먹는 것을 택했다.
나는 교복에 유니크한 실내화나 가방 하나로 나를 표현했고,
"옷 사줘"보다 가끔 "치킨 시켜줘"라는 말을 더 했다.
엄마는 언제나 그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한국에서 엄마라는 단어는 오랫동안 희생과 짝지어져 왔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그러지 않았다.
그저 책임만 다했을 뿐이다.
나는 그 사실이 눈물 나도록 감사하다.
엄마의 방식 덕분에 나는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고, 나만의 가정을 만드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주변을 보면, '우리 엄마처럼 희생 못할 것 같아서'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엄마처럼 키우면 되겠다는 확신이 있다.
책임이라는 건 무겁지만, 그 안에서 나를 지킬 줄 안다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일이다.
점점 작아지는 엄마를 바라보며, 나는 그 안의 소녀를 본다.
강해 보였던 그 시절, 사실 엄마는 여리고 작았을 것이다.
그 소녀가 자신을 다잡으며, 책임감으로 우리를 키워냈다.
누군가 그게 엄마냐고 말할지 몰라도,
엄마는 말할 것이다.
"나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다 했어."
그리고 나 역시 말할 것이다.
책임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부모님들은 참 대단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희생’만을 위대한 사랑이라 여기진 않았을까요?